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30, 2012

김성근





'한계를 먼저 인정하지 마라. 안되면 될때까지 하라. 포기하지 마라. 인생은 결국 생각한대로 흘러가게 돼 있다' - 김성근

 의지와 철학이 머리통에만 머무는게 아니라, 그것이 삶으로 삼투될 때, 그리고 몇겹의 세월을 걸치게 될 때, 그것을 역사라 한다. 김성근의 팀을 운영하는 방식과, 게임에 대한 집착과 승부욕과 신중하지 못한 언행에 대해 많은 이들이 반감을 가진다. 나는 그가 해야할 말을 하지 않아서 입은 손해보다 부러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여 입은 손해가 훨씬 클 인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절대적으로 우수한 감독을 넘어서 야구의 대가를 이룬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유에는, 단순하게 좋은 성적만으론 충족과 설명이 불가한, 그의 삶이 만들어온 역사가 그의 철학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재일교포 출신으로 젊은 시절 아웃사이더의 길을 걸어온 그는 프로야구 구단에 7번 고용되어서, 7번 해임당했다. 프런트와 불협화음 하였고, 수뇌부와 껄끄러웠다. 좋은 성적을 냈으나 해고당한 경우도 많았다. 2001 처참한 전력의 LG구단을 시즌 4위에 올려놓고, 준 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거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당시 최강전력의 삼성 라이온즈와 명승부를 펼쳐냈으나, "이건 김성근 야구지 LG 야구가 아니다" 라는 말과 함께 구단수뇌부의 인사재편과 함께 해고당했다. 그가 LG 선수들과 전설적인 시즌을 써내려간후 10여년간, 김성근의 스타일은 많은 비난을 받아왔으나 오늘날 김성근의 스타일에 영향을 받지 않은 구단은 (말도 안되게 야구를 못하는 구단을 제외하곤) 없다.

 수뇌부와의 마찰로 SK 와이번스를 떠난 그는, 전 게임벤처회사 사장이자 야구광인 아들 뻘인 남자가 구단주로 있는 고양 원더스에서 감독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허 민) 구단주의 간곡한 요청과 그동안 나를 믿고 따라 준 선수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 프로야구의 저변을 발전시키기 위해 앞으로도 혼신을 다해 선수들을 지도할 것"라며 구단과 재계약 했다. 그가 프로야구 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은 요원할 것이다.

 올리버 스톤이 감독한 애니 기븐 선데이의 알 파치노처럼, 그도 결국 프로무대로 돌아와 다시한번 시퍼런 진검승부를 벌이는 것을 보고 싶지만... 글쎄.

Aug 29, 2012

애니 기븐 선데이, 인치의 싸움, 김성근



I don't know what to say, really. Three minutes to the biggest battle of our professional lives. All comes down to today, and either, we heal as a team, or we're gonna crumble.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3분후에 우리의 커리어 사상 가장 큰 전투가 벌어진다. 모든게 오늘 결판난다. 우리가 온전한 팀으로 살아나던가, 부숴지던가.


Inch by inch, play by play. Until we're finished. We're in hell right now, gentlemen. Believe me. And, we can stay here, get the shit kicked out of us, or we can fight our way back into the light. We can climb outta hell... one inch at a time. Now I can't do it for ya, I'm too old. 

우리가 끝나기 전까지, 매 순간마다, 한 인치의 싸움인 것이다. 제군들, 우린 지금 지옥에 와 있다. 여기에 처박혀서 굴욕적으로 패배하던가, 아니면 싸워이겨 지옥에서 기어올라와 광명을 얻을 수도 있다.  조금씩, 한 번에, 1인치씩. 내가 해줄 수 있는건 없어, 난 너무 늙었거든.

I look around, I see these young faces and I think, I mean, I've made every wrong choice a middle-aged man can make. I, uh, I've pissed away all my money, believe it or not. I chased off anyone who's ever loved me. And lately, I can't even stand the face I see in the mirror. 

자네들의 젊은 얼굴들을 보고 난 중년 남자가 할수 있는 가장 큰 실수를 저질러버렸다고 생각한다. 믿을진 모르겠지만.... 난 내 돈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나를 사랑해줬던 사람들도 다 등 떠밀어버렸지. 요즘은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보는 것조차도 싫어진다.

You know, when you get old, in life, things get taken from you. I mean, that's... that's... that's a part of life. But, you only learn that when you start losin' stuff. You find out life's this game of inches, so is football. Because in either game - life or football - the margin for error is so small. 

