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24, 2012

위대한 왕 - 문명으로 침식해가는 원시성에 대한 장엄한 만가


"어미는 암컷보다 강했다. 캄캄한 밤, 사냥을 마치고 돌아가던 어미는 타이가 깊은 곳에서 메아리치는 수컷들의 음성에 자주 귀를 기울였다. 그럴 때면 심장의 박동이 멈추고 강한 전율이 강인한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어미는 걸음을 멈추었다. 가슴에서 애처로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새끼 특유의 소리로 귀엽게 가르랑거리며 한 발 한 발 자신의 뒤를 따르는 어린 것들에게 눈길을 한 번 던지는 것만으로 모든 유혹을 뿌리치기에 충분했다. 어미는 깊고 낮은 한숨을 내쉬며 핏줄의 부름에 최우선으로 복종했다. 그리고 온순하게 가족의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산과 숲은 고요했고, 황량한 고장은 평화롭게 잠자고 있었다. 멀리 작은 골짜기 깊은 곳에서 올빼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먹이를 기다리는 붉은 늑대들은 근처의 고개 뒤에서 구슬프게 울어댔따. 능선에 다다른 타이가의 제왕은 튀어나온 바위 위에 멈춰 서서 숲의 온갖 소리를 들으며, 맷돼지 떼가 숨어 있을 떡갈나무 숲을 유심히 살폈다. 자신의 엄청난 힘을 알고 있는 왕은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진 슈하이의 방대한 영토를 응시했다. 남쪽에는 칠흑 같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달빛에 비쳐, 타투딩즈 산꼭대기는 마치 레이스처럼 구멍이 뚫린 듯 보였다."

"넓고 반듯한 이마에는 ‘왕(王)’이라는 글자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났으며, 풍성하게 자라날 갈기가 나타나기 시작한 목덜미에는 또 다른 글자의 징후가 벌써 희미하게 보였다. 그것은 ‘위대한’이라는 뜻의 ‘대(大)’라는 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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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파 가득 얼음으로 차오르는 툰드라의 밀림에서, 날랜 육체와 보라빛 일렁이는 포효로 수해(樹海)의 모든 것들을 맹종 시켰던 위대한 왕의 생사는 문명의 역사와 함께 맞물려간다. 러시아는 하얼빈 철도로 만주에 뜨거운 철사같은 손길을 펼쳤고 일본제국은 조선반도를 넘어 북쪽으로 날뛰기 시작한다. 순결과 원시로서, 왕은 그 자체로 지엄하며 자연의 현현이었으나, 왕국의 침식을 막을 수는 없었다. 늙은 사냥꾼 퉁리는 이 강대하며 아름다운 생물체에게 외경을 표하며, 왕또한 가혹한 자연에서 수많은 아수라를 돌파한 노쇠한 인간과 공감한다. 이것은 대자연에서 태어나, 인간의 역사에 의해 가장자리로 소멸해가는 자들의 종을 뛰어넘은 동질감이자 서로에 대한 존경심일 것이다.

 왕은 인간에게 죽고, 신화에서 밀려나 짐승으로 죽어간 아무르 호랑이의 오늘날 남아있는 개체수는 극도로 미약하다.

 고등학교 때, 백군에 가담한 뒤 패전 후 만주국으로 망명하여 수십년을 산맥과 숲에서 보낸 러시아인의 이 자연소설에 한동안 매료되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까지 학교에 있어야 했던 대도시의 고교생에게, 백색의 수해(樹海)에서 군림하는 흉포한 야수는 순진하고 곱상한 마초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지금은 중국 동북부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놀면서 서식지 자체가 완전히 소멸해 버렸고, 러시아의 대통령 푸틴의 이미지 조성을 위한 정책으로 러시아에 터전이 조성되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위대한 왕은 깨어날 것이다. 그 우렁찬 목소리가 산과 숲을 가로질러 쩌렁쩌렁 울리고 끝없는 메아리가 되어 퍼져 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이 그 소리에 몸을 떨고, 신성한 연꽃이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을 머금고 피어날 것이다."



김훈 - 생명의 개별성


  장모는 여러 가지 병이 겹쳐진 노환으로 2년쯤 입원해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장모의 병은 불가피한 자연현상이었다. 유언에 따라, 장모의 시신은 화장되었다. 소각로는 엘리베이터식이었다. 소각에 두 시간이 걸렸다. '소각 완료'라는 글자에 불이 켜지고 소각로 문짝이 열렸다. 가랑잎 같은 뼛조각 몇 개가 소각로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뼛조각들은 바람에 쓸리듯 계통이 없어 보였다. 어느 부위의 뼈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소각 완료'라는 글자는 추호의 모호성이 없었다. 그 글자는 운명의 선명한 모습을 단지 네 글자로 증거하고 있었다. 소각이 완료된 것이었다. 종말은 선명했고, 종말은 가벼웠다. 삶의 종말은 참혹하게도 명석했다. 그 흰 뼛조각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죽음의 보편성과 생명의 개별성에 관해서 생각했다. 생각은 전개되지 않았다. 나의 생각은 생명의 개별성에 걸려서 좌초되었다.

