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가난한 가정에 태어난 것이 꼭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목표가 극도로 단순해진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 게다가 사춘기 때 개똥철학에 현혹되지 않는 것. 머리가 하늘로 올라가려는 것을 방지하고 늘 땅 위에 발붙이게 하는 것, 등등 사람을 현실적으로 만든다. (아,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기질이 고체보다는 기체에 가까운 사람들은 아무리 환경이 그렇더라도, 결국 형이상학으로 치닫게 돼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고 하다보면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그러다가 40대가 돼 어릴 때 부러워하던 부잣집 아들래미들을 만나면, 이제 그들과 나의 차이는 없다. 그들의 배가 나오고 허리의 경계는 없어지고 근육은 풀어헤쳐져 있는 것이 나와 다른 점일 뿐. 결국 짧지 않은, 그러나 유한한 인간의 삶 속에서 오래 남는 것은, 최신 장난감이나 외제 학용품이 아니라, 몸뚱아리라는 것.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운한 놈이라고 여겨질 때, 재수도 없이 왜 이런 부모에게 태어났는지 한탄스러울 때, 하늘이 납짝 내려앉아 지구 표면을 싸악 갈았으면 좋겠다고 생각될 때, 이러한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몸 간수다. 다른 모든 것은 남 탓할 수 있고, 사회 탓할 수 있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은 모르겠지만 아무리 허약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몸은 다스릴 수 있고 몸을 단련시킬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몸이야 말로 세상에서 유일한 ‘내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몸을 함부로 굴린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티브이 앞에서 낭비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 바보 상자 앞에서 아무 생각없이 판타지를 키우고 욕을 하고 비웃고 하다보면 불행의 요소는 복리로 불어나는데도, 줄창 티브이 앞에만 붙어있는다. 그러다 보면 몸의 선은 다 망가지고 부위와 부위의 경계는 모호해지며 근육은 미친년 머리마냥 풀어헤쳐진다."
-baham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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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절한 책들을 압도하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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