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23, 2012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 세상을 읽는 반향정위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당패 광대는 얼굴을 감췄으니 병신 노릇도 좋고 미치광이 노릇도 좋고 거리낄 것이 없다. 속모습의 제 얼굴을 겉모습의 탈바가지에 의지하고 만판으로 덩실댄다. 그저 그 가면을 빙자해서 모든 굴레를 벗어던지고 살판나게 뛰어다니니- 그 가면이 광대의 자유가 아니고 뭐냐. 광대가 가면 뒤에 숨어 자유하는 것처럼 너도 네 칼 뒤에 숨어서 자유해라.- 황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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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용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만화와, 한국적 미가 가지는 교집합의 극한에서, 공간에 대한 작가의 완전한 지배와 움직임을 표상하는 선의 조화로 한국 만화가 이룩할 수 있는 아득한 경계점에 다다른다. 정지하였으나 움직이고, 작동하지만 멈춰서있는 정중동의 미장센은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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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자. 개가 풍월 보고 짖어도 열매없듯, 조선중기의 시스템은 시골 촌부생원의 서자인 그에게 가망없는 미래만을 내포했다. 주리틀려 다리가 부러진 걸 황정학이 치료하고, 견자는 황정학을 따라나서 칼을 배운다. '진짜 자유는 자존심과 오기라는 항아리가 깨질 때 얻는다'

황정학. 명문가문 적자로 태어났으나 날 때 부터 장님이었다. 아홉 살 날때까지 장독대에 갇혀있다 병아리 껍찔 깨듯 항아리를 깬다. 항아리 깨지는 소리는 천둥소리 였고, 아홉살에 막대기 하나로 집을 나온다. 길찾아 더듬고 으르렁대는 개쫓는 막대기는 차례로 닳아 없어지며 칼이 되었다.

이몽학. 넉 자 길이 무쇠칼을 한 손에 쥐고 학처럼 날아다니는 장사. 양반의 서자로 태어난 독하고 비루한 제반은 그를 호남과 호서에 알아주는 칼잡이로 만들었다. 임란을 맞아 이씨왕조를 내려치나 조선은 300년 가까이 유지되었고, 역사는 이몽학의 난이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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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향정위 反響定位, echolocation - 음파를 내보내고 되돌아온 음파를 분석하여 장애물 등을 피하여 진행방향을 결정하는 감각의 인식형태.

"장님으로 태어난 아이는 본능적으로 입을 다시면서 소리를 낸다. 혀로 입천장을 차면서 내는 소린데 백일이 되면 제법 그 소리가 여물고 단단해지지"

이몽학과 황정학, 견자가 가지는 고통의 뿌리는 같다. 눈먼 황정학은 칼로 세상의 원근을 파악하고, 견자는 황정학을 지팡이 삼아 분노를 벗고 세상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제일 곤란한 건 이몽학인데, 그는 이씨조선의 지배윤리의 한계를 알고 있으나, 황정학처럼 칼 뒤에 숨어 달을 가리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재의 시스템을 용인하는건 더더욱 불가하다. 이몽학은 인정전을 버리고 도망친 종묘와 사직을 베려하나, 우리는 역사로써 그것이 실패했다는 걸 안다. 비극은 시대를 살아간 일개의 개인으로서는 이 허무가 분명한 고통의 실체라는 것이다. 허무가 지배하는 이지러진 담벼락에서 구름을 벗어나 달을 관통하는 것, 그것은 얼마나 요원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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