"영화 안의 세계는 우리 실제 인생보다 훨씬 조화롭지. 영화 속에는 차가 막히는 일도 없고 공백의 시간도 없어. 영화란 열차처럼, 야간열차처럼 전진하는 거야. 자네도 잘 알겠지만, 자네나 나 같은 사람들은 일 속에서, 영화라는 작업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운명이야. 자넬 믿네.”
Sep 24, 2012
트뤼포 - 아메리카의 밤 중에서
"영화 안의 세계는 우리 실제 인생보다 훨씬 조화롭지. 영화 속에는 차가 막히는 일도 없고 공백의 시간도 없어. 영화란 열차처럼, 야간열차처럼 전진하는 거야. 자네도 잘 알겠지만, 자네나 나 같은 사람들은 일 속에서, 영화라는 작업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운명이야. 자넬 믿네.”
말 - 이명수. 정은임의 영화음악 1993년 8월 17일 방송
모습을 드러낸 감옥은 감옥이 아니듯
마음 드러낸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내 사랑의 말은
마른 가지 끝에 잠드는
아픈 이파리들의 수화(手話)다
찬 손으로 켜는 뜨거운 불이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슬픔과
이제 막 태어나려는 꿈을 위해
기약 없이 준비하는
사랑의 말이다
Sep 18, 2012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 천재인 것 같을 때" - 2007년 한예종 신입생 환영사, 황지우
내가 시에 처음 ‘눈 떴던’ 때라고 할까요, 파블로 네루다식으로 표현해서 “시가 나를 찾아왔을 때”가 중3 때였던 것 같습니다. 뜬금없이 누군가가 그리워지고, 방학 때 시골 친구집 가서 곁눈으로 힐끗 보았던 친구 누나가 무지무지 보고 싶어지고, 사타구니에서 이상한 털이 나기 시작하면서 생의 비린내를 느꼈다고 할까요, 어느 날 갑자기 산다는게 시시하게 느껴지고, 가을날의 신작로 앞에서 어디론가 멀리 훌쩍 떠나버리고 싶던 이른바 사춘기 징후 속에서 문학이라는 열병에 감염되고 말았습니다. 그 무렵 김소월의 ‘초혼’이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고독’이라는 시를 접하고는 그만 내 가슴이 무너져버렸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자주 가슴이 무너져내렸는데, 심지어는 최희준의 ‘하숙생’이라는 유행가만 들어도 그랬습니다.
요즘 문학 강연 같은 데 가면 나는 반드시 이 이야기를 합니다: “가슴이 무너진 적이 없는 사람은 시를 쓸 수 없다.”고요. 그 가슴 저리고, 애리고, 물클한 것 때문에 사람들은 뭔가를 씁니다. 이 흉곽내과적인 증세야말로 말하자면 시의 센서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먼저 가슴 속에 내장되어 있어야 살아가면서 지각하고 경험하는 어떤 일이나 오브제들이 시가 될 만한 것인지 아닌지 감지되며, 그 가운데 딱 시가 될 만한 것이면 부저가 뚜뚜 울리면서 문이 열리는 것이지요.
사실 그 시절 나는 시가 뭐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냥 ‘견딜 수 없어서’ 시 비스무리한 뭔가를 마구 썼습니다. 그 가운데 몇 편을 골라 그 당시 중고삐리들이 많이 보던 ‘학원’이라는 잡지에 투고해 보았습니다. 그게 어떻게 당선되는 바람에 오늘날 내 인생이 이 지경 이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만, 정작 당선작품이 발표된 잡지를 받아보았을 때는 기쁘기는커녕 실망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국어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박목월 선생이 심사평을 쓰셨는데 아주아주 혹평이었기 때문입니다. “황군의 감수성은 소년답지 못하고 병적이다.” 그 당시 얼마나 충격 먹었으면 이 나이 되도록 그 문구를 또렷이 기억하겠습니까?
시에 정나미가 딱 떨어져버렸는데, 또 고등학교 진학하자 왠 불양배 같은 문예반 선배들이 소문 듣고 와서 포섭하는 통에 그 당시 학내 조폭 써클 이름인 ‘들장미’, ‘진’, ‘아카시아’와 동격인 ‘원시림’이라는 문학동인지 활동을 했습니다. 물론 우리 동인들 중에는 천변 너머에 있는 여학교에 주로 포코스를 두고서 숫컷들의 깃털세우기의 일종으로서 문학을 사칭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다들 ‘나는 천재가 아닐까’ 하는 망상 속에서 랭보나 이상을 흉내 내면서 고등학생이라는 게 너무 갑갑하고 억울한 문호 행세를 했드랬습니다. 모자도 일부러 찢어서 재봉틀로 박은 걸 쓰고 호크도 한두 개쯤 풀고, 인생의 쓴맛을 이미 다 본 것처럼 최대한 불우한 표정을 지으면서 생담배를 길게 내뿜으며, 대학가겠다고 공부한 졸라 하는 범생이들을 가련하게 여기며, 카프카가 어쩌구 사르트르가 어쩌구 저 혼자 잘난 체하는 데카당을 연출하고 다녔죠.
2007학년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입생 여러분!
예술가가 되기 위한 험난한 도정에서 그 문지방을 막 넘어온 여러분에게 오늘 내가 별로 아름답지 않은 나의 ‘호밀밭의 파수꾼’ 시절을 먼저 이야기한 이유가 있습니다. 나의 시행착오, 나의 낭비와 방황을 통해 여러분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은 것이 있어서입니다.
그 학교 들어가기 어렵다는 걸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여러분은 이미 주위 친구나 지인들로부터 여러 번 축하를 받았을 겁니다. 또 마땅히 그럴 만합니다. 예술영재 교육을 목표로 정원을 다 뽑지 앟는 소수정예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이 학교에 입학했다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전국 예술계 대학에서 상위 3% 이내에 속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여기에 앉아 잇는 여러분 가운데 ‘난 천재야, 천재임에 틀립없어!’라고 확신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난 천재인가 봐.’라고 조심스럽게 위안하거나 ‘최소한 영재는 되겠지’라고 다행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내가 천재나 영재가 아니면 어떡허지’라고 불안해 하는 사람, 아니면 ‘난 이도 저도 아닌데’ 하고 절망하고 앉아 있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을 앞으로 교육해야 하는 입장에서 상당히 우려스럽고 걱정되는 분이 첫 번째 부류의 그 천재 확신범들입니다. 누가 봐도 천재인 자가 그렇게 확신하는 데에야 할 말은 없지요. 근데 그게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확신하거나 그렇게 자기 연출하는 자들, 이것 정말 난치병 환자들입니다. 말도 안 되는 작품을 해가지고 와서는 교수한테 대든 학생들 있어요. “선생님 후회하실 거에요. 이건 1세기 뒤에나 그 진가를 알아볼 불후의 명작입니다.” 라고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불만 내지는 항의에 가득 찬 그 눈빛을 보면 거의 그런 의미에서 교수의 지적에 승복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물론 1세기는 아니더라도 10년 뒤에는 알아줄 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금 내가 못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나도 나의 기준을 재점검하기도 합니다. 내 곧 학교 때 지방 문단의 시인이기도 했던 문예반 지도 국어 선생님께 똑 같은 감정을 가진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부류의 학생들이 졸업하고도 10년 가까이 되는데 아무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적어도 예술가 수업 시대에 천재 연출자들은 아무 득이 없다고 말해도 무방한 듯합니다.
내가 싫어하는 학생은 눈만 높아가지고 아무것도 못하거나 안 하는 년/놈들입니다. 이 년/놈들은 수업시간에 교수 강의를 팔장끼고 삐딱한 시선으로 노려보면서 감상만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머리 속에 뭐가 좀 들어 있다고 혹은 미리서 발랑 까져가지고 남이 해 놓은 것에 대해서는 혹독하게 평할 줄은 아는 데 저더러 하라고 하면 그 만큼 못하거나 안 되는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안 합니다. 안 하고 못하니까 더 까탈스럽고 사람이 비비 꼬여 있습니다. 이들은 결국 잘 해봤자 조금은 세련된 딜레탕트이거나 문화소비자밖에 안 되는데, 내가 왕년에 그래봤기 때문에 제일 경멸하는 부류들입니다.
영향받기를 꺼려하거나 거부하는 자는 난장이가 됩니다. 우리 학교 교수님들은 대부분 각 장르 분야에서 국내 최고 예술가들, 마에스트로, 명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술 입문자인 여러분은 그 분들로부터 유보 없이 영향을 받으십시오. 어린 새가 어미 입 속에 든 먹이를 꺼내어 먹듯이 여러분 선생님 속에 든 것을 꺼내 먹으십시오. 그것은 반쯤 소화된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빨리 자라게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속에 숨겨놓은 것까지 훔쳐내십시오. 13세 된 미켈란젤로는 그의 스승 기를란다이요가 숨겨놓은 데상을 서랍에서 몰래 훔쳐내어 임모하고는 가짜를 그럴 듯하게 조작해서 갖다놓습니다.
예술의 긴 역사를 보면, 예술 창조는 일종의 관습으로부터 시작한다 걸 알 수 있습니다. 14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찬란한 르네상스 예술의 명작들은 다 보테가(공방, Workshop)에서 스승(마에스트로)과 제자(도제) 사이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관습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그 대표적인 관습이 중앙선원근법인데, 이것이 이 시대 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동일한 시형식See Form이었으며 그들은 세계를 그렇게 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는 그 시대만의 양식 속에서 보티첼리, 다빈치, 라파엘로는 그 스승들에게서 영향받거나 훔쳐낸 모방을 통해 종이 한 장만 한 차이를 예술사에 남겨놓았던 것입니다. 다만 그 차이는 작은 것이었으나 결정적인 차이였던 거죠. 예술사는 그것을 기억한 것이고요.
천재론에서 모차르트 현상처럼 전무후무한 경우가 아직도 없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모차르트처럼 소름끼치게 신비스러운 천재마저도 그 이전에 이태리 양식, 프랑스 양식, 만하임 양식 등 기존의 음악적 관습을 두려워 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유에서 무를, 즉 주어진 것으로부터 주어지지 않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닮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오늘 2007학년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입생을 맞이하고 또 여러분을 환영하는 이 자리의 화두로서 나는 공자 논어 자로편에 나오는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한다.” 어록을 되새기고 싶습니다. 군자라는 말을 예술가란 말로 대체한다면 무릇 예술가는 같이 어울리되 결코 같아지지는 않는다 하겠습니다.
신입생 여러분! 그러므로, 자신이 천재인가 아닌가 고민하지 말고 무조건 저지르십시오! 세잔느는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인 에밀 졸라의 소설 속에서 실패한 지방 화가의 전형으로 묘사됩니다. 고흐도 유일하게 그를 이해해 주었던 동생 테오에게마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실패자였습니다. 이 불행한 예술가들은 그런 처절한 고립 속에서 미친 듯이 그렸습니다.
여러분 가슴 속에 끓고 있는 것, 치밀어 오르는 것, 그 뭉클한 것, 소위 미학자들이 '예술의욕'(Kunstwollen)이라 부르는 것을 존중하고 그것을 따라가십시오. 여러분의 본능을 믿고 자신의 표현 충동에 이끌려 가십시오. 이것을 하지 않으면 나는 잠이 안 온다, 이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사는 재미가 없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나는 죽을 것만 같다는 내적 필연성을 가지고 여러분 자신의 '예술에의 의지'에 복종하십시오. 아니, 차라리 예술을 가지고 노십시오! 예술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가볍게 장난감처럼가지고 노세요. 여러분 전공의 도구들, 피아노든 해금이든 HD 카메라, 컴퓨터, 무대 또는 혼합매체든, 이것들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닳아뜨리십시오. 이런 유희 정신이 중요합니다. 재미나게 가지고 놀다보면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결국 예술이란 '유희'로부터 '발견'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까요.
남극이 바라다 보이는 파타고니아 빙벽 위에 알바트로스라는 새가 알에서 부화하여 깨어납니다. 새끼 새들은 어미의 부리를 마구 쪼아 불룩한 목에서 먹이를 꺼내어 먹습니다. 다 자란 새끼는 첫 비상을 위해 몸보다 훨씬 커진 날개를 질질 끌면서 뒤뚱뒤뚱 벼랑을 향해 질주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새들은 날기 위해 온몸을 바다에 던집니다. 그야말로 투신한 겁니다. 어떤 새들은 그대로 바다에 곤두박질쳐 죽어버립니다. 그러나 어떤 새들은 수면 위에서 가까스로 허공을 차고 날아오릅니다. 마침내 해벽을 지나가는 바람을 만나 구름을 뚫고 올라간 그 놈들은 지상에서 가장 높이 나는 새, 알바트로스가 됩니다.