  창세기 이래로, 인간은 죽음으로써 지구를 구해냈을 것이다. 다들 죽어 없어지지 않았다면, 또 다들 살 자리가 없어서 죽었을 터이다. 그래서 죽음이야말로 인간이 세계와 후손을 위해서 베푸는 가장 큰 보시이며 은혜일 것이다. 나는 산 자들의 그 어떤 위업도 그 죽음이 베푸는 은혜만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산 자는 필멸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보편적 죽음이 개별적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하지는 못한다. 소각로 바닥의 흰 뼈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알았다. 인간은 보편적 죽음 속에서, 그 보편성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서 죽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이다. 다들 죽지만 다들 혼자서 저 자신의 죽음을 죽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은 언어화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는다. 장모의 초상을 치르면서 나는 그 절대적인 개별성에 경악했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보편적 죽음이 개별적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하지는 못한다. 소각로 바닥의 흰 뼈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알았다. 인간은 보편적 죽음 속에서, 그 보편성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서 죽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이다. 다들 죽지만 다들 혼자서 저 자신의 죽음을 죽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은 언어화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는다."



도올이 말하는 5.16이 혁명이 아닌 이유


(중략) 4.19 혁명 또한 그 주체세력인 학생이 새로운 정권을 창출해내지는 못했다는 의미에서 반혁명(半革命)으로 그친 사건이었다. 정치사적인 결과를 가지고 말한다면 혁명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단 하나의 제3의 5.16 혁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의 5.16 혁명과 정도전, 이성계의 혁명은 매우 성격이 다르다.

 첫째, 5.16 혁명은 그 혁명의 원동력이 이미 4.19혁명에서 성숙되어 있었던 것이다. 5.16의 주체세력은 결코 민중과 역사에 내재하는 변화의 힘을 표출해낸 주체세력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4.19 혁명이 피흘려 이룩한 업적을 바톤 터치했을 뿐이다. 따라서 5.16은 혁명의 내용이 없는 형식만의 권력이양이었다. 5.16은 단순한 정권변화를 일으킨 쿠데타에 불과한 사건이었다. 5.16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혁명성을 부여하려고 한다면, 이념적 굴절 속에서도 그것이 일으킨 사회변화, 경제적 삶의 양식의 근원적 변화와 같은 후대의 발전적 성격에서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오리지날한 혁명성의 가치는 오히려 좌절된 4.19 학생의거로 집약되는 것이다. 5.16에 비한다면 이성계의 혁명은 기나긴 역사의 과정에서 내재적으로 성숙된 온전한 역성혁명이었다. 다시 말해서 고려역사 내부에서 온축되어온 힘을 표출시킨 정치적 필연이었다.

 둘째, 5.16은 정권쟁취의 기획포착일 뿐이었으며 진정하게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를 개혁하려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지를 못했다. 다시 말해서 사회개혁의 철학보다는 정권쟁취의 타이밍 판단이 앞선 행위의 소산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성계의 혁명은 새로운 왕조의 개창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중략)

- 삼봉 정도전의 건국철학, 김용옥



Jul 23, 2012

노비컴플렉스, 정도전, 정몽주 - 정도전을 위한 변명

[태조실록]의 '정도전 졸기'에 의하면 정운경의 장모, 즉 정도전의 외할머니는 승려 김진과 여자 노비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승려 김진은 고려의 명문가인 단양 우씨 우현보 집안의 인척이었는데 자기 종인 수이와 아내와 간통해서 딸을 낳고 승려를 그만둔 후, 수이를 쫓아내고 그 아내를 데리고 살았다고 한다. 김진은 딸을 특별히 사랑하여 명문가인 연안 차씨 집안의 인척인 성지 우연의 첩으로 시집보내고 노비와 토지와 집을 모두 우연에게 물려주었다는 것이다. 후에 김진의 딸과 우연 사이에서 난 딸이 바로 정운경의처가 돠었다.