나이를 먹으면 여러가지를 잃게된다. ...그게 인생이야. 하지만 잃기 시작하면서 한 가지 배우는 것이있지. 그건 바로, 인생은 1인치의, 1인치로 판가름나는 게임이란 것이다. 풋볼또한 그렇다. 인생이건 풋볼이건 실수를 범하긴 매우 쉽지.

I mean, one half a step too late or too early and you don't quite make it. One half second too slow, too fast and you don't quite catch it. The inches we need are everywhere around us. They're in every break of the game, every minute, every second. 

반 걸음만 늦거나 빨라도 성공 할수 없고, 반 초만 늦거나 빨라도 잡을 수 없어. 모든 일에서 몇 인치로 문제가 결정나지. 경기 중에 생기는 모든 기회마다, 매분, 매초가 다 그래. 


On this team we fight for that inch. On this team we tear ourselves and everyone else around us to pieces for that inch. We claw with our fingernails for that inch. Because we know when add up all those inches, that's gonna make the fucking difference between winning and losing! Between living and dying!

우리는 그 몇 인치를 위하여 싸워야 한다. 우리는 그 몇 인치 때문에 몸이 망가지도 하고 남의 몸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그 몇인치를 위해 우린 주먹을 움켜쥔다.

왜냐면, 우린 그 인치들이 합쳐져서 승패를 뒤바꾼 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왜냐면, 그것이 삶과 죽음을 갈라놓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I'll tell you this, in any fight it's the guy whose willing to die whose gonna win that inch. And I know, if I'm gonna have any life anymore it's because I'm still willing to fight and die for that inch, because that's what living is, the six inches in front of your face.

어떤 싸움에서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남자만이 그 인치를 얻게된다. 만약 내가 더 살게 된다면 그건 아직 그 인치를 위해 싸우고 죽을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면 제군들의 눈 앞에 있는 6인치가, 그것이 삶이란 것이니까!

Now I can't make you do it. You've got to look at the guy next to you, look into his eyes. 
Now I think ya going to see a guy who will go that inch with you. Your gonna see a guy who will sacrifice himself for this team, because he knows when it comes down to it your gonna do the same for him. That's a team, gentlemen, and either, we heal, now, as a team, or we will die as individuals. That's football. guys, that's all it is. Now, what are you gonna do? 

내가 제군들에게 이뤄줄 수는 없다. 옆에 있는 동료를 봐라, 그 놈의 눈을 봐라. 너와 같이 그 인치를 위해 같이할 사내가 보일 것이다. 팀을 위해 자기자신을 희생할 사내가 보일 것이다. 왜냐면 너도 똑같이 그를 위해 희생할 것이니까. 이게 바로 팀이란 것이다 제군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팀으로써 일어나지 않는 다면 우린 결국 개인으로 죽을 뿐이다. 이게 바로 풋볼이다, 제군들, 이게 전부야. 자, 그럼 이제 어떡할텐가?


Aug 19, 2012

너는 지옥으로 갈테니 나도 그곳으로 가리라 그곳이 내게는 천국이리니





정욕에 휩싸인 성직자가 자기기만을 일삼으며 파리를 불태우려하는 내용을 읊조리는 디즈니 만화는 이제 다시 나오긴 힘들것이다.



Aug 18, 2012

그때 내 존재는 가장 빛이 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여러 모로 문제가 많은 인간이다.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하고 싫은 마음을 얼굴에 표시내는 종류의 인간이다. 하지만 글을 쓸 때, 나는 한없이 견딜 수 있다. 매년 더이상 할 수 없다고 두 손을 들을 때까지 글을 쓰고 난 뒤에도 한 번 더 고쳐본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그때 내 존재는 가장 빛이 나기 때문이다."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Aug 15, 2012

시오노 나나미, 질투와 시기, 지단


 시오노 나나미가 시기(선망)와 샘을 구분한 에세이를 쓴 적이 있는데, 간단히 말해 시기는 갖지 못한 사람이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이고 샘은 가진 사람이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뭐, 이거야 이 사람 나름의 정의이지 우리말에 알맞은 것은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로 말하자면 오셀로는 질투에 희생된 사람이고 이아고는 시기(선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사람이다. 그래서 오셀로에게는 자살이 허용되었으나 이아고는 처형당했다는 것이다. 덧붙여 <오셀로>에 대한 오손 웰스의 평가에서 "이아고는 임포텐츠였다"고 하니, 시기의 핵심은 발기불능이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다.