2007학년도 신입생 여러분! 여러분이 이 학교를 졸업한 후 저 창공 너머 공기마저 희박한 드높은 곳에까지 여러분을 날게 할 자신의 날개를 이 학교에서 만드십시오. 입학을 축하합니다.
2007년 3월 2일
총장 황지우
Sep 14, 2012
슬픔의 독을 품고 가라
기나긴 밤마다
아무 위로 없이 남겨진 나의 너여
더이상 탄식의 나팔을 불지 마라
현세가 지옥인 때는 슬픔의 독을 품고 가라
무자비한 세상, 지옥의 슬픔을 월경하기 위하여.
-
계절이 바뀌고 살이 쪄서 옷사는데 쓰는 돈이 책 살때 쓰는 돈을 크게 앞지르기 시작했다.
-
생에 한가운데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 중 하나는 당면한 고통이나 환희로 앞으로 닥쳐올 슬픔과 고난을 변제하지 못한다는데에 있다. 그런 것들은 자동차사고 처럼, 일단 탁 부닺히고 나서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독을 품고 살아야한다. 사후 세계는 요원하며 내세는 알수없다. 다만 유한한 인간의 삶속에서 유효한 건 탄식하지 않는 것, 독기에 차올라 삶을 비로소 흘겨보고, 훔쳐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주서서 응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많은 슬픔과 노력, 시행착오를 요한다.
Aug 30, 2012
김성근
'한계를 먼저 인정하지 마라. 안되면 될때까지 하라. 포기하지 마라. 인생은 결국 생각한대로 흘러가게 돼 있다' - 김성근
의지와 철학이 머리통에만 머무는게 아니라, 그것이 삶으로 삼투될 때, 그리고 몇겹의 세월을 걸치게 될 때, 그것을 역사라 한다. 김성근의 팀을 운영하는 방식과, 게임에 대한 집착과 승부욕과 신중하지 못한 언행에 대해 많은 이들이 반감을 가진다. 나는 그가 해야할 말을 하지 않아서 입은 손해보다 부러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여 입은 손해가 훨씬 클 인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절대적으로 우수한 감독을 넘어서 야구의 대가를 이룬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유에는, 단순하게 좋은 성적만으론 충족과 설명이 불가한, 그의 삶이 만들어온 역사가 그의 철학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재일교포 출신으로 젊은 시절 아웃사이더의 길을 걸어온 그는 프로야구 구단에 7번 고용되어서, 7번 해임당했다. 프런트와 불협화음 하였고, 수뇌부와 껄끄러웠다. 좋은 성적을 냈으나 해고당한 경우도 많았다. 2001 처참한 전력의 LG구단을 시즌 4위에 올려놓고, 준 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거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당시 최강전력의 삼성 라이온즈와 명승부를 펼쳐냈으나, "이건 김성근 야구지 LG 야구가 아니다" 라는 말과 함께 구단수뇌부의 인사재편과 함께 해고당했다. 그가 LG 선수들과 전설적인 시즌을 써내려간후 10여년간, 김성근의 스타일은 많은 비난을 받아왔으나 오늘날 김성근의 스타일에 영향을 받지 않은 구단은 (말도 안되게 야구를 못하는 구단을 제외하곤) 없다.
수뇌부와의 마찰로 SK 와이번스를 떠난 그는, 전 게임벤처회사 사장이자 야구광인 아들 뻘인 남자가 구단주로 있는 고양 원더스에서 감독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허 민) 구단주의 간곡한 요청과 그동안 나를 믿고 따라 준 선수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 프로야구의 저변을 발전시키기 위해 앞으로도 혼신을 다해 선수들을 지도할 것"라며 구단과 재계약 했다. 그가 프로야구 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은 요원할 것이다.
올리버 스톤이 감독한 애니 기븐 선데이의 알 파치노처럼, 그도 결국 프로무대로 돌아와 다시한번 시퍼런 진검승부를 벌이는 것을 보고 싶지만... 글쎄.
Aug 29, 2012
애니 기븐 선데이, 인치의 싸움, 김성근
I don't know what to say, really. Three minutes to the biggest battle of our professional lives. All comes down to today, and either, we heal as a team, or we're gonna crumble.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3분후에 우리의 커리어 사상 가장 큰 전투가 벌어진다. 모든게 오늘 결판난다. 우리가 온전한 팀으로 살아나던가, 부숴지던가.
Inch by inch, play by play. Until we're finished. We're in hell right now, gentlemen. Believe me. And, we can stay here, get the shit kicked out of us, or we can fight our way back into the light. We can climb outta hell... one inch at a time. Now I can't do it for ya, I'm too old.
우리가 끝나기 전까지, 매 순간마다, 한 인치의 싸움인 것이다. 제군들, 우린 지금 지옥에 와 있다. 여기에 처박혀서 굴욕적으로 패배하던가, 아니면 싸워이겨 지옥에서 기어올라와 광명을 얻을 수도 있다. 조금씩, 한 번에, 1인치씩. 내가 해줄 수 있는건 없어, 난 너무 늙었거든.
I look around, I see these young faces and I think, I mean, I've made every wrong choice a middle-aged man can make. I, uh, I've pissed away all my money, believe it or not. I chased off anyone who's ever loved me. And lately, I can't even stand the face I see in the mirror.
자네들의 젊은 얼굴들을 보고 난 중년 남자가 할수 있는 가장 큰 실수를 저질러버렸다고 생각한다. 믿을진 모르겠지만.... 난 내 돈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나를 사랑해줬던 사람들도 다 등 떠밀어버렸지. 요즘은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보는 것조차도 싫어진다.
You know, when you get old, in life, things get taken from you. I mean, that's... that's... that's a part of life. But, you only learn that when you start losin' stuff. You find out life's this game of inches, so is football. Because in either game - life or football - the margin for error is so small.
나이를 먹으면 여러가지를 잃게된다. ...그게 인생이야. 하지만 잃기 시작하면서 한 가지 배우는 것이있지. 그건 바로, 인생은 1인치의, 1인치로 판가름나는 게임이란 것이다. 풋볼또한 그렇다. 인생이건 풋볼이건 실수를 범하긴 매우 쉽지.
I mean, one half a step too late or too early and you don't quite make it. One half second too slow, too fast and you don't quite catch it. The inches we need are everywhere around us. They're in every break of the game, every minute, every second.
반 걸음만 늦거나 빨라도 성공 할수 없고, 반 초만 늦거나 빨라도 잡을 수 없어. 모든 일에서 몇 인치로 문제가 결정나지. 경기 중에 생기는 모든 기회마다, 매분, 매초가 다 그래.
On this team we fight for that inch. On this team we tear ourselves and everyone else around us to pieces for that inch. We claw with our fingernails for that inch. Because we know when add up all those inches, that's gonna make the fucking difference between winning and losing! Between living and dying!
우리는 그 몇 인치를 위하여 싸워야 한다. 우리는 그 몇 인치 때문에 몸이 망가지도 하고 남의 몸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그 몇인치를 위해 우린 주먹을 움켜쥔다.
왜냐면, 우린 그 인치들이 합쳐져서 승패를 뒤바꾼 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왜냐면, 그것이 삶과 죽음을 갈라놓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I'll tell you this, in any fight it's the guy whose willing to die whose gonna win that inch. And I know, if I'm gonna have any life anymore it's because I'm still willing to fight and die for that inch, because that's what living is, the six inches in front of your face.
어떤 싸움에서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남자만이 그 인치를 얻게된다. 만약 내가 더 살게 된다면 그건 아직 그 인치를 위해 싸우고 죽을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면 제군들의 눈 앞에 있는 6인치가, 그것이 삶이란 것이니까!
Now I can't make you do it. You've got to look at the guy next to you, look into his eyes.
Now I think ya going to see a guy who will go that inch with you. Your gonna see a guy who will sacrifice himself for this team, because he knows when it comes down to it your gonna do the same for him. That's a team, gentlemen, and either, we heal, now, as a team, or we will die as individuals. That's football. guys, that's all it is. Now, what are you gonna do?
내가 제군들에게 이뤄줄 수는 없다. 옆에 있는 동료를 봐라, 그 놈의 눈을 봐라. 너와 같이 그 인치를 위해 같이할 사내가 보일 것이다. 팀을 위해 자기자신을 희생할 사내가 보일 것이다. 왜냐면 너도 똑같이 그를 위해 희생할 것이니까. 이게 바로 팀이란 것이다 제군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팀으로써 일어나지 않는 다면 우린 결국 개인으로 죽을 뿐이다. 이게 바로 풋볼이다, 제군들, 이게 전부야. 자, 그럼 이제 어떡할텐가?
Aug 19, 2012
너는 지옥으로 갈테니 나도 그곳으로 가리라 그곳이 내게는 천국이리니
정욕에 휩싸인 성직자가 자기기만을 일삼으며 파리를 불태우려하는 내용을 읊조리는 디즈니 만화는 이제 다시 나오긴 힘들것이다.
Aug 18, 2012
그때 내 존재는 가장 빛이 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여러 모로 문제가 많은 인간이다.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하고 싫은 마음을 얼굴에 표시내는 종류의 인간이다. 하지만 글을 쓸 때, 나는 한없이 견딜 수 있다. 매년 더이상 할 수 없다고 두 손을 들을 때까지 글을 쓰고 난 뒤에도 한 번 더 고쳐본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그때 내 존재는 가장 빛이 나기 때문이다."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Aug 15, 2012
시오노 나나미, 질투와 시기, 지단
시오노 나나미가 시기(선망)와 샘을 구분한 에세이를 쓴 적이 있는데, 간단히 말해 시기는 갖지 못한 사람이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이고 샘은 가진 사람이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뭐, 이거야 이 사람 나름의 정의이지 우리말에 알맞은 것은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로 말하자면 오셀로는 질투에 희생된 사람이고 이아고는 시기(선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사람이다. 그래서 오셀로에게는 자살이 허용되었으나 이아고는 처형당했다는 것이다. 덧붙여 <오셀로>에 대한 오손 웰스의 평가에서 "이아고는 임포텐츠였다"고 하니, 시기의 핵심은 발기불능이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다.
비속한 비유를 하자면, 서지 않는 남자가 서는 남자들을 보며 느끼는 것이 시기이고,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 남편을 둔 아내가 남편에게 달라붙는 여자들을 보며 느끼는 것이 질투이다.
-
정치인으로서 공화정에 대한 비전, 한 시민으로서 조국에 대한 사랑과 믿음, 문장가로서 수려한 문장의 소유자, 인간으로서 참된 친구이자 신사였던 키케로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왜곡당한 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역사속에 등장하는 쾌남들에 대한 중년여자의 음기섞인 애정의 시선을 알아차린 뒤론 그녀의 저작을 좀 더 귀엽게 읽을수 있게되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을 읽다보면 그녀가 싫어하는(혐오하는) 남성들이 세 부류로 나뉜다.
1. 무능한 자. 2. 무능하면서 허세만 가득한 자. 3. 지루한 사람.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이는 "지루한 사람"이라는 부류이다.
-
그녀가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에 대하여 쓴 글이 로마인 이야기 뒷부분에 있다. 토티와 더불어 플레이메이커 시대의 마지막 DNA를 간직한 그가 유벤투스에서 뛰던 시절을 그녀는 축구에 미친나라 이태리에서 보았을것이고 (지단의 그 "유벤투스"시절 말이다. 이건 정말 대단하다.), 빼어난 피지컬을 이용한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전투적인 플레이와, 유연함을 갖춘 개인기, 혼자의 힘으로 경기를 뒤집고 팀을 움직일수 있었던 경이로움을 보고 백인대장이라 칭했다. 절묘하다. 아주 기가 막히는 비유다. 저런 말은 축구를 알고, 남자도 알아야 하며, 역사도 조금 알아야 나올만한 쫀득한 표현 아닌가. 글을 읽고나서 생각했다. "이 여자는 야하고, 그만큼 멋지다."