 봉건시대이 양반이 여자 노비를 건드리는 것은 흔할일이었다. 또 승려가 여자를 건드리는 일도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승려가 파계까지 해가면서 그 여종을 안방에 들여놓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아마도 김진이라는 승려는 그 여자 노비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듯하다. 그러나 김진은 증손자인 정도전이 후에 자기 가문과 원수가 되어 피를 부르는 살육극을 연출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진이 속했던 우현보 가문은 고려말 구세력의 대표였고, 우현보의 손자는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의 사위였다. 우현보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디, 이들은 정도전이 처음 벼슬길이 나설 때부터 자기 집안 종의 자손이라고 업신여겄으며, 대간 벼슬에 있으면서 정도전이 벼슬을 옮길 때마다 정도전의 고신(관직임명사령장)에 성명을 해주지 않아 그를 괴롭혔다고 실록에 기록돼 있다. 봉건시대의 개혁정치가에게 핏줄시비는 오늘날의 개혁정치자에게 색깔시비만큼이나 떨쳐버리고 싶은 약한 고리였을 것이다. 정도전은 당시의 원한이 뼈에 사무첬던 듯, 조선 건국 후 우현보와 아들 3형제, 그리고 맞손자를 귀양보낸 후, 3형제에게 곤장형을 가해 몰살해버렸다. 피의 복수였던 셈이다.

 이와 관련하여 '태조실록'의 "정도전 졸기"는 정도전에 대해 "옛날에 품었던 감정은 기어코 보복하려 하였다"는 평을 남기고 있다. 우씨 형제 장살사건은 정도전의 정치인생에 가장 큰 오점으로 기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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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 피비리낸 나는 살육극의 책임을 정도전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고려말에는 역성혁명세력과 구세력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적을 물고뜯는 치사한 인신공격이 횡행하였다.

 한때 정도전의 가장 가까운 동지였으며 당대 선비들 사이에서 '도덕의 으뜸'으로 칭송받던 정몽주조차 대간들을 움직여 그를 탄핵하면서 "천한 혈통을 감추기 위해 본주인을 제거하려고 모함했다"는 것을 죄상으로 들었으니 정도전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본주인'이란 표현은 정도전을 우현보 집안의 노비쯤으로 본 것이요, 정도전의 개혁운동을 천민의 피를 감추기 위한 '핏줄 콤플렉스' 정도 로 깎아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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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건 고려왕조 최후의 보루이자 도덕성을 무기로 하였던 정몽주또한 정권말기 파워게임에서 극단적인 정치 공세를 했다는 점이다. 중원의 패자가 바뀌고 반도의 궁궐 안팎에선 살인의 나선이 끝이질 않던 역사의 장면에서 드러나는 야만성은 보편적 역사에 대하여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준다.

 정도전의 정치사상이나 비전과는 다르게 이런 개인적인 감정에서 발아한 사사로운 보복이나 불필요하게 과격한 정적제거는 여말선초에서 부분부분 등장한다. 그의 혁명성과 현실감각이 양립할 수 있었기에 역성의 왕조수립이 가능하였다지만, 개인적인(이라고 추정되는) 사보타지와 보복은 그가 겪은 삶과 수반해야했던 열등감과 분노를 지극히 범인스럽게 표출하는 방식이였는지, 혹은 고도의 정치적 술수였는지는 모를일이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 세상을 읽는 반향정위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당패 광대는 얼굴을 감췄으니 병신 노릇도 좋고 미치광이 노릇도 좋고 거리낄 것이 없다. 속모습의 제 얼굴을 겉모습의 탈바가지에 의지하고 만판으로 덩실댄다. 그저 그 가면을 빙자해서 모든 굴레를 벗어던지고 살판나게 뛰어다니니- 그 가면이 광대의 자유가 아니고 뭐냐. 광대가 가면 뒤에 숨어 자유하는 것처럼 너도 네 칼 뒤에 숨어서 자유해라.- 황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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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용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만화와, 한국적 미가 가지는 교집합의 극한에서, 공간에 대한 작가의 완전한 지배와 움직임을 표상하는 선의 조화로 한국 만화가 이룩할 수 있는 아득한 경계점에 다다른다. 정지하였으나 움직이고, 작동하지만 멈춰서있는 정중동의 미장센은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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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자. 개가 풍월 보고 짖어도 열매없듯, 조선중기의 시스템은 시골 촌부생원의 서자인 그에게 가망없는 미래만을 내포했다. 주리틀려 다리가 부러진 걸 황정학이 치료하고, 견자는 황정학을 따라나서 칼을 배운다. '진짜 자유는 자존심과 오기라는 항아리가 깨질 때 얻는다'

황정학. 명문가문 적자로 태어났으나 날 때 부터 장님이었다. 아홉 살 날때까지 장독대에 갇혀있다 병아리 껍찔 깨듯 항아리를 깬다. 항아리 깨지는 소리는 천둥소리 였고, 아홉살에 막대기 하나로 집을 나온다. 길찾아 더듬고 으르렁대는 개쫓는 막대기는 차례로 닳아 없어지며 칼이 되었다.

이몽학. 넉 자 길이 무쇠칼을 한 손에 쥐고 학처럼 날아다니는 장사. 양반의 서자로 태어난 독하고 비루한 제반은 그를 호남과 호서에 알아주는 칼잡이로 만들었다. 임란을 맞아 이씨왕조를 내려치나 조선은 300년 가까이 유지되었고, 역사는 이몽학의 난이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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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향정위 反響定位, echolocation - 음파를 내보내고 되돌아온 음파를 분석하여 장애물 등을 피하여 진행방향을 결정하는 감각의 인식형태.

