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21, 2012
타인을 사랑하기, 몰락의 에티카
이성복 -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
사랑은 자기 반영과 자기 복제. 입은 비뚤어져도 바로 말하자. 내가 너를 통해 사랑하는 건 내가 이미 알았고, 사랑했던 것들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해서, 시든 꽃과 딱딱한 빵과 더럽혀진 눈(雪)을 사랑할 수 없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해서, 썩어가는 생선 비린내와 섬뜩한 청거북의 모가지를 사랑할 수는 없다. 사랑은 사랑스러운 것을 사랑할 뿐,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 아장거리는 애기 청거북의 모가지가 제 어미에게 얼마나 예쁜지를 너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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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충격적인 이유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었던 사실을 '대놓고' 말한다는 데에 있다. 이시의 전언을 다시 복기할 필요가 있을까.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 이라는 잠언은 자아의 권역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 대게 자아의 자기 회귀적 원환운동이기 쉬움을 단호하게 선언한다. 그것은 타인의 타자성 혹은 타자로서의 타인('시든 꽃' '딱딱한 빵' '더렵혀진 눈' '썩어가는 생선 비린내' '섬뜩한 청거북의 모가지')을 보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 운동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함으로써 '나'는 '너'의 타자성을 지운다.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이미 알았고, 사랑했던 것들"을 네게서 다시 확인하는 일이다. 이시는 공주에게 개구리는 결국 개구리일 뿐이라는 '실재'를 회피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상상'적인 층위에서 개구리를 왕자로 변용하길 즐겼던 모든 서정시들의 안이함을 공박한다.
이 시가 사랑이란 본래 나르시시즘적인 자기 배려에 지나지 않는다는 세속의 지혜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타자성을 인식하여 그로부터 타자를 배제하는 일을 정당화,합리화하고 있지도 않다. 이 시는,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서정적 사랑'이 상대방을 속이면서 스스로 속는 메커니즘이라는 사실을 적시한다. 서정적 사랑은 이중의 기만이다. 그것은 타인에게서 타자성을 거세할 뿐만 아니라 자아의 허구성을 살찌운다. 뿐만 아니라 서정적 사랑은 늘 어떤 방어적 선택이며 회피의 몸짓이기 쉽다. 그것은 '나'의 근원적인 욕망과 충동을 순화시키는 세련된 방식이자 타인의 치명적인 욕망과 충동을 외면하는 편안한 방식일 수 있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그 어떤 것을 사랑해버리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다. 이 사실의 준엄함을 인정하지 않는 한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면)의 기적은 일어날 수 없다고 위의 시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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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김훈, 바다의 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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