그 즈음부터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은 더 확실하게도 여성잡지에서 다룬 명배우들 열전이나, 회원제 클럽의 남자 에스코트들을 평가하는 글처럼 느껴졌다. 좋은의미로 더 즐거운 독서. 한니발, 아프리카누스, 술라, 그라쿠스 형제, 카이사르, 아우구스티누스, 메메드 2세, 로렌초 데 메디치, 체사레 보르지아,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시오노 나나미의 '게이친구' 포지션이고) 기타 등등 기타등등. 그녀는 역사와 연애하는 여자인 셈이다. 중고등학교 때의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알파메일에 대한 소년적 동경심으로 읽었다면, 지금 다시 읽으면 더 쏠쏠한 재미가 있다. 그녀는 확실히 좋은 작가다.
Aug 14, 2012
차이코프스키, 비창
"내가 이 교향곡을 처음 만난 건 나이 스물 즈음이었다. ‘철들다’라는 말이 “세상을 안다”는 뜻보다 “세상과 타협할 줄 안다”는 뜻에 가깝다는 것을 눈치 채면서 “그렇다면 철들기를 거부할 수밖에 없지”라고 어쭙잖게 다짐하기도 했던 그런 때였다. 세상과의 불화는 이미 예정되었는데, 마치 세상의 모든 고뇌를 양어깨에 짊어진 양 인상을 찌푸린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며 들었던 음악 중 하나가 《비창》이었다." / 홍세화
-
1893년,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의 작품 중 최후 걸작이 된 "교향곡 제6번 비창"을 작곡했다. 그리고 11월 6일, 의문의 죽음으로 세상을 떠났다. 공식적으로는 끓이지 않은 물을 들이켜서 콜레라로 죽었다라고 알려졌지만 일각에서는 차이코프스키가 당대의 실권자의 조카와 동성애 관계를 맺었고, 실권자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차이코프스키에게 비소를 먹도록 강요하여 자살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러나 명백한 증거가 없는 탓에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Aug 10, 2012
홍명보와 박경훈, 패션
요 근래 내가 본 유명인들중에서 연예인을 제외하고, 가장 옷을 잘입은 남자는 홍명보다. (연예인중에선 이병헌) 딱맞는 어깨선, 길지도 짧지도 않는 바짓단 길이, 손목뼈까지 덮으며 셔츠가 약간 보이는 재킷의 팔기장, 비교적 얌전한 슈트에 비하여 경쾌한 넥타이까지. 검색으로 알아보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홍명보 본인의 코디는 아니고, LG패션이 제공한 150~200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양복이지만, 홍명보보다 더 좋은 몸과(그런 사람은 극히 적겠지만) 더 비싼옷을 가지고도 옷을 이상하게 입는 사내들에 비하면 홍명보는 단연 베스트 드레서이다. 제일모직의 란스미어라인과 비슷하나 약간 처지는 가격대를 형성하지만, 이번에 LG패션은 마케팅에서 호성적을 거둔셈. 그를 제외하고 내가 본 체육인들중 옷을 잘입은 이는 박경훈 제주FC감독이다. 홍명보의 패션이 협찬의 작품이라고 볼때 어떤 면에선 박경훈 감독이 멋을 아는 사내라고 할수 있겠지만, 가끔 그 창의력이 과했을때의 사진을 보고나선 그 전투력을 아주 조금 줄이면 더욱 멋질텐데라고 생각했다. 쓰고보니 공교롭게도 둘 다 축구인이다. 축구가 요하는 활동량과 신체적인 조건을 생각해볼때, 그만큼 패션에는 키나 얼굴보단(두 명 모두 미남이지만), 몸에 밸런스와 선이 중요하다는 말.
-
마이클 코어스가 이렇게 말했다. "경박스럽지 않게 섹시하게 보이고 싶다면, 35세처럼 입을 것. 브래드 피트는 40세. 커트 러셀은 53세, 주드 로는 31세. 그런데 그들의 스타일은 모두 35세다. 좀 젊은 남자는 세련되고 교양있게 보이려고 수트를 입는다. 나이 든 남자는 좀 더 젊게 느끼려고 캐쥬얼 복장으로 간다. 이 모든 것이 합쳐지면 세상 남자들은 35세다"
Aug 9, 2012
바하와 슈베르트
"내가 운전하면서 자주 슈베르트를 듣는 것은 그 때문이야. 질이 높은 치밀한 불완전함은 인간의 의식을 자극하고 주의력을 일깨워주거든. 어떤 종류의 불완전한을 지닌 작품은 불완전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소세키의 <고후>와 마찬가지로 슈베르트의 D장조 소나타에서는 인간이 영위하는 한계를 듣게 되지. 어떤 종류의 완전함이란 불완전함의 한없는 축적이 아니고서는 실현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거야."
-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희.노.애.락으로 쪼개지고 구획되는 것이 아니라 점성강한 물감이 빠랫뜨에서 으깨어져 뭉개지듯이 번져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세상은 명석성으로 베어져 손,오 위에 걸쳐져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슈베르트를 듣고 또 들었다.
죽이고 싶은 만큼 사랑한다 같은 유치한 말들과, 몸으로 으깨지지만 그 와중에도 절대적으로 불가해하였던 질문들과, 처참한 생존권을 내걸고 벌이는 승산없는 파업소식을 라디오로 들으며 가죽시트에 몸을 밀어넣을 때 느끼는 안도감과 연달아 오는 죄책감 속에서, 슈베르트의 감정선은 번져 나갔다.
바하는 어떤가, 그는 악보로 세상을 재정립하고, 논리로 정열하여 숭고미를 빚어내었다. 그 음악적인 정언명령 앞에선, 인간사의 모든 고난과 감정이, 신과 사도의 영광과 구원 모두 종속된다. 완벽하리만치 철저한 음악적 규율아래 삼라만상이 촘촘히 메달려진 그의 음악에서, 모든 것들은 질서로 수렴하였고, 질서는 아름다움이 되었다. 악보 밖, 거리와 궁궐에선 결코 세워질수 없는 가혹하리만치 절대적인 완벽함을 그는 음악으로 구현하였다.
바하는 동경하며, 슈베르트의 음악으론 동질감을 느낀다.
Aug 8, 2012
가난과 몸뚱아리
"사실, 가난한 가정에 태어난 것이 꼭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목표가 극도로 단순해진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 게다가 사춘기 때 개똥철학에 현혹되지 않는 것. 머리가 하늘로 올라가려는 것을 방지하고 늘 땅 위에 발붙이게 하는 것, 등등 사람을 현실적으로 만든다. (아,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기질이 고체보다는 기체에 가까운 사람들은 아무리 환경이 그렇더라도, 결국 형이상학으로 치닫게 돼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고 하다보면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그러다가 40대가 돼 어릴 때 부러워하던 부잣집 아들래미들을 만나면, 이제 그들과 나의 차이는 없다. 그들의 배가 나오고 허리의 경계는 없어지고 근육은 풀어헤쳐져 있는 것이 나와 다른 점일 뿐. 결국 짧지 않은, 그러나 유한한 인간의 삶 속에서 오래 남는 것은, 최신 장난감이나 외제 학용품이 아니라, 몸뚱아리라는 것.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운한 놈이라고 여겨질 때, 재수도 없이 왜 이런 부모에게 태어났는지 한탄스러울 때, 하늘이 납짝 내려앉아 지구 표면을 싸악 갈았으면 좋겠다고 생각될 때, 이러한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몸 간수다. 다른 모든 것은 남 탓할 수 있고, 사회 탓할 수 있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은 모르겠지만 아무리 허약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몸은 다스릴 수 있고 몸을 단련시킬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몸이야 말로 세상에서 유일한 ‘내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몸을 함부로 굴린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티브이 앞에서 낭비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 바보 상자 앞에서 아무 생각없이 판타지를 키우고 욕을 하고 비웃고 하다보면 불행의 요소는 복리로 불어나는데도, 줄창 티브이 앞에만 붙어있는다. 그러다 보면 몸의 선은 다 망가지고 부위와 부위의 경계는 모호해지며 근육은 미친년 머리마냥 풀어헤쳐진다."
-bahamund-
-
너절한 책들을 압도하는 문장
|
Aug 6, 2012
미니애폴리스 창녀로부터 온 크리스마스 카드
미니애폴리스의 창녀로부터 온 크리스마스 카드 - 탐 웨이츠
찰리, 나 임신했어요.
지금 유클리드 거리 끝
9번가의 낡은 책방 위에 살아요.
마약도 끊었고 위스키도 안 마시죠.
남편은 트롬본을 불어요.
철도일 하는 사람이죠.
hey Charley I'm pregnant
and living on 9-th street
right above a dirty bookstore
off cuclid avenue
and I stopped taking dope
and I quit drinking whiskey
and my old man plays the trombone
and works out at the track.
그이는 날 사랑한다고 해요.
비록 자기 아인 아니지만
자기 아이처럼 키우겠대요.
그리고 어머니가 끼던 반지를 내게 주었어요.
토요일 밤이면 그이는 날 데리고 춤추러 나갑니다.
and he says that he loves me
even though its not his baby
and he says that he'll raise him up
like he would his own son
and he gave me a ring
that was worn by his mother
and he takes me out dancin
every saturday nite.
찰리, 당신 생각이 나요.
주유소 앞을 지날 적마다
당신 머리에 묻은 기름때를 떠올리죠.
아직도 '리틀 앤서니 & 더 임퍼리얼스'의
레코드를 간직하고 있어요.
하지만 누가 전축을 훔쳐가버렸죠.
열받을 만하죠?
and hey Charley I think about you
everytime I pass a fillin' station
on account of all the grease
you used to wear in your hair
and I still have that record
of little anthony & the imperials
but someone stole my record player
how do you like that?
마리오가 체포됐을 때
난 거의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식구들하고 살려고
오마하로 돌아갔죠.
그런데 나 알던 사람들은
죄 죽었거나 감옥에 있더군요.
그래서 미니애폴리스로 돌아왔죠.
이제 그냥 여기서 살까봐요.
hey Charley I almost went crazy
after mario got busted
so I went back to omaha to
live with my folks
but everyone I used to know
was either dead or in prison
so I came back in minneapolis
this time I think I'm gonna stay.
찰리, 그때 사고 이후 처음으로 행복한 것 같아요.
우리가 마약 사는 데 썼던 그 많은 돈들을
지금 갖고 있다면 얼머나 좋을까요.
중고차 가게를 하나 사고 싶어요.
차는 절대 안 팔고
그날 기분 따라 매일 바꿔 타고 다니는 거예요.
hey Charley I think I'm happy
for the first time since my accident
and I wish I had all the money
that we used to spend on dope
I'd buy me a used car lot
and I wouldn't sell any of em
I'd just drive a different car
every day dependin on how
I feel.
그런데 찰리,
내 처지를 솔직하게 말해줄까요?
나, 남편 없어요.
그러니까 트럼본도 불지 않아요.
그리고 있죠......
사실은 변호사 줄 돈이 당장 필요하거든요.
찰리, 난 요번 발렌타인 데이나 돼야
보석으로 나갈 수 있을 거예요.
hey Charley
for chrissakes
do you want to know
the truth of it?
I don't have a husband
he don't play the trombone
and I need to borrow money
to pay this lawyer
and Charley, hey
I'll be eligible for parole
come valentines day.
-
(전략) 무성의한 듯 감칠맛 나는 피아노도 피아노지만 사실 이 노래의 진짜 매력은 가사에 있다. 부른다기보다는 차라리 뇌까린다고 하는 게 맞을 정도로 높낮이 변화가 없는 멜로디지만 그런 소박함이 오히려 감동을 준다. 한심한 낙오자들의 비천한 인생을 묘사한 얘기지만 어떤 멜로드라마보다 아름답다. (중략)
감옥에 들어앉아 옛 애인한테 편지 쓰는 창녀의 심정, 돈 부쳐달라는 사정을 하려고 펜을 들었다가 비참한 심정이 되어버린 그녀는 행복한 거짓말만 잔뜩 늘어놓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용건을 꺼낸다. 그러고는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변변히 인사도 못한 채 서둘러 편지를 끝내는 것이다. 이 마무리 반전은 '너무 웃기는 나머지 슬퍼지는' 종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아무 생각 없이 되는 대로 살아온 철부지 창녀가 꿈꾸는 행복이란 또 얼마나 하찮은가.