"장님으로 태어난 아이는 본능적으로 입을 다시면서 소리를 낸다. 혀로 입천장을 차면서 내는 소린데 백일이 되면 제법 그 소리가 여물고 단단해지지"

이몽학과 황정학, 견자가 가지는 고통의 뿌리는 같다. 눈먼 황정학은 칼로 세상의 원근을 파악하고, 견자는 황정학을 지팡이 삼아 분노를 벗고 세상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제일 곤란한 건 이몽학인데, 그는 이씨조선의 지배윤리의 한계를 알고 있으나, 황정학처럼 칼 뒤에 숨어 달을 가리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재의 시스템을 용인하는건 더더욱 불가하다. 이몽학은 인정전을 버리고 도망친 종묘와 사직을 베려하나, 우리는 역사로써 그것이 실패했다는 걸 안다. 비극은 시대를 살아간 일개의 개인으로서는 이 허무가 분명한 고통의 실체라는 것이다. 허무가 지배하는 이지러진 담벼락에서 구름을 벗어나 달을 관통하는 것, 그것은 얼마나 요원한 일인가.



Jul 22, 2012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This Was Their Finest Hour



1940년 6월 18일. 여름. 윈스턴 처칠이, 2차대전에서 독일의 영국 침공에 대해 연설하며:

...베이강 장군이 프랑스 전투라고 불렀던 전쟁이 끝이 났습니다. 저는 이제 영국 전투가 시작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전투에 문명의 생존이 달려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 영국인들의 삶과 우리가 건설한 우리 제국의 긴 역사가 달려 있습니다. 적의 모든 위력과 분노는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우리를 향할 것입니다. 

히틀러는 그가 우리를 깨뜨리지 못하면 전쟁에서 질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를 이겨낸다면, 전 유럽은 해방될 것이며, 이 세상의 생명은 아마 넓고 밝은 미래를 향해 전진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다면, 그러면 온 세상은, 미합중국까지, 우리가 알고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까지, 사악한 과학의 더 음울하고, 더 기나긴 깊은 암흑시대의 심연으로 빠져들 것 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우리의 의무를 위해 일어섭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견뎌 냅시다. 그래서, 대영제국과 대영제국의 유산이 천년을 이어지고 나면,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바로 지금이 그들의 가장 위대한 시대였다고.


... What General Weygand called the Battle of France is over. I expect that the Battle of Britain is about to begin. Upon this battle depends the survival of Christian civilization. upon it depends our own British life and the long continuity of our institutions and our Empire. The whole fury and might of the enemy must very soon be turned on us now. Hitler knows that he will have to break us in this island or lose the war. If we can stand up to him, all Europe may be free and the life of the world may move forward into broad, sunlit uplands. But if we fail, then the whole world, including the United States, including all that we have known and cared for, will sink into the abyss of a new Dark Age, made more sinister, and perhaps more protracted, by the lights of perverted science. Let us therefore brace ourselves to our duties, and so bear ourselves that, if the British Empire and its Commonwealth last for a thousand years, men will say, "This Was Their Finest H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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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의 말처럼 2차대전 이후 영국은 냉전의 도래와 함께 열강의 최상석에서 내려오게 되고 대서양과 지중해에서의 영향력도 점차 상실하게 된다. 처칠이 그런 조국의 미래까지 예견하였을지는 몰라도, 영국이 현대사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은 바로 저 순간.



Jul 21, 2012

타인을 사랑하기, 몰락의 에티카


이성복 -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

 사랑은 자기 반영과 자기 복제. 입은 비뚤어져도 바로 말하자. 내가 너를 통해 사랑하는 건 내가 이미 알았고, 사랑했던 것들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해서, 시든 꽃과 딱딱한 빵과 더럽혀진 눈(雪)을 사랑할 수 없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해서, 썩어가는 생선 비린내와 섬뜩한 청거북의 모가지를 사랑할 수는 없다. 사랑은 사랑스러운 것을 사랑할 뿐,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 아장거리는 애기 청거북의 모가지가 제 어미에게 얼마나 예쁜지를 너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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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가 충격적인 이유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었던 사실을 '대놓고' 말한다는 데에 있다. 이시의 전언을 다시 복기할 필요가 있을까.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 이라는 잠언은 자아의 권역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 대게 자아의 자기 회귀적 원환운동이기 쉬움을 단호하게 선언한다. 그것은 타인의 타자성 혹은 타자로서의 타인('시든 꽃' '딱딱한 빵' '더렵혀진 눈' '썩어가는 생선 비린내' '섬뜩한 청거북의 모가지')을 보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 운동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함으로써 '나'는 '너'의 타자성을 지운다.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이미 알았고, 사랑했던 것들"을 네게서 다시 확인하는 일이다. 이시는 공주에게 개구리는 결국 개구리일 뿐이라는 '실재'를 회피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상상'적인 층위에서 개구리를 왕자로 변용하길 즐겼던 모든 서정시들의 안이함을 공박한다.