  비속한 비유를 하자면, 서지 않는 남자가 서는 남자들을 보며 느끼는 것이 시기이고,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 남편을 둔 아내가 남편에게 달라붙는 여자들을 보며 느끼는 것이 질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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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으로서 공화정에 대한 비전, 한 시민으로서 조국에 대한 사랑과 믿음, 문장가로서 수려한 문장의 소유자, 인간으로서 참된 친구이자 신사였던 키케로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왜곡당한 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역사속에 등장하는 쾌남들에 대한 중년여자의 음기섞인 애정의 시선을 알아차린 뒤론 그녀의 저작을 좀 더 귀엽게 읽을수 있게되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을 읽다보면 그녀가 싫어하는(혐오하는) 남성들이 세 부류로 나뉜다.

 1. 무능한 자. 2. 무능하면서 허세만 가득한 자. 3. 지루한 사람.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이는 "지루한 사람"이라는 부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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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에 대하여 쓴 글이 로마인 이야기 뒷부분에 있다. 토티와 더불어 플레이메이커 시대의 마지막 DNA를 간직한 그가 유벤투스에서 뛰던 시절을 그녀는 축구에 미친나라 이태리에서 보았을것이고 (지단의 그 "유벤투스"시절 말이다. 이건 정말 대단하다.), 빼어난 피지컬을 이용한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전투적인 플레이와, 유연함을 갖춘 개인기, 혼자의 힘으로 경기를 뒤집고 팀을 움직일수 있었던 경이로움을 보고 백인대장이라 칭했다. 절묘하다. 아주 기가 막히는 비유다. 저런 말은 축구를 알고, 남자도 알아야 하며, 역사도 조금 알아야 나올만한 쫀득한 표현 아닌가. 글을 읽고나서 생각했다. "이 여자는 야하고, 그만큼 멋지다."



 그 즈음부터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은 더 확실하게도 여성잡지에서 다룬 명배우들 열전이나, 회원제 클럽의 남자 에스코트들을 평가하는 글처럼 느껴졌다. 좋은의미로 더 즐거운 독서. 한니발, 아프리카누스, 술라, 그라쿠스 형제, 카이사르, 아우구스티누스, 메메드 2세, 로렌초 데 메디치, 체사레 보르지아,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시오노 나나미의 '게이친구' 포지션이고) 기타 등등 기타등등. 그녀는 역사와 연애하는 여자인 셈이다. 중고등학교 때의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알파메일에 대한 소년적 동경심으로 읽었다면, 지금 다시 읽으면 더 쏠쏠한 재미가 있다. 그녀는 확실히 좋은 작가다.



Aug 14, 2012

차이코프스키, 비창




 "내가 이 교향곡을 처음 만난 건 나이 스물 즈음이었다. ‘철들다’라는 말이 “세상을 안다”는 뜻보다 “세상과 타협할 줄 안다”는 뜻에 가깝다는 것을 눈치 채면서 “그렇다면 철들기를 거부할 수밖에 없지”라고 어쭙잖게 다짐하기도 했던 그런 때였다. 세상과의 불화는 이미 예정되었는데, 마치 세상의 모든 고뇌를 양어깨에 짊어진 양 인상을 찌푸린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며 들었던 음악 중 하나가 《비창》이었다." / 홍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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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의 작품 중 최후 걸작이 된 "교향곡 제6번 비창"을 작곡했다. 그리고 11월 6일, 의문의 죽음으로 세상을 떠났다. 공식적으로는 끓이지 않은 물을 들이켜서 콜레라로 죽었다라고 알려졌지만 일각에서는 차이코프스키가 당대의 실권자의 조카와 동성애 관계를 맺었고, 실권자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차이코프스키에게 비소를 먹도록 강요하여 자살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러나 명백한 증거가 없는 탓에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Aug 10, 2012