아마도 이 여자한테 여러 번 속아봤을, 그래서 사랑하지만 끝내는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 이 노동자 애인은 결국 또 돈을 부쳐주고 말 게 뻔하다. 그리고 발렌타인 데이가 되면 미니애폴리스 교도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후략) - 박찬욱
Aug 5, 2012
김훈, 낙원의 치욕
정원(庭園)은 인공의 낙원이다. 꿈속의 낙원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든 낙원은 인공의 낙원이다. 도가의 무릉도원이나 한산습득의 천태산이나 혹은 마르크스의 국가소멸단계가 그러므로 모두 인간의 낙원인 것이다. 인간은 욕망을 사회경제적으로 정당화하고 정당화된 욕망을 제도화 함으로써 낙원을 지향할 수도 있지만, 욕망의 뿌리를 제거함으로써 낙원을 지향할 수도 있다. 욕망을 제거하려는 길과 욕망을 완성하려는 길이 마음속에서 엇갈리면서 사람들의 꿈은 엎어지고 뒤벼지며, 사람들의 말은 끝없는 동어반복으로 중언부언을 거듭하고 있다.
낙원에도 낙원의 양식(樣式)은 존재한다. 자유를 지향하는 길목에서, 고작, 그것도 천신만고 끝에, 양식 따위가 발생하고 있는 이 인간세(人間世)의 풍경이 희극인지 비극인지, 축복인지 저주인지 나는 분간하지 못하지만, 그것은 필시 저주에 가까운 안쓰러운 업장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낙원의 양식은 낙원의 자유를 다시 속박하지만, 이 속박은 그래도 견딜만한 속박이다. (중략) 그 때, 양식의 가파름과 느슨함은 모두 인간으로부터 멀어지고, 우리는 양식과 더불어 서늘함을 느끼는데, 이 자유의 서늘함이 곧 실락원의 슬픔이다. 여름의 소쇄원에서 실락원의 슬픔은 수목과 더불어 무성하였다.
소쇄원을 꾸민 사람은 조선 중종 때의 처사 양산보이다. 양씨 문중의 기록에 따르면, 양산보는 17세의 나이로 당시 대사헌인 조광조의 문하에 출입하였다 한다. 그 무렵의 조광조는 삼십대의 청년으로, 이념화된 주자학의 가파른 절정에 도달해 있었다. 조광조의 낙원은 말과 사유의 낙원이다. 조광조는 명증한 언어로 표현되는 사유의 힘에 의해 현실을 재편했다. 그는 반정의 공로에 빝붙은 원로대신들을 '소인배'라는 극언으로 매도하면서 기득권을 박탈했고 소격서를 철폐함으로써 이성의 위엄을 과시했다. 말과 사유와 권력과 현실이, 조광조에게는 동일한 것이었고, 조광조의 낙원은 그 네 개의 범주들이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맞아 떨어져야만 비로소 가동되는 근본주의자의 낙원이었다. 이념화된 주자학은 인간의 심성 속에서 고개를 쳐드는 욕망의 싹을 애초에 봉쇄시켜버리는 사유의 장치를 확보하고 있었고, 그는 성현의 도와 제왕의 법으로 인륝벅 가치의 절대성을 현실역사 속에서 구현하는, 한 절대인간으로 홀로 서있었다. 조광조에게 왕이란 단지 사직의 계승자가 아니라, 세계의 이성적 존재양식의 최정상에 위치하는 가치의 화신으로, 인성과 현실을 그 안에서 종합하는 절대이성이었다. 벌레먹은 '주초위왕'의 나뭇잎이 아니더라도 이 젊은 근본주의자는 이미 스스로 이성의 제왕이었다.
조광조의 낙원은 훈구파 원로권귀들의 욕망의 연대에 의해 붕괴되었고, 그는 전남 능주의 유배지에서, 원로권귀들이 왕을 경유해서 내려보낸 사약에 처형되었다. 향년 37세.
젊은 조광조가 어린 양산보에게 베푼 교학의 내용이 어떤 것이었던가는 양씨네 문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어린 양산보는 조광조의 도포자락에서 휘날리는 이성과 사유의 강파른 위엄에 압도되어 있었을 것이고, 사유의 힘으로 세계의 질서를 재편해나가는 젊은 스승의 아름다운 권력과 그 권력이 현실 속에서 가동되는 일대 장관을 숨죽이며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젊은 스승의 낙원이 붕괴되자 양산보는 지체없이 낙향하였다. 양산보는 한 작은 강산의 서늘하고 깨끗한 물가에 자신의 낙원을 차렸다. 그는 다시는 대처의 땅을 밟지 않았고 세상잡사를 글에 담지 않았다. 그는 다만 돌과 나무와 물줄기를 끌어모아 소쇄원을 꾸몄다. 소쇄원에서는, 세계를 혹은 풍경을 관찰하고 해석하고 거기에 관하여 말을 하는 주체로서의 자아의 입지와 위상이 물리적 공간의 거죽으로 돌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쇄원에서는 어떤 풍경이나 정자나 나무도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위치나 시선의 각도로부터 자유롭다. (중략)
낙원은 자유의 패러디이다. 헐거운 양식, 감추어진 양식은 낙원이 패러디라는 운명 자체를 감추려한다. 감추어지는 운명이란 없다. 양산보는 젊은 스승 조광조로부터 얼마나 멀리 흘러왔는가. 양산보는 그렇게 흘러서 조광조와 매우 가까운 곳에 소쇄원을 차린 셈이다. 저녁 어스름 속의 소쇄원에서 나는 사약 한 사발에 피를 토하고 죽은 조광조의 혼백이 풀 먹인 도포자락 휘날리며 무어라고 쉴새없이 중얼거려대면서 제월당 뒤쪽 숲을 거니는 환영을 보았다.
-
일년하고 반년전 쯤에 전남으로 여행을 갔을때, 눈오는 날 담양의 하늘은 흐려서 불쾌했고, 사람없는 관광지엔 팥죽과 오뎅을 파는 상인들 몇만 정원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눈내리는 소쇄원엔 초록이 없고, 팥죽파는 스태인리스 통에서 나오는 연기가 뿌옇다. 정자엔 눈만 쌓였다.
조광조는 조선 성리학의 이념적 정점이었다. 그는 '가장 완강하고 가장 순결한 복고주의의 힘으로 가장 미래지향적인 정치 개혁'을 단행했다. 소학의 원칙주의를 체질화한 그는 이념과 현실의 차이를 긍정할 수 없었다. 조광조의 비극은 그 간극의 불인지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어려서 총명하였고, 젊어서 등고登高 하였다. 조선조 엘리트의 요람 성균관에서 독보적인 총아였으며, 중종 10년 문과에 급제한뒤, 중종 13년 정2품 사헌부 대사헌에 올라, 중종 14년에 유배지에서 임금이 내린 사약을 받아 경복궁으로 절한 뒤 죽었다. 그 뒤 조광조는 국운이 바스라질 조선조의 황혼 무렵까지 사림들로부터 성역화 되었다.
눈내리는 을씨년스런 관광지 앞에서 퍼먹는 팥죽의 당도는 무분별하게 달아 추운날 혈당을 올리고 턱 안쪽 침샘을 흥건하게한다. 달기만한 팥죽을 먹어가며 난 '간극'의 불인지에 대하여 생각했지만, 아직도 소쇄원하면 먼저 생각나는건 눈 내리는 겨울날 먹던 달디달던 팥죽과 엄청나게 짜웠던 오뎅국물 뿐.
Aug 4, 2012
전도와 고독
한겨레21 918호에 시조새의 슬픔 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맨끝 칼럼
신자들은 ‘신의 은총’을 모르는 사람들의 삶을 ‘매우 가엾고 황량한 인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신을 영접한 분들의 처지에서 아직도 신을 찾지 못해 길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이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그 심정은 이해가 간다. 나 또한, 도무지 근거를 찾을 수 없는데도 쉽게 신을 믿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생각하면 같은 인류로서 속이 상해 잠이 안 올 때가 있다. 물론 올바로 찾았는지 스스로 속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을 찾은 당신들의 마음속에 기쁨이 샘솟는 것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삶의 우연성을 받아들이고, 그 아이러니를 견뎌가는 불신자들의 마음의 풍경은 어찌 보면 참 서글프다. 그러나 근원적 슬픔을 피하고자 증명되지 않은 것에 자신의 삶을 던질 수는 없지 않은가. 행복을 탐해 믿어지지 않는 것을 믿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는 우리대로 버려진 사막에서 비록 고독하게나마 자신만의 세계를 발견해나간다.
(부분발췌, 조광희 변호사)
Aug 3, 2012
최선과 차선.
Aug 2, 2012
손주은 인터뷰 中, 몰입의 평화와 성취감
-
Q. 솔직히 이렇게 달려온 인생이 행복하십니까?
나는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는 것은 근거 없다고 생각해요. 인생의 시작과 끝이 자기 의지로 되지 않는데, 행복이란 인간이 너무나 행복하지 않아 만들어 낸 형이상학적 추론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죠. 즉 ‘행복을 위해 산다’는 말은 본질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말이에요. 저는 대신 ‘몰입의 평화와 성취감이 나를 존재하게 한다’고 믿어요.
-
몇몇 부분은 동의하지 않지만, '몰입의 평화와 그로 나오는 성취감'의 존재의 유무가 한 사람의 인생을 관통하며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중 하나라는 걸 느끼기에 무릎을 치며 감탄했던 부분.
오오 적이여, 너는 나의 용기다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창립멤버였고, 스물넷에 카프 서기장이 됐다. 그러나 그 전에 그는 ‘모던 보이’였다. 스물한둘께 임화는 영화 <유랑> <혼가>의 주연을 맡았다. 사람들이 그를 ‘조선의 발렌티노’라 불렀다. 1920년대 할리우드를 휘어잡은 배우 루돌프 발렌티노에 빗댄 별명이었다. 임화의 모더니스트적 면모는 수려한 외모의 이국 정취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에서 그는 시대와 불화하는 모더니즘의 정신을 선취했고, 마르크스주의로 나아감으로써 모더니즘의 한 경지를 체험했다. 김윤식씨의 말대로, “마르크스주의도 전위주의(모더니즘)의 일종이었음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그는 그 모더니즘의 정신으로 시대와 대결했다. 36년 그는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썼다. “오오 적이여, 너는 나의 용기다.” 그러나 그 대결은 필경 패배할 수밖에 없는 대결이었다. 일제의 군국화가 강화될수록 그의 입지는 좁아졌다. 39년 그는 탄식하듯 말했다. “벗이여, 이즈음 나는 자꾸만 하나의 운명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그 운명의 문학적 표현이 ‘현해탄 콤플렉스’, 다시 말해 ‘조선의 신문학이란 일본을 거쳐 이식된 문학’이라는 이식문학론이었다.
그리고 그 운명의 정치적 표현이 해방 후 월북한 뒤 53년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죽은 일이었다.
Aug 1, 2012
이문열, 입선소감
부족한 작품 너그럽게 보아주신 심사 위원님께 먼저 감사와 함께 배전의 정진으로 기대에 보답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새로운 나를 출생시켜 준 [동아]에게도...
지난 몇 년은 참으로 쓸쓸한 세월이었다. 그 염염한 불면의 밤들, 수없이 비워지던 잔, 삼십 분마다의 절망...
재작년에야 겨우 [매일]에 가작을 냈지만 여전히 빈곤과 무명은 나의 오랜 벗이었다. 이제 그들은 떠나려는가.
무겁던 서른의 나이가 오히려 가볍다. 감사하다. 살아 있는 모든 이들, 존재하는 모든 것이여.