 이 시가 사랑이란 본래 나르시시즘적인 자기 배려에 지나지 않는다는 세속의 지혜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타자성을 인식하여 그로부터 타자를 배제하는 일을 정당화,합리화하고 있지도 않다. 이 시는,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서정적 사랑'이 상대방을 속이면서 스스로 속는 메커니즘이라는 사실을 적시한다. 서정적 사랑은 이중의 기만이다. 그것은 타인에게서 타자성을 거세할 뿐만 아니라 자아의 허구성을 살찌운다. 뿐만 아니라 서정적 사랑은 늘 어떤 방어적 선택이며 회피의 몸짓이기 쉽다. 그것은 '나'의 근원적인 욕망과 충동을 순화시키는 세련된 방식이자 타인의 치명적인 욕망과 충동을 외면하는 편안한 방식일 수 있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그 어떤 것을 사랑해버리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다. 이 사실의 준엄함을 인정하지 않는 한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면)의 기적은 일어날 수 없다고 위의 시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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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김훈, 바다의 기별'



Jul 20, 2012

박찬욱 - 청춘이여 안녕 中


 이훈을 만난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데이비드 보위 노래 제목처럼 딱 '5년' 그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우리의 열광적인 청년 시절도 막을 내렸다는걸 우리는 알았다. 그가 남긴 낙서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물어 보지도 않는데 서른 살에 죽을 거라고 잒 입방정을 떨더니만 정말 서른 살에 골로간 마크 볼란..."
 무인도에 한장만 가져가려면 고르겠다던 보위의 <지기 스타더스트 더 모션 픽쳐> 앨범에 수록된 로큰롤 자살엔 또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신은 카페를 그냥 지나쳤지 너무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으므로 먹지도 않았네"

 그런데 왜 그대는 96년 그날 밤 신촌에서 불이 나기로 되어 있던 '롤링스톤즈' 카페에 들어갔던건가. 이만하면 박찬욱을 충분히 가르쳤다고 생각하는가, 그대는? 화장됨으로써 두 번 불탄 이훈을 양수리 찬물에 띄어보내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때, 우리는 서로에게 중년 사내의 피곤한 눈빛을 발견해야 했다. 이제 정신차릴 때가 되었다고, 그동안 이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한테 너무 오래 끌려 다녔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 순간부터 이미 우리에게는 페라라고 뭐고 안중에도 없었다.





Jul 19, 2012

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 - 신형철

  알튀세르는 자서전에서 '자기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유물론에 대한 유일한 정의(定義)"라고 적었다. 우리에게는 이 말이 마치 '김훈 소설에 대한 유일한 정의'처럼 보인다. 그의 소설은 자기변명을 늘어놓지 않기 위해 고투하는 유물론자의 고백이다. 그 유물론은 좌파와 우파를 모른다. 좌파와 우파에게는 언제나 되돌아가 기댈 수 있는 이념이 있다. 그 이념에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을 부정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김훈에게 이념이 있다면 그것은 '삶의 구체성을 존중한다는 것'뿐이다. 그 구체성은 자신만의 것이고 그에게는 자기 변명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김훈의 유물론이다. 일견 그가 이 구체성이라는 덫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보편적 조건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들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혹여 그것들이 우리를 속이고 있을지라도 우선 그것들에 속아주지 않고서는 그것들을 넘어설 수도 없다. 라캉은 "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Les non dupes errent)"라고 말한다. 맥락을 달리해도 이 말은 의미심장하다. 속지 않았다고 믿는 자는 길을 잃는다. 속아주는 자만이 넘어설 수 있다. 벤야민이 희망이 없는 자에게만 희망이 있다는 요지의 말을 했을 때 그 말이 뜻하는 바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그가 필요한 이유다.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인간주의와 얼마나 많은 역사주의가 있는 것인가. 김훈은 그런 것들이 세상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는 신념에 회의적이다. 그래서 인간을 긍정하지 못하면서 인간을 말하고, 역사를 믿지 못하면서 역사소설을 쓴다. 이 역설이 김훈 소설의 힘이다. 그 역설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치열하게 동어반복한다. 역설이 아닌 것은 세계가 고통 속에 있다는 사실 뿐이다. "고통의 절대성만이 오늘날까지 계속되어온 유일한 것이다."(아도르노) 고통은 보수와 진보의 너머에 있고 어쩌면 그 고통에 가닿는 길도 보수와 진보의 너머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여전히 유물론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고통의 유물론이어야 한다. "나는 아무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서문', 남한산성) 김훈의 소설은 끝나지 않는 고통 앞에서 우는 울음이다. 이 울음이 인간과 역사에 대한 필사적인 진정성의 표현이자 순도 높은 예의가 될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신형청, 몰락의 에티카 - 속지않는 자가 방황한다 