홍명보와 박경훈, 패션


요 근래 내가 본 유명인들중에서 연예인을 제외하고, 가장 옷을 잘입은 남자는 홍명보다. (연예인중에선 이병헌) 딱맞는 어깨선, 길지도 짧지도 않는 바짓단 길이, 손목뼈까지 덮으며 셔츠가 약간 보이는 재킷의 팔기장, 비교적 얌전한 슈트에 비하여 경쾌한 넥타이까지. 검색으로 알아보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홍명보 본인의 코디는 아니고, LG패션이 제공한 150~200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양복이지만, 홍명보보다 더 좋은 몸과(그런 사람은 극히 적겠지만) 더 비싼옷을 가지고도 옷을 이상하게 입는 사내들에 비하면 홍명보는 단연 베스트 드레서이다. 제일모직의 란스미어라인과 비슷하나 약간 처지는 가격대를 형성하지만, 이번에 LG패션은 마케팅에서 호성적을 거둔셈. 그를 제외하고 내가 본 체육인들중 옷을 잘입은 이는 박경훈 제주FC감독이다. 홍명보의 패션이 협찬의 작품이라고 볼때 어떤 면에선 박경훈 감독이 멋을 아는 사내라고 할수 있겠지만, 가끔 그 창의력이 과했을때의 사진을 보고나선 그 전투력을 아주 조금 줄이면 더욱 멋질텐데라고 생각했다. 쓰고보니 공교롭게도 둘 다 축구인이다. 축구가 요하는 활동량과 신체적인 조건을 생각해볼때, 그만큼 패션에는 키나 얼굴보단(두 명 모두 미남이지만), 몸에 밸런스와 선이 중요하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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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코어스가 이렇게 말했다. "경박스럽지 않게 섹시하게 보이고 싶다면, 35세처럼 입을 것. 브래드 피트는 40세. 커트 러셀은 53세, 주드 로는 31세. 그런데 그들의 스타일은 모두 35세다. 좀 젊은 남자는 세련되고 교양있게 보이려고 수트를 입는다. 나이 든 남자는 좀 더 젊게 느끼려고 캐쥬얼 복장으로 간다. 이 모든 것이 합쳐지면 세상 남자들은 35세다" 



Aug 9, 2012

바하와 슈베르트



"내가 운전하면서 자주 슈베르트를 듣는 것은 그 때문이야. 질이 높은 치밀한 불완전함은 인간의 의식을 자극하고 주의력을 일깨워주거든. 어떤 종류의 불완전한을 지닌 작품은 불완전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소세키의 <고후>와 마찬가지로 슈베르트의 D장조 소나타에서는 인간이 영위하는 한계를 듣게 되지. 어떤 종류의 완전함이란 불완전함의 한없는 축적이 아니고서는 실현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거야."
-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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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희.노.애.락으로 쪼개지고 구획되는 것이 아니라 점성강한 물감이 빠랫뜨에서 으깨어져 뭉개지듯이 번져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세상은 명석성으로 베어져 손,오 위에 걸쳐져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슈베르트를 듣고 또 들었다.

 죽이고 싶은 만큼 사랑한다 같은 유치한 말들과, 몸으로 으깨지지만 그 와중에도 절대적으로 불가해하였던 질문들과, 처참한 생존권을 내걸고 벌이는 승산없는 파업소식을 라디오로 들으며 가죽시트에 몸을 밀어넣을 때 느끼는 안도감과 연달아 오는 죄책감 속에서, 슈베르트의 감정선은 번져 나갔다.

 바하는 어떤가, 그는 악보로 세상을 재정립하고, 논리로 정열하여 숭고미를 빚어내었다. 그 음악적인 정언명령 앞에선, 인간사의 모든 고난과 감정이, 신과 사도의 영광과 구원 모두 종속된다. 완벽하리만치 철저한 음악적 규율아래 삼라만상이 촘촘히 메달려진 그의 음악에서, 모든 것들은 질서로 수렴하였고, 질서는 아름다움이 되었다. 악보 밖, 거리와 궁궐에선 결코 세워질수 없는 가혹하리만치 절대적인 완벽함을 그는 음악으로 구현하였다.


바하는 동경하며, 슈베르트의 음악으론 동질감을 느낀다.