-
이문열이 단편 [새하곡]으로 신춘문예 입선한후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는 데는 몇 년이 걸려도 무너지는 건 찰나라는 것을. 삶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푸코
Jul 24, 2012
위대한 왕 - 문명으로 침식해가는 원시성에 대한 장엄한 만가
"어미는 암컷보다 강했다. 캄캄한 밤, 사냥을 마치고 돌아가던 어미는 타이가 깊은 곳에서 메아리치는 수컷들의 음성에 자주 귀를 기울였다. 그럴 때면 심장의 박동이 멈추고 강한 전율이 강인한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어미는 걸음을 멈추었다. 가슴에서 애처로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새끼 특유의 소리로 귀엽게 가르랑거리며 한 발 한 발 자신의 뒤를 따르는 어린 것들에게 눈길을 한 번 던지는 것만으로 모든 유혹을 뿌리치기에 충분했다. 어미는 깊고 낮은 한숨을 내쉬며 핏줄의 부름에 최우선으로 복종했다. 그리고 온순하게 가족의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산과 숲은 고요했고, 황량한 고장은 평화롭게 잠자고 있었다. 멀리 작은 골짜기 깊은 곳에서 올빼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먹이를 기다리는 붉은 늑대들은 근처의 고개 뒤에서 구슬프게 울어댔따. 능선에 다다른 타이가의 제왕은 튀어나온 바위 위에 멈춰 서서 숲의 온갖 소리를 들으며, 맷돼지 떼가 숨어 있을 떡갈나무 숲을 유심히 살폈다. 자신의 엄청난 힘을 알고 있는 왕은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진 슈하이의 방대한 영토를 응시했다. 남쪽에는 칠흑 같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달빛에 비쳐, 타투딩즈 산꼭대기는 마치 레이스처럼 구멍이 뚫린 듯 보였다."
"넓고 반듯한 이마에는 ‘왕(王)’이라는 글자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났으며, 풍성하게 자라날 갈기가 나타나기 시작한 목덜미에는 또 다른 글자의 징후가 벌써 희미하게 보였다. 그것은 ‘위대한’이라는 뜻의 ‘대(大)’라는 글자였다."
허파 가득 얼음으로 차오르는 툰드라의 밀림에서, 날랜 육체와 보라빛 일렁이는 포효로 수해(樹海)의 모든 것들을 맹종 시켰던 위대한 왕의 생사는 문명의 역사와 함께 맞물려간다. 러시아는 하얼빈 철도로 만주에 뜨거운 철사같은 손길을 펼쳤고 일본제국은 조선반도를 넘어 북쪽으로 날뛰기 시작한다. 순결과 원시로서, 왕은 그 자체로 지엄하며 자연의 현현이었으나, 왕국의 침식을 막을 수는 없었다. 늙은 사냥꾼 퉁리는 이 강대하며 아름다운 생물체에게 외경을 표하며, 왕또한 가혹한 자연에서 수많은 아수라를 돌파한 노쇠한 인간과 공감한다. 이것은 대자연에서 태어나, 인간의 역사에 의해 가장자리로 소멸해가는 자들의 종을 뛰어넘은 동질감이자 서로에 대한 존경심일 것이다.
왕은 인간에게 죽고, 신화에서 밀려나 짐승으로 죽어간 아무르 호랑이의 오늘날 남아있는 개체수는 극도로 미약하다.
고등학교 때, 백군에 가담한 뒤 패전 후 만주국으로 망명하여 수십년을 산맥과 숲에서 보낸 러시아인의 이 자연소설에 한동안 매료되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까지 학교에 있어야 했던 대도시의 고교생에게, 백색의 수해(樹海)에서 군림하는 흉포한 야수는 순진하고 곱상한 마초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지금은 중국 동북부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놀면서 서식지 자체가 완전히 소멸해 버렸고, 러시아의 대통령 푸틴의 이미지 조성을 위한 정책으로 러시아에 터전이 조성되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위대한 왕은 깨어날 것이다. 그 우렁찬 목소리가 산과 숲을 가로질러 쩌렁쩌렁 울리고 끝없는 메아리가 되어 퍼져 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이 그 소리에 몸을 떨고, 신성한 연꽃이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을 머금고 피어날 것이다."
김훈 - 생명의 개별성
장모는 여러 가지 병이 겹쳐진 노환으로 2년쯤 입원해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장모의 병은 불가피한 자연현상이었다. 유언에 따라, 장모의 시신은 화장되었다. 소각로는 엘리베이터식이었다. 소각에 두 시간이 걸렸다. '소각 완료'라는 글자에 불이 켜지고 소각로 문짝이 열렸다. 가랑잎 같은 뼛조각 몇 개가 소각로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뼛조각들은 바람에 쓸리듯 계통이 없어 보였다. 어느 부위의 뼈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소각 완료'라는 글자는 추호의 모호성이 없었다. 그 글자는 운명의 선명한 모습을 단지 네 글자로 증거하고 있었다. 소각이 완료된 것이었다. 종말은 선명했고, 종말은 가벼웠다. 삶의 종말은 참혹하게도 명석했다. 그 흰 뼛조각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죽음의 보편성과 생명의 개별성에 관해서 생각했다. 생각은 전개되지 않았다. 나의 생각은 생명의 개별성에 걸려서 좌초되었다.
창세기 이래로, 인간은 죽음으로써 지구를 구해냈을 것이다. 다들 죽어 없어지지 않았다면, 또 다들 살 자리가 없어서 죽었을 터이다. 그래서 죽음이야말로 인간이 세계와 후손을 위해서 베푸는 가장 큰 보시이며 은혜일 것이다. 나는 산 자들의 그 어떤 위업도 그 죽음이 베푸는 은혜만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산 자는 필멸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보편적 죽음이 개별적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하지는 못한다. 소각로 바닥의 흰 뼈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알았다. 인간은 보편적 죽음 속에서, 그 보편성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서 죽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이다. 다들 죽지만 다들 혼자서 저 자신의 죽음을 죽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은 언어화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는다. 장모의 초상을 치르면서 나는 그 절대적인 개별성에 경악했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보편적 죽음이 개별적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하지는 못한다. 소각로 바닥의 흰 뼈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알았다. 인간은 보편적 죽음 속에서, 그 보편성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서 죽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이다. 다들 죽지만 다들 혼자서 저 자신의 죽음을 죽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은 언어화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는다."
도올이 말하는 5.16이 혁명이 아닌 이유
(중략) 4.19 혁명 또한 그 주체세력인 학생이 새로운 정권을 창출해내지는 못했다는 의미에서 반혁명(半革命)으로 그친 사건이었다. 정치사적인 결과를 가지고 말한다면 혁명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단 하나의 제3의 5.16 혁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의 5.16 혁명과 정도전, 이성계의 혁명은 매우 성격이 다르다.
첫째, 5.16 혁명은 그 혁명의 원동력이 이미 4.19혁명에서 성숙되어 있었던 것이다. 5.16의 주체세력은 결코 민중과 역사에 내재하는 변화의 힘을 표출해낸 주체세력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4.19 혁명이 피흘려 이룩한 업적을 바톤 터치했을 뿐이다. 따라서 5.16은 혁명의 내용이 없는 형식만의 권력이양이었다. 5.16은 단순한 정권변화를 일으킨 쿠데타에 불과한 사건이었다. 5.16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혁명성을 부여하려고 한다면, 이념적 굴절 속에서도 그것이 일으킨 사회변화, 경제적 삶의 양식의 근원적 변화와 같은 후대의 발전적 성격에서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오리지날한 혁명성의 가치는 오히려 좌절된 4.19 학생의거로 집약되는 것이다. 5.16에 비한다면 이성계의 혁명은 기나긴 역사의 과정에서 내재적으로 성숙된 온전한 역성혁명이었다. 다시 말해서 고려역사 내부에서 온축되어온 힘을 표출시킨 정치적 필연이었다.
둘째, 5.16은 정권쟁취의 기획포착일 뿐이었으며 진정하게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를 개혁하려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지를 못했다. 다시 말해서 사회개혁의 철학보다는 정권쟁취의 타이밍 판단이 앞선 행위의 소산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성계의 혁명은 새로운 왕조의 개창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중략)
- 삼봉 정도전의 건국철학, 김용옥
Jul 23, 2012
노비컴플렉스, 정도전, 정몽주 - 정도전을 위한 변명
[태조실록]의 '정도전 졸기'에 의하면 정운경의 장모, 즉 정도전의 외할머니는 승려 김진과 여자 노비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승려 김진은 고려의 명문가인 단양 우씨 우현보 집안의 인척이었는데 자기 종인 수이와 아내와 간통해서 딸을 낳고 승려를 그만둔 후, 수이를 쫓아내고 그 아내를 데리고 살았다고 한다. 김진은 딸을 특별히 사랑하여 명문가인 연안 차씨 집안의 인척인 성지 우연의 첩으로 시집보내고 노비와 토지와 집을 모두 우연에게 물려주었다는 것이다. 후에 김진의 딸과 우연 사이에서 난 딸이 바로 정운경의처가 돠었다.
봉건시대이 양반이 여자 노비를 건드리는 것은 흔할일이었다. 또 승려가 여자를 건드리는 일도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승려가 파계까지 해가면서 그 여종을 안방에 들여놓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아마도 김진이라는 승려는 그 여자 노비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듯하다. 그러나 김진은 증손자인 정도전이 후에 자기 가문과 원수가 되어 피를 부르는 살육극을 연출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진이 속했던 우현보 가문은 고려말 구세력의 대표였고, 우현보의 손자는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의 사위였다. 우현보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디, 이들은 정도전이 처음 벼슬길이 나설 때부터 자기 집안 종의 자손이라고 업신여겄으며, 대간 벼슬에 있으면서 정도전이 벼슬을 옮길 때마다 정도전의 고신(관직임명사령장)에 성명을 해주지 않아 그를 괴롭혔다고 실록에 기록돼 있다. 봉건시대의 개혁정치가에게 핏줄시비는 오늘날의 개혁정치자에게 색깔시비만큼이나 떨쳐버리고 싶은 약한 고리였을 것이다. 정도전은 당시의 원한이 뼈에 사무첬던 듯, 조선 건국 후 우현보와 아들 3형제, 그리고 맞손자를 귀양보낸 후, 3형제에게 곤장형을 가해 몰살해버렸다. 피의 복수였던 셈이다.
이와 관련하여 '태조실록'의 "정도전 졸기"는 정도전에 대해 "옛날에 품었던 감정은 기어코 보복하려 하였다"는 평을 남기고 있다. 우씨 형제 장살사건은 정도전의 정치인생에 가장 큰 오점으로 기록된 것이다.
-
그러나 이 피비리낸 나는 살육극의 책임을 정도전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고려말에는 역성혁명세력과 구세력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적을 물고뜯는 치사한 인신공격이 횡행하였다.
한때 정도전의 가장 가까운 동지였으며 당대 선비들 사이에서 '도덕의 으뜸'으로 칭송받던 정몽주조차 대간들을 움직여 그를 탄핵하면서 "천한 혈통을 감추기 위해 본주인을 제거하려고 모함했다"는 것을 죄상으로 들었으니 정도전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본주인'이란 표현은 정도전을 우현보 집안의 노비쯤으로 본 것이요, 정도전의 개혁운동을 천민의 피를 감추기 위한 '핏줄 콤플렉스' 정도 로 깎아내린 것이다.
-
흥미로운건 고려왕조 최후의 보루이자 도덕성을 무기로 하였던 정몽주또한 정권말기 파워게임에서 극단적인 정치 공세를 했다는 점이다. 중원의 패자가 바뀌고 반도의 궁궐 안팎에선 살인의 나선이 끝이질 않던 역사의 장면에서 드러나는 야만성은 보편적 역사에 대하여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준다.
정도전의 정치사상이나 비전과는 다르게 이런 개인적인 감정에서 발아한 사사로운 보복이나 불필요하게 과격한 정적제거는 여말선초에서 부분부분 등장한다. 그의 혁명성과 현실감각이 양립할 수 있었기에 역성의 왕조수립이 가능하였다지만, 개인적인(이라고 추정되는) 사보타지와 보복은 그가 겪은 삶과 수반해야했던 열등감과 분노를 지극히 범인스럽게 표출하는 방식이였는지, 혹은 고도의 정치적 술수였는지는 모를일이다.