Jul 18, 2012

김현,황동규,반포치킨



대설(大雪)날 -故 김현에게
                                             황동규 
겨울하고도 흐린 날 
눈도 제대로 내리지 않고 
눈송이 몇 공중에 날려놓고 바람만 불다 말다 하는 날 
이 식은 지구 껍질에 미열(微熱)이나마 심을 것은 
그래도 버섯구름이 아니라 
알맞게 거냉(去冷)한 술 한 잔이라면 
오늘 양평 네 잠들어 있는 곳에 가 
찬 소주 대신 
가슴에 품고 온 인간 체온의 청주 한 잔 땅에 붓노니 
그 땅이 네 무덤이건 
우리 자주 들른 '반포 치킨'이건 
그냥 지나쳐버린 어슬어슬 산천이건 

작정한 듯 검푸른 하늘 
바람이 눈송이 하나 무덤 위에 띄워놓고 
술 방금 받는 부운 위(胃)처럼 한번 부르르 몸을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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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묻던날 
(부제:기억나지, 그날? 이성복에게)

                                                     황동규


김현 묻고 돌아올 때, 그 장마 구름 잠시 꺼진 날, 
우리는 과속을 했어, 60킬로 도로에서 100으로.
우리는 재빨리 도망치고 있었던 거야 추억에서.
단속하던 의경 기억나지?
의경치고도 너무 어려
우리의 복잡한 얼굴을 읽을 줄 몰랐어.
마침내 죽음의 면허를 따 영정이 되어
혼자 천천히 웃고 있는
웃고 있는 김현의 얼굴이 속절없이 아름다웠고
그 얼굴 너무 선명해서 우리는 과속을 했어.
경기도 양평의 산들이 패션 쇼를 하려다 말았고,
딱지를 뗐고,
그 딱지 뗀 힘으로
우리는 한 죽음을 벗어났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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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글들이 다 글쓰고 싶다는 내 욕망을  자극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글들은 아주 평판이 높아 그것을 읽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하지만 마음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게 하고, 어떤 글들은 첫 줄부터 마음을 사로잡아 되풀이 그것을 읽게 만들고, 나아가 그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하게 한다. 문학비평가로서 가장 즐거운 때는 그런 글을 만날 때이다. 내 마음속의 무엇이 움직여 그 글로 내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이끌리게 하는 것일까?  그것을 생각하다보면 때로 내 마음을 움직인 글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내 마음이 움직인 흔적들만 남아, 마치 달팽이가 기어간 흔적처럼 반짝거린다. 그 흔적들을 계속 쫓아가면, 그것은 기이하게도 다시 내 마음을 움직인 작품으로 가 닿고, 그 길은 다시 그것을 쓴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으로 다가간다. 내 마음의 움직임과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한 글을 쓴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은 한 시인이 '수정의 메아리'라고 부른 수면의 파문처럼 겹쳐 떨린다. 나는 최근에 그런 떨림을 느끼게 한 한 편의 시를 읽었다. 그 시는 김지하의 '무화과'(<우리 시대의 문학>5집)라는 시이다." - 김현의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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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황지우가 목울대로 넘어오는 울음을 꾹 참으며 '1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평론가'라고 추모했던 김현은 1942년 7월 29일 전남 진도군 진도읍 남동에서 태어나 1990년의 오늘, 6월 27일에 타계했다. 스무 살 되던 1962년에 <자유문학> 신인 공모로 비평가가 된 이후 '4월 혁명과 한글 세대'라는 바탕에서 30년 가까이 정열적으로 글을 읽고 또 썼다. 

앞서 1966년에 단편소설도 발표했지만, 이미 스물두 살 때인 1964년에 6편의 글을 묶어 첫 번째 평론집 <존재와 언어>를 5백부 한정판으로 발간했을 정도로 그는 연습생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리그에 뛰어든 '프로'였다. 그가 김화영, 이청준, 김치수, 김승옥, 곽광수, 김병익, 김주연,  황동규, 정현종, 박상륭 등과 이룬 7, 80년대의 문학적 풍경은 깊고 풍성한 숲이었다. 그 아래로 이인성, 황지우, 이성복, 정과리 등의 나무가 쑥쑥 자랐다.  

김현은 술을 많이 마셨다. 그는 반포상가 옆 반포치킨에서 부었고, 후배들의 골방에서 부었고, 술집에서 부었고, 땅에서 부어냈다. 간경화로 죽었을 때 나이는 48세였다. 음주량과 무지막지한 흡연량과 생활 습관을 감안하였을 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나, 그래도 아깝다. 아까운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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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의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또한 그가 고른 이름.  