Aug 8, 2012

가난과 몸뚱아리


"사실, 가난한 가정에 태어난 것이 꼭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목표가 극도로 단순해진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 게다가 사춘기 때 개똥철학에 현혹되지 않는 것. 머리가 하늘로 올라가려는 것을 방지하고 늘 땅 위에 발붙이게 하는 것, 등등 사람을 현실적으로 만든다. (아,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기질이 고체보다는 기체에 가까운 사람들은 아무리 환경이 그렇더라도, 결국 형이상학으로 치닫게 돼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고 하다보면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그러다가 40대가 돼 어릴 때 부러워하던 부잣집 아들래미들을 만나면, 이제 그들과 나의 차이는 없다. 그들의 배가 나오고 허리의 경계는 없어지고 근육은 풀어헤쳐져 있는 것이 나와 다른 점일 뿐. 결국 짧지 않은, 그러나 유한한 인간의 삶 속에서 오래 남는 것은, 최신 장난감이나 외제 학용품이 아니라, 몸뚱아리라는 것.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운한 놈이라고 여겨질 때, 재수도 없이 왜 이런 부모에게 태어났는지 한탄스러울 때, 하늘이 납짝 내려앉아 지구 표면을 싸악 갈았으면 좋겠다고 생각될 때, 이러한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몸 간수다. 다른 모든 것은 남 탓할 수 있고, 사회 탓할 수 있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은 모르겠지만 아무리 허약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몸은 다스릴 수 있고 몸을 단련시킬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몸이야 말로 세상에서 유일한 ‘내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몸을 함부로 굴린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티브이 앞에서 낭비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 바보 상자 앞에서 아무 생각없이 판타지를 키우고 욕을 하고 비웃고 하다보면 불행의 요소는 복리로 불어나는데도, 줄창 티브이 앞에만 붙어있는다. 그러다 보면 몸의 선은 다 망가지고 부위와 부위의 경계는 모호해지며 근육은 미친년 머리마냥 풀어헤쳐진다."

 -baham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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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절한 책들을 압도하는 문장



Aug 6, 2012

미니애폴리스 창녀로부터 온 크리스마스 카드





미니애폴리스의 창녀로부터 온 크리스마스 카드 - 탐 웨이츠

찰리, 나 임신했어요.
지금 유클리드 거리 끝
9번가의 낡은 책방 위에 살아요.
마약도 끊었고 위스키도 안 마시죠.
남편은 트롬본을 불어요.
철도일 하는 사람이죠.

hey Charley I'm pregnant
and living on 9-th street
right above a dirty bookstore
off cuclid avenue
and I stopped taking dope
and I quit drinking whiskey
and my old man plays the trombone
and works out at the track.


그이는 날 사랑한다고 해요.
비록 자기 아인 아니지만
자기 아이처럼 키우겠대요.
그리고 어머니가 끼던 반지를 내게 주었어요.
토요일 밤이면 그이는 날 데리고 춤추러 나갑니다.

and he says that he loves me
even though its not his baby
and he says that he'll raise him up
like he would his own son
and he gave me a ring
that was worn by his mother
and he takes me out dancin
every saturday nite.


찰리, 당신 생각이 나요.
주유소 앞을 지날 적마다
당신 머리에 묻은 기름때를 떠올리죠.
아직도 '리틀 앤서니 & 더 임퍼리얼스'의
레코드를 간직하고 있어요.
하지만 누가 전축을 훔쳐가버렸죠.
열받을 만하죠?

and hey Charley I think about you
everytime I pass a fillin' station
on account of all the grease
you used to wear in your hair
and I still have that record
of little anthony & the imperials
but someone stole my record player
how do you like that?


마리오가 체포됐을 때
난 거의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식구들하고 살려고
오마하로 돌아갔죠.
그런데 나 알던 사람들은
죄 죽었거나 감옥에 있더군요.
그래서 미니애폴리스로 돌아왔죠.
이제 그냥 여기서 살까봐요.

hey Charley I almost went crazy
after mario got busted
so I went back to omaha to
live with my folks
but everyone I used to know
was either dead or in prison
so I came back in minneapolis
this time I think I'm gonna stay.

찰리, 그때 사고 이후 처음으로 행복한 것 같아요.
우리가 마약 사는 데 썼던 그 많은 돈들을
지금 갖고 있다면 얼머나 좋을까요.
중고차 가게를 하나 사고 싶어요.
차는 절대 안 팔고
그날 기분 따라 매일 바꿔 타고 다니는 거예요.

hey Charley I think I'm happy
for the first time since my accident
and I wish I had all the money
that we used to spend on dope
I'd buy me a used car lot
and I wouldn't sell any of em
I'd just drive a different car
every day dependin on how
I feel.


그런데 찰리,
내 처지를 솔직하게 말해줄까요?
나, 남편 없어요.
그러니까 트럼본도 불지 않아요.
그리고 있죠......
사실은 변호사 줄 돈이 당장 필요하거든요.
찰리, 난 요번 발렌타인 데이나 돼야
보석으로 나갈 수 있을 거예요.

hey Charley
for chrissakes
do you want to know
the truth of it?
I don't have a husband
he don't play the trombone
and I need to borrow money
to pay this lawyer
and Charley, hey
I'll be eligible for parole
come valentines day.