봉건시대이 양반이 여자 노비를 건드리는 것은 흔할일이었다. 또 승려가 여자를 건드리는 일도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승려가 파계까지 해가면서 그 여종을 안방에 들여놓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아마도 김진이라는 승려는 그 여자 노비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듯하다. 그러나 김진은 증손자인 정도전이 후에 자기 가문과 원수가 되어 피를 부르는 살육극을 연출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진이 속했던 우현보 가문은 고려말 구세력의 대표였고, 우현보의 손자는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의 사위였다. 우현보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디, 이들은 정도전이 처음 벼슬길이 나설 때부터 자기 집안 종의 자손이라고 업신여겄으며, 대간 벼슬에 있으면서 정도전이 벼슬을 옮길 때마다 정도전의 고신(관직임명사령장)에 성명을 해주지 않아 그를 괴롭혔다고 실록에 기록돼 있다. 봉건시대의 개혁정치가에게 핏줄시비는 오늘날의 개혁정치자에게 색깔시비만큼이나 떨쳐버리고 싶은 약한 고리였을 것이다. 정도전은 당시의 원한이 뼈에 사무첬던 듯, 조선 건국 후 우현보와 아들 3형제, 그리고 맞손자를 귀양보낸 후, 3형제에게 곤장형을 가해 몰살해버렸다. 피의 복수였던 셈이다.
이와 관련하여 '태조실록'의 "정도전 졸기"는 정도전에 대해 "옛날에 품었던 감정은 기어코 보복하려 하였다"는 평을 남기고 있다. 우씨 형제 장살사건은 정도전의 정치인생에 가장 큰 오점으로 기록된 것이다.
-
그러나 이 피비리낸 나는 살육극의 책임을 정도전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고려말에는 역성혁명세력과 구세력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적을 물고뜯는 치사한 인신공격이 횡행하였다.
한때 정도전의 가장 가까운 동지였으며 당대 선비들 사이에서 '도덕의 으뜸'으로 칭송받던 정몽주조차 대간들을 움직여 그를 탄핵하면서 "천한 혈통을 감추기 위해 본주인을 제거하려고 모함했다"는 것을 죄상으로 들었으니 정도전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본주인'이란 표현은 정도전을 우현보 집안의 노비쯤으로 본 것이요, 정도전의 개혁운동을 천민의 피를 감추기 위한 '핏줄 콤플렉스' 정도 로 깎아내린 것이다.
-
흥미로운건 고려왕조 최후의 보루이자 도덕성을 무기로 하였던 정몽주또한 정권말기 파워게임에서 극단적인 정치 공세를 했다는 점이다. 중원의 패자가 바뀌고 반도의 궁궐 안팎에선 살인의 나선이 끝이질 않던 역사의 장면에서 드러나는 야만성은 보편적 역사에 대하여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준다.
정도전의 정치사상이나 비전과는 다르게 이런 개인적인 감정에서 발아한 사사로운 보복이나 불필요하게 과격한 정적제거는 여말선초에서 부분부분 등장한다. 그의 혁명성과 현실감각이 양립할 수 있었기에 역성의 왕조수립이 가능하였다지만, 개인적인(이라고 추정되는) 사보타지와 보복은 그가 겪은 삶과 수반해야했던 열등감과 분노를 지극히 범인스럽게 표출하는 방식이였는지, 혹은 고도의 정치적 술수였는지는 모를일이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 세상을 읽는 반향정위
-
박흥용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만화와, 한국적 미가 가지는 교집합의 극한에서, 공간에 대한 작가의 완전한 지배와 움직임을 표상하는 선의 조화로 한국 만화가 이룩할 수 있는 아득한 경계점에 다다른다. 정지하였으나 움직이고, 작동하지만 멈춰서있는 정중동의 미장센은 황홀하다.
-
견자. 개가 풍월 보고 짖어도 열매없듯, 조선중기의 시스템은 시골 촌부생원의 서자인 그에게 가망없는 미래만을 내포했다. 주리틀려 다리가 부러진 걸 황정학이 치료하고, 견자는 황정학을 따라나서 칼을 배운다. '진짜 자유는 자존심과 오기라는 항아리가 깨질 때 얻는다'
황정학. 명문가문 적자로 태어났으나 날 때 부터 장님이었다. 아홉 살 날때까지 장독대에 갇혀있다 병아리 껍찔 깨듯 항아리를 깬다. 항아리 깨지는 소리는 천둥소리 였고, 아홉살에 막대기 하나로 집을 나온다. 길찾아 더듬고 으르렁대는 개쫓는 막대기는 차례로 닳아 없어지며 칼이 되었다.
이몽학. 넉 자 길이 무쇠칼을 한 손에 쥐고 학처럼 날아다니는 장사. 양반의 서자로 태어난 독하고 비루한 제반은 그를 호남과 호서에 알아주는 칼잡이로 만들었다. 임란을 맞아 이씨왕조를 내려치나 조선은 300년 가까이 유지되었고, 역사는 이몽학의 난이라 기록한다.
-
반향정위 反響定位, echolocation - 음파를 내보내고 되돌아온 음파를 분석하여 장애물 등을 피하여 진행방향을 결정하는 감각의 인식형태.
"장님으로 태어난 아이는 본능적으로 입을 다시면서 소리를 낸다. 혀로 입천장을 차면서 내는 소린데 백일이 되면 제법 그 소리가 여물고 단단해지지"
이몽학과 황정학, 견자가 가지는 고통의 뿌리는 같다. 눈먼 황정학은 칼로 세상의 원근을 파악하고, 견자는 황정학을 지팡이 삼아 분노를 벗고 세상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제일 곤란한 건 이몽학인데, 그는 이씨조선의 지배윤리의 한계를 알고 있으나, 황정학처럼 칼 뒤에 숨어 달을 가리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재의 시스템을 용인하는건 더더욱 불가하다. 이몽학은 인정전을 버리고 도망친 종묘와 사직을 베려하나, 우리는 역사로써 그것이 실패했다는 걸 안다. 비극은 시대를 살아간 일개의 개인으로서는 이 허무가 분명한 고통의 실체라는 것이다. 허무가 지배하는 이지러진 담벼락에서 구름을 벗어나 달을 관통하는 것, 그것은 얼마나 요원한 일인가.
Jul 22, 2012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This Was Their Finest Hour
1940년 6월 18일. 여름. 윈스턴 처칠이, 2차대전에서 독일의 영국 침공에 대해 연설하며:
...베이강 장군이 프랑스 전투라고 불렀던 전쟁이 끝이 났습니다. 저는 이제 영국 전투가 시작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전투에 문명의 생존이 달려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 영국인들의 삶과 우리가 건설한 우리 제국의 긴 역사가 달려 있습니다. 적의 모든 위력과 분노는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우리를 향할 것입니다.
히틀러는 그가 우리를 깨뜨리지 못하면 전쟁에서 질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를 이겨낸다면, 전 유럽은 해방될 것이며, 이 세상의 생명은 아마 넓고 밝은 미래를 향해 전진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다면, 그러면 온 세상은, 미합중국까지, 우리가 알고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까지, 사악한 과학의 더 음울하고, 더 기나긴 깊은 암흑시대의 심연으로 빠져들 것 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우리의 의무를 위해 일어섭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견뎌 냅시다. 그래서, 대영제국과 대영제국의 유산이 천년을 이어지고 나면,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바로 지금이 그들의 가장 위대한 시대였다고.
... What General Weygand called the Battle of France is over. I expect that the Battle of Britain is about to begin. Upon this battle depends the survival of Christian civilization. upon it depends our own British life and the long continuity of our institutions and our Empire. The whole fury and might of the enemy must very soon be turned on us now. Hitler knows that he will have to break us in this island or lose the war. If we can stand up to him, all Europe may be free and the life of the world may move forward into broad, sunlit uplands. But if we fail, then the whole world, including the United States, including all that we have known and cared for, will sink into the abyss of a new Dark Age, made more sinister, and perhaps more protracted, by the lights of perverted science. Let us therefore brace ourselves to our duties, and so bear ourselves that, if the British Empire and its Commonwealth last for a thousand years, men will say, "This Was Their Finest Hour."
-
처칠의 말처럼 2차대전 이후 영국은 냉전의 도래와 함께 열강의 최상석에서 내려오게 되고 대서양과 지중해에서의 영향력도 점차 상실하게 된다. 처칠이 그런 조국의 미래까지 예견하였을지는 몰라도, 영국이 현대사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은 바로 저 순간.
Jul 21, 2012
타인을 사랑하기, 몰락의 에티카
이성복 -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
사랑은 자기 반영과 자기 복제. 입은 비뚤어져도 바로 말하자. 내가 너를 통해 사랑하는 건 내가 이미 알았고, 사랑했던 것들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해서, 시든 꽃과 딱딱한 빵과 더럽혀진 눈(雪)을 사랑할 수 없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해서, 썩어가는 생선 비린내와 섬뜩한 청거북의 모가지를 사랑할 수는 없다. 사랑은 사랑스러운 것을 사랑할 뿐,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 아장거리는 애기 청거북의 모가지가 제 어미에게 얼마나 예쁜지를 너는 알지 못한다.
-
이 시가 충격적인 이유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었던 사실을 '대놓고' 말한다는 데에 있다. 이시의 전언을 다시 복기할 필요가 있을까.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 이라는 잠언은 자아의 권역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 대게 자아의 자기 회귀적 원환운동이기 쉬움을 단호하게 선언한다. 그것은 타인의 타자성 혹은 타자로서의 타인('시든 꽃' '딱딱한 빵' '더렵혀진 눈' '썩어가는 생선 비린내' '섬뜩한 청거북의 모가지')을 보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 운동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함으로써 '나'는 '너'의 타자성을 지운다.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이미 알았고, 사랑했던 것들"을 네게서 다시 확인하는 일이다. 이시는 공주에게 개구리는 결국 개구리일 뿐이라는 '실재'를 회피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상상'적인 층위에서 개구리를 왕자로 변용하길 즐겼던 모든 서정시들의 안이함을 공박한다.
이 시가 사랑이란 본래 나르시시즘적인 자기 배려에 지나지 않는다는 세속의 지혜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타자성을 인식하여 그로부터 타자를 배제하는 일을 정당화,합리화하고 있지도 않다. 이 시는,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서정적 사랑'이 상대방을 속이면서 스스로 속는 메커니즘이라는 사실을 적시한다. 서정적 사랑은 이중의 기만이다. 그것은 타인에게서 타자성을 거세할 뿐만 아니라 자아의 허구성을 살찌운다. 뿐만 아니라 서정적 사랑은 늘 어떤 방어적 선택이며 회피의 몸짓이기 쉽다. 그것은 '나'의 근원적인 욕망과 충동을 순화시키는 세련된 방식이자 타인의 치명적인 욕망과 충동을 외면하는 편안한 방식일 수 있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그 어떤 것을 사랑해버리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다. 이 사실의 준엄함을 인정하지 않는 한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면)의 기적은 일어날 수 없다고 위의 시는 말한다.
-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김훈, 바다의 기별'
Jul 20, 2012
박찬욱 - 청춘이여 안녕 中
이훈을 만난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데이비드 보위 노래 제목처럼 딱 '5년' 그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우리의 열광적인 청년 시절도 막을 내렸다는걸 우리는 알았다. 그가 남긴 낙서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물어 보지도 않는데 서른 살에 죽을 거라고 잒 입방정을 떨더니만 정말 서른 살에 골로간 마크 볼란..."
무인도에 한장만 가져가려면 고르겠다던 보위의 <지기 스타더스트 더 모션 픽쳐> 앨범에 수록된 로큰롤 자살엔 또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신은 카페를 그냥 지나쳤지 너무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으므로 먹지도 않았네"
그런데 왜 그대는 96년 그날 밤 신촌에서 불이 나기로 되어 있던 '롤링스톤즈' 카페에 들어갔던건가. 이만하면 박찬욱을 충분히 가르쳤다고 생각하는가, 그대는? 화장됨으로써 두 번 불탄 이훈을 양수리 찬물에 띄어보내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때, 우리는 서로에게 중년 사내의 피곤한 눈빛을 발견해야 했다. 이제 정신차릴 때가 되었다고, 그동안 이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한테 너무 오래 끌려 다녔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 순간부터 이미 우리에게는 페라라고 뭐고 안중에도 없었다.