Jul 17, 2012

툴레의 왕 Der König in Thule - 괴테


옛날 툴레에 왕이 있었다네,
사랑하는 애인이 죽으면서 왕에게
황금 잔을 주었는데,
왕은 죽을 때까지 그 잔을 간직했다네.

왕은 그 술잔을 제일 중히 여겨 
향연 때마다 그 잔을 비웠다네.
눈이 술잔으로만 갔기에
왕은 자주 술을 마셨다네.

죽을 때가 다가오자,
왕은 왕국의 도시들을 세어
왕자에게 물려 주었지,
술잔만 빼고.

왕은 기사들과 함께
성찬을 들었지,
저기 바닷가 성에서,
선왕들이 사시던 지존한 곳에서.

늙은 술꾼 왕, 성에 서서
마지막 생명의 열정을 다 마시고,
신성한 잔을 
바닷물 속으로 던졌다네.

왕은 잔이 바다 속으로 떨어져
물을 마시고 깊이 가라앉는 것을 바라보았다네.
눈꺼풀이 내려앉고
더는 한 방울도 마시지 못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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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6, 2012

사랑스런 추억, 윤동주




봄이 오든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뗴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차가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Jul 15, 2012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내가 쓴 장편소설 '칼의 노래' 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입니다. 이순신이 백의종군해서 남해안으로 내려왔더니 그 두 달 전에 원균의 함대가 칠천량에서 대패해서 조선 수군은 전멸하고 남해에서 조선 수군의 깨진 배와 송장이 떠돌아다니고 그 쓰레기로 덮인 바다에 봄이 오는 풍경을 묘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에서 버려진 섬이란 사람들이 다 도망가고 빈 섬이란 뜻으로, 거기 꽃이 피었다는 거에요. 나는 처음에 이것을 "꽃은 피었다"라고 썼습니다. 그러고 며칠 있다가 담배를 한 갑 피면서 고민고민 끝에 "꽃이 피었다"라고 고쳐놨어요. 그러면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는 어떻게 다른가. 이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입니다.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이죠.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셰계를 진술한 언어입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나의 문장과 소설은 몽매해집니다. 문장 하나하나마다 의미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를 구별해서 끌고 나가는 그런 전략이 있어야만 내가 원하고자 하는 문장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사실만을 가지런하게 챙기는 문장이 마음에 듭니다. 나는 이런 문장을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 읽었습니다. 거기 보면 그 분이 군인이기 때문에 사실에 정확하게 입각한 군인의 언어를 느낄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인이 아니면 쓸 수가 없는 문장입니다. 군소리가 없고, 무인들이 큰 칼을 한 번 휘둘러서 사태를 정리해버리듯이 한 번으로 끝내버리는 문장을 이순신은 쓰고 있더군요. 그것이 나한테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재미가 없는 문장입니다. 아무런 수사적 장치가 없는 문장. 그러나 나한테 그것은 놀라운 문장이었습니다. 암담한 패전 소식이 육지로부터 전해오는 날, 이순신은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고 씁니다. 아, 좋죠.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이것은 죽이는 문장입니다. 슬프고 비통하고 곡을 하며 땅을 치고 울고불며 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밤새 혼자 앉아있었다. 혼자 앉아 있었다는 그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것이죠. 거기에 무슨 형용사와 수사학을 동원해서 수다를 떨어 본들,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를 당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전연 수사학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강력한 주어와 동사의 세계죠. 내가 사랑하는 주어와 동사의 세계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분은 사실에 입각해 있습니다.

 이순신은 또 일기에다, "오늘 어떤 녀석이 군율을 어겼기로 베었다"고 썼습니다. 기막히지요. 군율을 어겼기로 베었다. 그게 목을 베었다는 거지요. 그것이 그가 글을 쓰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완강한 사실에 입각하는 것이죠. 군율을 어겼기로 베었다. 그 머리를 베어서 장대에 끼워서 성 앞에 걸었다. 그래놓고 그 다음 문장을 계속 써요. "저녁 때 바람이 불었다." 해군들은 바람 부는 게 가장 큰 문제죠. 배들을 바닷가에 나란히 자동차 세우듯이 대놓고 있는데 바람이 불면 배들이 서로 흔들려서 배들끼리 부닥칩니다. 바람이 불면 해군은 배를 끌어서 물 위로 올려놔야 배가 부숴지지 않죠. "저녁 때 바람이 불었다. 자는 병사들을 깨워서 물가로 내려 보내서 배를 끌어올리라고 지시했다"고 씁니다. 이 부하놈 하나를 죽였다는 것 그게 뭐 별거 아니라는 듯이 서버립니다. 수사, 형용사, 부사가 하나도 안 나오고 밋밋하고 재미가 없지만, 부하를 죽였다는 문장과 바람이 불었다는 문장 사이에서 그의 문장은 삼엄한 긴장에 도달합니다. 그것은 아주 전압이 높은 문장입니다. 볼트가 높은 고압 전류가 흐르는 문장입니다. 