-

(전략) 무성의한 듯 감칠맛 나는 피아노도 피아노지만 사실 이 노래의 진짜 매력은 가사에 있다. 부른다기보다는 차라리 뇌까린다고 하는 게 맞을 정도로 높낮이 변화가 없는 멜로디지만 그런 소박함이 오히려 감동을 준다. 한심한 낙오자들의 비천한 인생을 묘사한 얘기지만 어떤 멜로드라마보다 아름답다. (중략)

 감옥에 들어앉아 옛 애인한테 편지 쓰는 창녀의 심정, 돈 부쳐달라는 사정을 하려고 펜을 들었다가 비참한 심정이 되어버린 그녀는 행복한 거짓말만 잔뜩 늘어놓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용건을 꺼낸다. 그러고는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변변히 인사도 못한 채 서둘러 편지를 끝내는 것이다. 이 마무리 반전은 '너무 웃기는 나머지 슬퍼지는' 종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아무 생각 없이 되는 대로 살아온 철부지 창녀가 꿈꾸는 행복이란 또 얼마나 하찮은가.

 아마도 이 여자한테 여러 번 속아봤을, 그래서 사랑하지만 끝내는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 이 노동자 애인은 결국 또 돈을 부쳐주고 말 게 뻔하다. 그리고 발렌타인 데이가 되면 미니애폴리스 교도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후략) - 박찬욱



Aug 5, 2012

김훈, 낙원의 치욕


정원(庭園)은 인공의 낙원이다. 꿈속의 낙원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든 낙원은 인공의 낙원이다. 도가의 무릉도원이나 한산습득의 천태산이나 혹은 마르크스의 국가소멸단계가 그러므로 모두 인간의 낙원인 것이다. 인간은 욕망을 사회경제적으로 정당화하고 정당화된 욕망을 제도화 함으로써 낙원을 지향할 수도 있지만, 욕망의 뿌리를 제거함으로써 낙원을 지향할 수도 있다. 욕망을 제거하려는 길과 욕망을 완성하려는 길이 마음속에서 엇갈리면서 사람들의 꿈은 엎어지고 뒤벼지며, 사람들의 말은 끝없는 동어반복으로 중언부언을 거듭하고 있다.

 낙원에도 낙원의 양식(樣式)은 존재한다. 자유를 지향하는 길목에서, 고작, 그것도 천신만고 끝에, 양식 따위가 발생하고 있는 이 인간세(人間世)의 풍경이 희극인지 비극인지, 축복인지 저주인지 나는 분간하지 못하지만, 그것은 필시 저주에 가까운 안쓰러운 업장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낙원의 양식은 낙원의 자유를 다시 속박하지만, 이 속박은 그래도 견딜만한 속박이다. (중략) 그 때, 양식의 가파름과 느슨함은 모두 인간으로부터 멀어지고, 우리는 양식과 더불어 서늘함을 느끼는데, 이 자유의 서늘함이 곧 실락원의 슬픔이다. 여름의 소쇄원에서 실락원의 슬픔은 수목과 더불어 무성하였다.

 소쇄원을 꾸민 사람은 조선 중종 때의 처사 양산보이다. 양씨 문중의 기록에 따르면, 양산보는 17세의 나이로 당시 대사헌인 조광조의 문하에 출입하였다 한다. 그 무렵의 조광조는 삼십대의 청년으로, 이념화된 주자학의 가파른 절정에 도달해 있었다. 조광조의 낙원은 말과 사유의 낙원이다. 조광조는 명증한 언어로 표현되는 사유의 힘에 의해 현실을 재편했다. 그는 반정의 공로에 빝붙은 원로대신들을 '소인배'라는 극언으로 매도하면서 기득권을 박탈했고 소격서를 철폐함으로써 이성의 위엄을 과시했다. 말과 사유와 권력과 현실이, 조광조에게는 동일한 것이었고, 조광조의 낙원은 그 네 개의 범주들이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맞아 떨어져야만 비로소 가동되는 근본주의자의 낙원이었다. 이념화된 주자학은 인간의 심성 속에서 고개를 쳐드는 욕망의 싹을 애초에 봉쇄시켜버리는 사유의 장치를 확보하고 있었고, 그는 성현의 도와 제왕의 법으로 인륝벅 가치의 절대성을 현실역사 속에서 구현하는, 한 절대인간으로 홀로 서있었다. 조광조에게 왕이란 단지 사직의 계승자가 아니라, 세계의 이성적 존재양식의 최정상에 위치하는 가치의 화신으로, 인성과 현실을 그 안에서 종합하는 절대이성이었다. 벌레먹은 '주초위왕'의 나뭇잎이 아니더라도 이 젊은 근본주의자는 이미 스스로 이성의 제왕이었다.