Jul 19, 2012
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 - 신형철
알튀세르는 자서전에서 '자기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유물론에 대한 유일한 정의(定義)"라고 적었다. 우리에게는 이 말이 마치 '김훈 소설에 대한 유일한 정의'처럼 보인다. 그의 소설은 자기변명을 늘어놓지 않기 위해 고투하는 유물론자의 고백이다. 그 유물론은 좌파와 우파를 모른다. 좌파와 우파에게는 언제나 되돌아가 기댈 수 있는 이념이 있다. 그 이념에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을 부정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김훈에게 이념이 있다면 그것은 '삶의 구체성을 존중한다는 것'뿐이다. 그 구체성은 자신만의 것이고 그에게는 자기 변명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김훈의 유물론이다. 일견 그가 이 구체성이라는 덫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보편적 조건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들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혹여 그것들이 우리를 속이고 있을지라도 우선 그것들에 속아주지 않고서는 그것들을 넘어설 수도 없다. 라캉은 "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Les non dupes errent)"라고 말한다. 맥락을 달리해도 이 말은 의미심장하다. 속지 않았다고 믿는 자는 길을 잃는다. 속아주는 자만이 넘어설 수 있다. 벤야민이 희망이 없는 자에게만 희망이 있다는 요지의 말을 했을 때 그 말이 뜻하는 바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그가 필요한 이유다.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인간주의와 얼마나 많은 역사주의가 있는 것인가. 김훈은 그런 것들이 세상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는 신념에 회의적이다. 그래서 인간을 긍정하지 못하면서 인간을 말하고, 역사를 믿지 못하면서 역사소설을 쓴다. 이 역설이 김훈 소설의 힘이다. 그 역설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치열하게 동어반복한다. 역설이 아닌 것은 세계가 고통 속에 있다는 사실 뿐이다. "고통의 절대성만이 오늘날까지 계속되어온 유일한 것이다."(아도르노) 고통은 보수와 진보의 너머에 있고 어쩌면 그 고통에 가닿는 길도 보수와 진보의 너머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여전히 유물론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고통의 유물론이어야 한다. "나는 아무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서문', 남한산성) 김훈의 소설은 끝나지 않는 고통 앞에서 우는 울음이다. 이 울음이 인간과 역사에 대한 필사적인 진정성의 표현이자 순도 높은 예의가 될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신형청, 몰락의 에티카 - 속지않는 자가 방황한다
Jul 18, 2012
김현,황동규,반포치킨
대설(大雪)날 -故 김현에게
황동규
겨울하고도 흐린 날
눈도 제대로 내리지 않고
눈송이 몇 공중에 날려놓고 바람만 불다 말다 하는 날
이 식은 지구 껍질에 미열(微熱)이나마 심을 것은
그래도 버섯구름이 아니라
알맞게 거냉(去冷)한 술 한 잔이라면
오늘 양평 네 잠들어 있는 곳에 가
찬 소주 대신
가슴에 품고 온 인간 체온의 청주 한 잔 땅에 붓노니
그 땅이 네 무덤이건
우리 자주 들른 '반포 치킨'이건
그냥 지나쳐버린 어슬어슬 산천이건
작정한 듯 검푸른 하늘
바람이 눈송이 하나 무덤 위에 띄워놓고
술 방금 받는 부운 위(胃)처럼 한번 부르르 몸을 떤다.
-
김현 묻던날
(부제:기억나지, 그날? 이성복에게)
황동규
김현 묻고 돌아올 때, 그 장마 구름 잠시 꺼진 날,
우리는 과속을 했어, 60킬로 도로에서 100으로.
우리는 재빨리 도망치고 있었던 거야 추억에서.
단속하던 의경 기억나지?
의경치고도 너무 어려
우리의 복잡한 얼굴을 읽을 줄 몰랐어.
마침내 죽음의 면허를 따 영정이 되어
혼자 천천히 웃고 있는
웃고 있는 김현의 얼굴이 속절없이 아름다웠고
그 얼굴 너무 선명해서 우리는 과속을 했어.
경기도 양평의 산들이 패션 쇼를 하려다 말았고,
딱지를 뗐고,
그 딱지 뗀 힘으로
우리는 한 죽음을 벗어났던 거야.
-
"모든 글들이 다 글쓰고 싶다는 내 욕망을 자극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글들은 아주 평판이 높아 그것을 읽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하지만 마음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게 하고, 어떤 글들은 첫 줄부터 마음을 사로잡아 되풀이 그것을 읽게 만들고, 나아가 그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하게 한다. 문학비평가로서 가장 즐거운 때는 그런 글을 만날 때이다. 내 마음속의 무엇이 움직여 그 글로 내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이끌리게 하는 것일까? 그것을 생각하다보면 때로 내 마음을 움직인 글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내 마음이 움직인 흔적들만 남아, 마치 달팽이가 기어간 흔적처럼 반짝거린다. 그 흔적들을 계속 쫓아가면, 그것은 기이하게도 다시 내 마음을 움직인 작품으로 가 닿고, 그 길은 다시 그것을 쓴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으로 다가간다. 내 마음의 움직임과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한 글을 쓴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은 한 시인이 '수정의 메아리'라고 부른 수면의 파문처럼 겹쳐 떨린다. 나는 최근에 그런 떨림을 느끼게 한 한 편의 시를 읽었다. 그 시는 김지하의 '무화과'(<우리 시대의 문학>5집)라는 시이다." - 김현의 추천사
-
시인 황지우가 목울대로 넘어오는 울음을 꾹 참으며 '1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평론가'라고 추모했던 김현은 1942년 7월 29일 전남 진도군 진도읍 남동에서 태어나 1990년의 오늘, 6월 27일에 타계했다. 스무 살 되던 1962년에 <자유문학> 신인 공모로 비평가가 된 이후 '4월 혁명과 한글 세대'라는 바탕에서 30년 가까이 정열적으로 글을 읽고 또 썼다.
앞서 1966년에 단편소설도 발표했지만, 이미 스물두 살 때인 1964년에 6편의 글을 묶어 첫 번째 평론집 <존재와 언어>를 5백부 한정판으로 발간했을 정도로 그는 연습생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리그에 뛰어든 '프로'였다. 그가 김화영, 이청준, 김치수, 김승옥, 곽광수, 김병익, 김주연, 황동규, 정현종, 박상륭 등과 이룬 7, 80년대의 문학적 풍경은 깊고 풍성한 숲이었다. 그 아래로 이인성, 황지우, 이성복, 정과리 등의 나무가 쑥쑥 자랐다.
김현은 술을 많이 마셨다. 그는 반포상가 옆 반포치킨에서 부었고, 후배들의 골방에서 부었고, 술집에서 부었고, 땅에서 부어냈다. 간경화로 죽었을 때 나이는 48세였다. 음주량과 무지막지한 흡연량과 생활 습관을 감안하였을 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나, 그래도 아깝다. 아까운 죽음이었다.
-
기형도의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또한 그가 고른 이름.
Jul 17, 2012
툴레의 왕 Der König in Thule - 괴테
옛날 툴레에 왕이 있었다네,
사랑하는 애인이 죽으면서 왕에게
황금 잔을 주었는데,
왕은 죽을 때까지 그 잔을 간직했다네.
왕은 그 술잔을 제일 중히 여겨
향연 때마다 그 잔을 비웠다네.
눈이 술잔으로만 갔기에
왕은 자주 술을 마셨다네.
죽을 때가 다가오자,
왕은 왕국의 도시들을 세어
왕자에게 물려 주었지,
술잔만 빼고.
왕은 기사들과 함께
성찬을 들었지,
저기 바닷가 성에서,
선왕들이 사시던 지존한 곳에서.
늙은 술꾼 왕, 성에 서서
마지막 생명의 열정을 다 마시고,
신성한 잔을
바닷물 속으로 던졌다네.
왕은 잔이 바다 속으로 떨어져
물을 마시고 깊이 가라앉는 것을 바라보았다네.
눈꺼풀이 내려앉고
더는 한 방울도 마시지 못했다네.
>
Jul 16, 2012
사랑스런 추억, 윤동주
봄이 오든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뗴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차가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Jul 15, 2012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내가 쓴 장편소설 '칼의 노래' 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입니다. 이순신이 백의종군해서 남해안으로 내려왔더니 그 두 달 전에 원균의 함대가 칠천량에서 대패해서 조선 수군은 전멸하고 남해에서 조선 수군의 깨진 배와 송장이 떠돌아다니고 그 쓰레기로 덮인 바다에 봄이 오는 풍경을 묘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에서 버려진 섬이란 사람들이 다 도망가고 빈 섬이란 뜻으로, 거기 꽃이 피었다는 거에요. 나는 처음에 이것을 "꽃은 피었다"라고 썼습니다. 그러고 며칠 있다가 담배를 한 갑 피면서 고민고민 끝에 "꽃이 피었다"라고 고쳐놨어요. 그러면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는 어떻게 다른가. 이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입니다.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이죠.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셰계를 진술한 언어입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나의 문장과 소설은 몽매해집니다. 문장 하나하나마다 의미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를 구별해서 끌고 나가는 그런 전략이 있어야만 내가 원하고자 하는 문장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사실만을 가지런하게 챙기는 문장이 마음에 듭니다. 나는 이런 문장을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 읽었습니다. 거기 보면 그 분이 군인이기 때문에 사실에 정확하게 입각한 군인의 언어를 느낄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인이 아니면 쓸 수가 없는 문장입니다. 군소리가 없고, 무인들이 큰 칼을 한 번 휘둘러서 사태를 정리해버리듯이 한 번으로 끝내버리는 문장을 이순신은 쓰고 있더군요. 그것이 나한테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재미가 없는 문장입니다. 아무런 수사적 장치가 없는 문장. 그러나 나한테 그것은 놀라운 문장이었습니다. 암담한 패전 소식이 육지로부터 전해오는 날, 이순신은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고 씁니다. 아, 좋죠.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이것은 죽이는 문장입니다. 슬프고 비통하고 곡을 하며 땅을 치고 울고불며 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밤새 혼자 앉아있었다. 혼자 앉아 있었다는 그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것이죠. 거기에 무슨 형용사와 수사학을 동원해서 수다를 떨어 본들,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를 당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전연 수사학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강력한 주어와 동사의 세계죠. 내가 사랑하는 주어와 동사의 세계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분은 사실에 입각해 있습니다.
이순신은 또 일기에다, "오늘 어떤 녀석이 군율을 어겼기로 베었다"고 썼습니다. 기막히지요. 군율을 어겼기로 베었다. 그게 목을 베었다는 거지요. 그것이 그가 글을 쓰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완강한 사실에 입각하는 것이죠. 군율을 어겼기로 베었다. 그 머리를 베어서 장대에 끼워서 성 앞에 걸었다. 그래놓고 그 다음 문장을 계속 써요. "저녁 때 바람이 불었다." 해군들은 바람 부는 게 가장 큰 문제죠. 배들을 바닷가에 나란히 자동차 세우듯이 대놓고 있는데 바람이 불면 배들이 서로 흔들려서 배들끼리 부닥칩니다. 바람이 불면 해군은 배를 끌어서 물 위로 올려놔야 배가 부숴지지 않죠. "저녁 때 바람이 불었다. 자는 병사들을 깨워서 물가로 내려 보내서 배를 끌어올리라고 지시했다"고 씁니다. 이 부하놈 하나를 죽였다는 것 그게 뭐 별거 아니라는 듯이 서버립니다. 수사, 형용사, 부사가 하나도 안 나오고 밋밋하고 재미가 없지만, 부하를 죽였다는 문장과 바람이 불었다는 문장 사이에서 그의 문장은 삼엄한 긴장에 도달합니다. 그것은 아주 전압이 높은 문장입니다. 볼트가 높은 고압 전류가 흐르는 문장입니다.
문과대학에서는 그런 문장을 안가르치더군요. 문과대학에서는 셰익스피어, 밀턴, 워즈워스를 배웠습니다. 그것도 훌륭한 문장이었지만 내가 읽은 '난중일기'에는 그보다 더 좋은 문장이 있었습니다. 저는 장군님께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분이 돌아가신 날이 되면 꼭 노량에 가서 소주 한 병을 놓고 절을 하고 돌아옵니다.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노량은 남해도 입구인데, 아주 경치가 좋습니다. 거기 이락사(李落祠)라는 사당이 있습니다. 이순신이 바다로 떨어져 죽은 사당인데, 그 이름도 참 이순신답죠. 아무런 수사학이 없고 떨어질 '락'을 써서 이가 떨어진 바다라는 뜻이죠. 난 전국 사당이름중에서 이락사가 제일 잘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가 죽은 바다다.
이런 단순성이 온갖 슬픔보다 더 거대한 슬픔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저는 요즘 이런 명석성의 세계를 동경하고 있습니다.