 문과대학에서는 그런 문장을 안가르치더군요. 문과대학에서는 셰익스피어, 밀턴, 워즈워스를 배웠습니다. 그것도 훌륭한 문장이었지만 내가 읽은 '난중일기'에는 그보다 더 좋은 문장이 있었습니다. 저는 장군님께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분이 돌아가신 날이 되면 꼭 노량에 가서 소주 한 병을 놓고 절을 하고 돌아옵니다.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노량은 남해도 입구인데, 아주 경치가 좋습니다. 거기 이락사(李落祠)라는 사당이 있습니다. 이순신이 바다로 떨어져 죽은 사당인데, 그 이름도 참 이순신답죠. 아무런 수사학이 없고 떨어질 '락'을 써서 이가 떨어진 바다라는 뜻이죠. 난 전국 사당이름중에서 이락사가 제일 잘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가 죽은 바다다.

이런 단순성이 온갖 슬픔보다 더 거대한 슬픔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저는 요즘 이런 명석성의 세계를 동경하고 있습니다.

Jul 14, 2012

전주 최명희 문학관



"다만, 저는 제 고향땅의 모국어에 의지하여 문장 하나를 세우고, 그 문장 하나에 의지하여 한 세계를 세워보려고 합니다. 한없이 고단한 길이지만 이 길의 끝에 이르면, 저는 저의 삶과, 저 자신이, 서로 깊은 화해를 이루기 바랍니다"

Jul 13, 2012

주관적 화가들은 애꾸눈이지만 객관적 화가들은 장님이다.


주관적 화가들은 애꾸눈이지만
객관적 화가들은 장님이다.

                                 - 조르쥬 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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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별걸 다 메모 했었다.

Jul 12, 2012

이방원





아기발도가 이끄는 왜구들을 지리산부근에서 소탕하여 권력의 핵심부로 다가갈때 이성계의 나이는 45, 정도전을 만나 단순한 군벌 권력가가 아닌 새로운 정권의 창출자로서의 꿈을 꿀땐 40대 후반이었다. 북방의 무인 집안으로써, 정치력 부재와 '먹물'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던 이성계였지만 그의 아들 하나가 문과 과거에 급제하여, 그 컴플렉스를 어느정도 해소하여 준다. 이성계는 당시 아들의 임명장을 몇번이나 비춰보고 읽어보았다고 한다. 그 아들의 자는 유덕이고 이름은 방원이다.


 고려말 온건 개혁파의 보스이자 당대의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정몽주를 대낮 저잣거리에서 깡패들을 시켜 "담궈"버릴때 이방원의 나이는 25세였다. 이성계라도 이때부턴 아들이 마냥 대견스러워 보이진 않았을것이다. 조선조 건국까진 아들이자 동업자로써, 창업의 파트너쉽을 유지하였겠지만, 알다시피 조선왕조는 개국 이후 또다시 피로 왕좌를 덧칠하고 숙청으로 기둥을 덧대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방원은 쿠데타 당일, 아버지이자 국왕이 기거한 궁궐을 창칼로 무장한 군사로 포위하고 이성계를 구금한뒤, 아버지의 친구이자 개국의 공신인 정도전과 남은을 살해한다, 또한 배다른 동생인 방번과 방석또한 사태가 일어난 당일날 모두 죽였다. 그 후 2년뒤 방원은 다시 친형 방간과 개성에서 시가전끝에 방간파를 괴멸시키고 형의 측근들의 목을 모두 베었다. 방원이 그의형 방간을 살려둔건 혈육에 이끌린 정이라기 보단, 프로파간다를 노린 정치적 수였다고 해석한다.


 왕이 된 태종은 자기의 정실부인인 민경왕후의 남자 형제들을 모두 다 주살하고, 왕자의 난때부터 같이 해온 측근들까지 죄명을 씌어 대부분 다 숙청하여, 목숨을 보전할수 있었던 태종의 측근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후 자기 사후, 외척의 득세를 염려하여 세종의 장인인 심온을 사살하고 인척 대부분의 정치력을 거세시켜버린다. 56세로 숨을 거뒀다. 태종은 조선의 3번째 임금이었고, 네 번째 임금의 자는 원정이고, 이름은 이도, 묘호는 세종이다.

Jul 9, 2012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序文




세상을 향하여 말할 때, 나는 늘 나 자신의 어지러운 생명에 입각해 있었다. 그래서 내말은 만신창이가 되어 허덕지덕하였다. 나는 내 말이 눈물이나 고름처럼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액즙이기를 바랐다. 그 분비물로 보편적 진실을 말하려는 허영심이 나에게는 없다. 나는 그 진물이 내 몸의 일부이기만을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