 조광조의 낙원은 훈구파 원로권귀들의 욕망의 연대에 의해 붕괴되었고, 그는 전남 능주의 유배지에서, 원로권귀들이 왕을 경유해서 내려보낸 사약에 처형되었다. 향년 37세.
 젊은 조광조가 어린 양산보에게 베푼 교학의 내용이 어떤 것이었던가는 양씨네 문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어린 양산보는 조광조의 도포자락에서 휘날리는 이성과 사유의 강파른 위엄에 압도되어 있었을 것이고, 사유의 힘으로 세계의 질서를 재편해나가는 젊은 스승의 아름다운 권력과 그 권력이 현실 속에서 가동되는 일대 장관을 숨죽이며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젊은 스승의 낙원이 붕괴되자 양산보는 지체없이 낙향하였다. 양산보는 한 작은 강산의 서늘하고 깨끗한 물가에 자신의 낙원을 차렸다. 그는 다시는 대처의 땅을 밟지 않았고 세상잡사를 글에 담지 않았다. 그는 다만 돌과 나무와 물줄기를 끌어모아 소쇄원을 꾸몄다. 소쇄원에서는, 세계를 혹은 풍경을 관찰하고 해석하고 거기에 관하여 말을 하는 주체로서의 자아의 입지와 위상이 물리적 공간의 거죽으로 돌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쇄원에서는 어떤 풍경이나 정자나 나무도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위치나 시선의 각도로부터 자유롭다. (중략)

 낙원은 자유의 패러디이다. 헐거운 양식, 감추어진 양식은 낙원이 패러디라는 운명 자체를 감추려한다. 감추어지는 운명이란 없다. 양산보는 젊은 스승 조광조로부터 얼마나 멀리 흘러왔는가. 양산보는 그렇게 흘러서 조광조와 매우 가까운 곳에 소쇄원을 차린 셈이다. 저녁 어스름 속의 소쇄원에서 나는 사약 한 사발에 피를 토하고 죽은 조광조의 혼백이 풀 먹인 도포자락 휘날리며 무어라고 쉴새없이 중얼거려대면서 제월당 뒤쪽 숲을 거니는 환영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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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년하고 반년전 쯤에 전남으로 여행을 갔을때, 눈오는 날 담양의 하늘은 흐려서 불쾌했고, 사람없는 관광지엔 팥죽과 오뎅을 파는 상인들 몇만 정원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눈내리는 소쇄원엔 초록이 없고, 팥죽파는 스태인리스 통에서 나오는 연기가 뿌옇다. 정자엔 눈만 쌓였다.

 조광조는 조선 성리학의 이념적 정점이었다. 그는 '가장 완강하고 가장 순결한 복고주의의 힘으로 가장 미래지향적인 정치 개혁'을 단행했다. 소학의 원칙주의를 체질화한 그는 이념과 현실의 차이를 긍정할 수 없었다. 조광조의 비극은 그 간극의 불인지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어려서 총명하였고, 젊어서 등고登高 하였다. 조선조 엘리트의 요람 성균관에서 독보적인 총아였으며, 중종 10년 문과에 급제한뒤, 중종 13년 정2품 사헌부 대사헌에 올라, 중종 14년에 유배지에서 임금이 내린 사약을 받아 경복궁으로 절한 뒤 죽었다. 그 뒤 조광조는 국운이 바스라질 조선조의 황혼 무렵까지 사림들로부터 성역화 되었다.

 눈내리는 을씨년스런 관광지 앞에서 퍼먹는 팥죽의 당도는 무분별하게 달아 추운날 혈당을 올리고 턱 안쪽 침샘을 흥건하게한다. 달기만한 팥죽을 먹어가며 난 '간극'의 불인지에 대하여 생각했지만, 아직도 소쇄원하면 먼저 생각나는건 눈 내리는 겨울날 먹던 달디달던 팥죽과 엄청나게 짜웠던 오뎅국물 뿐.



Aug 4, 2012

전도와 고독



한겨레21 918호에 시조새의 슬픔 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맨끝 칼럼

신자들은 ‘신의 은총’을 모르는 사람들의 삶을 ‘매우 가엾고 황량한 인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신을 영접한 분들의 처지에서 아직도 신을 찾지 못해 길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이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그 심정은 이해가 간다. 나 또한, 도무지 근거를 찾을 수 없는데도 쉽게 신을 믿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생각하면 같은 인류로서 속이 상해 잠이 안 올 때가 있다. 물론 올바로 찾았는지 스스로 속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을 찾은 당신들의 마음속에 기쁨이 샘솟는 것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삶의 우연성을 받아들이고, 그 아이러니를 견뎌가는 불신자들의 마음의 풍경은 어찌 보면 참 서글프다. 그러나 근원적 슬픔을 피하고자 증명되지 않은 것에 자신의 삶을 던질 수는 없지 않은가. 행복을 탐해 믿어지지 않는 것을 믿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는 우리대로 버려진 사막에서 비록 고독하게나마 자신만의 세계를 발견해나간다.