Jul 14, 2012
전주 최명희 문학관
"다만, 저는 제 고향땅의 모국어에 의지하여 문장 하나를 세우고, 그 문장 하나에 의지하여 한 세계를 세워보려고 합니다. 한없이 고단한 길이지만 이 길의 끝에 이르면, 저는 저의 삶과, 저 자신이, 서로 깊은 화해를 이루기 바랍니다"
Jul 13, 2012
Jul 12, 2012
이방원
고려말 온건 개혁파의 보스이자 당대의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정몽주를 대낮 저잣거리에서 깡패들을 시켜 "담궈"버릴때 이방원의 나이는 25세였다. 이성계라도 이때부턴 아들이 마냥 대견스러워 보이진 않았을것이다. 조선조 건국까진 아들이자 동업자로써, 창업의 파트너쉽을 유지하였겠지만, 알다시피 조선왕조는 개국 이후 또다시 피로 왕좌를 덧칠하고 숙청으로 기둥을 덧대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방원은 쿠데타 당일, 아버지이자 국왕이 기거한 궁궐을 창칼로 무장한 군사로 포위하고 이성계를 구금한뒤, 아버지의 친구이자 개국의 공신인 정도전과 남은을 살해한다, 또한 배다른 동생인 방번과 방석또한 사태가 일어난 당일날 모두 죽였다. 그 후 2년뒤 방원은 다시 친형 방간과 개성에서 시가전끝에 방간파를 괴멸시키고 형의 측근들의 목을 모두 베었다. 방원이 그의형 방간을 살려둔건 혈육에 이끌린 정이라기 보단, 프로파간다를 노린 정치적 수였다고 해석한다.
왕이 된 태종은 자기의 정실부인인 민경왕후의 남자 형제들을 모두 다 주살하고, 왕자의 난때부터 같이 해온 측근들까지 죄명을 씌어 대부분 다 숙청하여, 목숨을 보전할수 있었던 태종의 측근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후 자기 사후, 외척의 득세를 염려하여 세종의 장인인 심온을 사살하고 인척 대부분의 정치력을 거세시켜버린다. 56세로 숨을 거뒀다. 태종은 조선의 3번째 임금이었고, 네 번째 임금의 자는 원정이고, 이름은 이도, 묘호는 세종이다.
Jul 9, 2012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序文
세상을 향하여 말할 때, 나는 늘 나 자신의 어지러운 생명에 입각해 있었다. 그래서 내말은 만신창이가 되어 허덕지덕하였다. 나는 내 말이 눈물이나 고름처럼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액즙이기를 바랐다. 그 분비물로 보편적 진실을 말하려는 허영심이 나에게는 없다. 나는 그 진물이 내 몸의 일부이기만을 바랐다.
Jan 28, 2012
로저 젤라즈니 - 폭풍의 이 순간
용기의 에센스란 결국 그런 것이다.
당신이 그때까지 했던 모든 일, 하고 싶어했거아 싶어하지 않았던 일들, 그리고 했으면 좋았다고 생각하거나 안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일 들의 총합에 의해 결정된 무의식적인 순간이자, 순간적으로 척추신경을 타고 오르는 불꽃인 것이다. 고통은 그 뒤에 찾아온다.
당신이 그때까지 했던 모든 일, 하고 싶어했거아 싶어하지 않았던 일들, 그리고 했으면 좋았다고 생각하거나 안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일 들의 총합에 의해 결정된 무의식적인 순간이자, 순간적으로 척추신경을 타고 오르는 불꽃인 것이다. 고통은 그 뒤에 찾아온다.
김연수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인간의 수명이 70살이라고 할 때, 우리는
1. 38300리터의 소변을 본다.
2. 127500번 꿈을 꾼다.
3. 2700000000번 심장이 뛴다.
4. 3000번 운다.
5. 400개의 난자를 생산한다.
6. 40000000000개의 정자를 생산한다.
7. 540000번 웃는다.
8. 50톤의 음식을 먹는다.
9. 333000000번 눈을 깜빡인다.
10. 49200리터의 물을 마신다.
11. 563킬로미터의 머리카락이 자란다.
12. 37미터의 소톱이 자란다.
13. 331000000리터의 피를 심장에서 뿜어낸다.
할아버지는 4번과 7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손수 종이에다 계산을 했어. 이번에는 곱하기 문제가 아니라 나누기 문제였어.
540000÷3000=180
“하루에 사십이해일천이백만경 번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내는 인간들로 가득 찬 이 지구에서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이 180이라는 숫자 때문이다. 인간만이 같은 종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만이 웃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180이라는 이 숫자는 이런 뜻이다. 앞으로 네게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테고, 그중에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일이 일어나기도 할 텐데, 그럼에도 너라는 종(種)은 백팔십 번 웃은 뒤에야 한 번 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이 사실을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된다.”
그렇게 말하고 잠시 말을 멈추더니 할아버지가 말했어.
“그러니 네가 유명한 작가가 된다면 우리 인간이란 백팔십 번 웃은 뒤에야 겨우 한 번 울 수 있게 만들어진 동물이라는 사실에 대해 써야만 하는 거야.”
Jan 18, 2012
소쇄원
광주버스 터미널에서 한시간마다 한 대씩 오는 버스를 타면 40분을 내리달려 담양 소쇄원에 도착한다. 눈내리는 1월에 소쇄원은 초록이 없고, 늘어선 정자들 가운데 눈이 쌓인다. 소쇄원은 조광조의 젊은 제자 양산보가 기묘사화 후, 담양에 낙향하여 지은 정자이다. 정치적으로 거세된 젊은 선비의 사원은 겨울날 더욱 불우하다.
양산보가 담양에 지은 정자는 그들의 사상적 부스러기이자 마스터베이션이었다. 그의 스승과 선배와 동무가 쫓았던 정치적 낙원과 고향에 내려와 지은 작은 정원의 간극에 대하여 당대 누구도 말하지 않았으나,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그의 스승이 여름 산맥같은 젊음과 순결함으로 이룩하려 했던 왕도와 성리학의 완전무결한 작동을 위한 나라는 조선반도와 사대문 안래 구현될 수 없었다. 그는 경복궁과 훈구파 대신들간의 정치적 싸움 끝에, 정치적 효용성을 다 소진당한 뒤 기묘사화에 쓸려갔다.
조광조는 조선 성리학의 이념적 정점이었다. 김훈의 말을 빌려 그는 '가장 완강하고 가장 순결한 복고주의의 힘으로 가장 미래지향적인 정치 개혁'을 단행했다. 소학의 원칙주의를 체질화한 그는 이념과 현실의 차이를 긍정할 수 없었다. 조광조의 비극은 그 간극의 불인지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어려서 총명하였고, 젊어서 등고登高 하였다. 조선조 엘리트의 요람 성균관에서 독보적인 총아였으며, 중종 10년 문과에 급제한뒤, 중종 13년 정2품 사헌부 대사헌에 올라, 중종 14년에 유배지에서 임금이 내린 사약을 받아 경복궁으로 절한 뒤 죽었다. 그 뒤 조광조는 국운이 바스라질 조선조의 황혼 무렵까지 사림들로부터 성역화 되었다.
양산보가 담양에 지은 정자는 그들의 사상적 부스러기이자 마스터베이션이었다. 그의 스승과 선배와 동무가 쫓았던 정치적 낙원과 고향에 내려와 지은 작은 정원의 간극에 대하여 당대 누구도 말하지 않았으나,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그의 스승이 여름 산맥같은 젊음과 순결함으로 이룩하려 했던 왕도와 성리학의 완전무결한 작동을 위한 나라는 조선반도와 사대문 안래 구현될 수 없었다. 그는 경복궁과 훈구파 대신들간의 정치적 싸움 끝에, 정치적 효용성을 다 소진당한 뒤 기묘사화에 쓸려갔다.
조광조는 조선 성리학의 이념적 정점이었다. 김훈의 말을 빌려 그는 '가장 완강하고 가장 순결한 복고주의의 힘으로 가장 미래지향적인 정치 개혁'을 단행했다. 소학의 원칙주의를 체질화한 그는 이념과 현실의 차이를 긍정할 수 없었다. 조광조의 비극은 그 간극의 불인지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어려서 총명하였고, 젊어서 등고登高 하였다. 조선조 엘리트의 요람 성균관에서 독보적인 총아였으며, 중종 10년 문과에 급제한뒤, 중종 13년 정2품 사헌부 대사헌에 올라, 중종 14년에 유배지에서 임금이 내린 사약을 받아 경복궁으로 절한 뒤 죽었다. 그 뒤 조광조는 국운이 바스라질 조선조의 황혼 무렵까지 사림들로부터 성역화 되었다.
Jan 13, 2012
알면 사랑한다 - 최재천
정은임의 FM 영화음앙을 팟캐스트로 다시 접하게 된지 반년이 지났다. 92년 첫 방송을 시작하였으니, 지금 시점으로 20년이 지난 셈이다. 많은 시간 뒤에 지금 다시 그녀와 게스트, 아니 정성일과 그녀가 나눈 대화를 듣다보면, 그들이 언급하며 긍정적으로 전망한 배우와 감독의 직업적 성취가 대부분 맞아 떨어졌다는데에 놀란다. 정성일은 그의 말을 빌려 영화에 일생의 사랑을 건 사람이며, 정은임은 대화를, 영화를, 그리고 주변과 세상에 대해 깊이 경청할 수 있는 전투력의 소유자였다.
한 평생을 영화로 소비한 정성일은 사랑하여 알게되었응 것이고, 정은임은 그녀의 '듣는' 재능으로 알게되면서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나오는 집중과 몰입은 <정영음> 이 다른 좋은 라디오 프로그램보다 더욱 좋은 무언가가 되도록 만들었다.
한 평생을 영화로 소비한 정성일은 사랑하여 알게되었응 것이고, 정은임은 그녀의 '듣는' 재능으로 알게되면서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나오는 집중과 몰입은 <정영음> 이 다른 좋은 라디오 프로그램보다 더욱 좋은 무언가가 되도록 만들었다.
Jan 5, 2012
김추자, 장진영
"..대학교 신입생 노래자랑에서 1위를 하였고, 그 해 신중현의 녹음실로 찾아갔다. 신중현은 김추자의 노래를 듣고 곡을 주었고, 1969년 데뷔 음반이 발표되었다. 가창력과 섹시한 춤을 겸비한 김추자는 197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고,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유행어까지 생겼다"
"대부분 신중현이 작곡한 김추자의 음악은 신중현이 추구하던 한국적 록이었다. 사이키델릭 록처럼 당시 유행하던 트로트와 차별되는 현대적인 음악에 한국적인 요소를 섞은 음악이었다." - 위키피디아 김추자 항목 -
사람의 목소리는 경험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추억을 끌어당겨준다. 사람의 목소리에는 생명의 지문이 찍혀 있다. 이 지문은 떨림의 방식으로 몸에서 몸으로 직접 건너오는데, 이 건너옴을 '관능'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그러므로 내가 타자의 목소리를 들을 때, 나는 타자를 경험하는 것이다.
김추자는 어떤가. 김추자는 어지럽다. 김추자 목소리의 본질은 환각과 도발이다. 김추자의 여성성은 내연기관처럼 끊임없이 폭발하고 배기한다. 이 폭발의 절정이 음악적 기율로 통제될 때가 김추자의 가장 좋은 순간들이다. 사랑을 노래할 때 김추자의 목소리는 사랑을 손짓해 부르기보다는 사랑을 부르고 있는 자신의 내면을 가열차게 터뜨려버린다. 그래서 김추자의 노래는 상대가 없는 독백처럼 들린다. 이 독백은 맹렬한 독백이다. 이것이 김추자의 도발이다.
故 장진영이 김추자를 다룬 영화에 출연할뻔 했었다는 사실을 들었을때 매우 안타까웠다. 김추자의 광대와 장진영의 볼테가 서로 허물어져, 그의 영화에서 피어날 김추자를 상상했다. 매니저에게 소주병으로 얼굴을 찍히고, 안무와 가사로 인해 파견 간첩이라는 블랙코미디를 생산해냈던, 그 옛날의 김추자. (물론 그런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배우의 역량 보단 감독의 역할이 지대하니, 그런 결과물이 나오지 못하였을수도 있을것이다.) 장진영은 암투병으로 죽었고, 김추자는 아직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것이다.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Subscribe to:
Posts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