(부분발췌, 조광희 변호사)

Aug 3, 2012

최선과 차선.



그리스의 미다스 왕과 디오니소스 신의 추종자였던 현자 시레노스와의 대화에 관한 전설이다. 이 전설에서 미다스 왕이 시레노스에게 “인간에게 최상, 최선의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되도록 일찍 죽는 것이 차선이며 가장 어리석은 것은 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온갖 세파에 시달리는 저 노인을 보라! 오래 살면 칭찬도 사랑도 친구도 멀어지고 남는 것은 고생뿐이며 그것의 구원자는 죽음뿐이다.“

 –소포클레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이 이야기는 쇼펜하우어, 니체 등이 추가로 인용하여 사용했다. 






Aug 2, 2012

손주은 인터뷰 中, 몰입의 평화와 성취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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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솔직히 이렇게 달려온 인생이 행복하십니까?

나는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는 것은 근거 없다고 생각해요. 인생의 시작과 끝이 자기 의지로 되지 않는데, 행복이란 인간이 너무나 행복하지 않아 만들어 낸 형이상학적 추론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죠. 즉 ‘행복을 위해 산다’는 말은 본질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말이에요. 저는 대신 ‘몰입의 평화와 성취감이 나를 존재하게 한다’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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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부분은 동의하지 않지만, '몰입의 평화와 그로 나오는 성취감'의 존재의 유무가 한 사람의 인생을 관통하며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중 하나라는 걸 느끼기에 무릎을 치며 감탄했던 부분.


오오 적이여, 너는 나의 용기다


임화(1908~1953)는 시인이었고 혁명가였다.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창립멤버였고, 스물넷에 카프 서기장이 됐다. 그러나 그 전에 그는 ‘모던 보이’였다. 스물한둘께 임화는 영화 <유랑> <혼가>의 주연을 맡았다. 사람들이 그를 ‘조선의 발렌티노’라 불렀다. 1920년대 할리우드를 휘어잡은 배우 루돌프 발렌티노에 빗댄 별명이었다. 임화의 모더니스트적 면모는 수려한 외모의 이국 정취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에서 그는 시대와 불화하는 모더니즘의 정신을 선취했고, 마르크스주의로 나아감으로써 모더니즘의 한 경지를 체험했다. 김윤식씨의 말대로, “마르크스주의도 전위주의(모더니즘)의 일종이었음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그는 그 모더니즘의 정신으로 시대와 대결했다. 36년 그는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썼다. “오오 적이여, 너는 나의 용기다.” 그러나 그 대결은 필경 패배할 수밖에 없는 대결이었다. 일제의 군국화가 강화될수록 그의 입지는 좁아졌다. 39년 그는 탄식하듯 말했다. “벗이여, 이즈음 나는 자꾸만 하나의 운명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그 운명의 문학적 표현이 ‘현해탄 콤플렉스’, 다시 말해 ‘조선의 신문학이란 일본을 거쳐 이식된 문학’이라는 이식문학론이었다. 

 그리고 그 운명의 정치적 표현이 해방 후 월북한 뒤 53년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죽은 일이었다.



Aug 1, 2012

이문열, 입선소감



부족한 작품 너그럽게 보아주신 심사 위원님께 먼저 감사와 함께 배전의 정진으로 기대에 보답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새로운 나를 출생시켜 준 [동아]에게도...

지난 몇 년은 참으로 쓸쓸한 세월이었다. 그 염염한 불면의 밤들, 수없이 비워지던 잔, 삼십 분마다의 절망...
재작년에야 겨우 [매일]에 가작을 냈지만 여전히 빈곤과 무명은 나의 오랜 벗이었다. 이제 그들은 떠나려는가.

무겁던 서른의 나이가 오히려 가볍다. 감사하다. 살아 있는 모든 이들, 존재하는 모든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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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이 단편 [새하곡]으로 신춘문예 입선한후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는 데는 몇 년이 걸려도 무너지는 건 찰나라는 것을. 삶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푸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