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19, 2013

후회가 없는 남자

 “1년 더 현역 생활을 이어간 뒤 그만둘 것”이라고 말했던 그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아내가 묻습니다. 아쉽지 않냐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더 열심히 할텐데 하고 후회되지 않냐고”라고 페이스북 글을 시작한 이영표는 “제가 답했습니다. 아쉽지 않다고. 과거로 돌아가서 또 다시 매일처럼 반복되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좌절감 속에 다시 서고싶지 않다고.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 때처럼 열심히 하기 힘들 것 같다고. 스스로에게 충분히 정직했다고. 그래서 지금이 좋다고 답했습니다. 지난 주부턴 이상하게 날자를 세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오늘은 운동이 끝났으니 이제 두 번의 훈련과 한 번의 경기만 남았습니다”라고 은퇴 경기를 앞둔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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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충분히 정직한 사람

Nov 11, 2013

79년생 친구가 처음으로 연애를 한다

지금은 오지 않는다
어쩌면 내일도 오지 않는다

한낮의 열렬함을 기억하던
나스르르한 청춘은 젖은 풀잎으로 눕고

사랑이다 싶었던 사랑도
사랑 아니게 되는 기억의 실어증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희망은
쉼없이 거듭나 나분작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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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다 그 기분. 가을찬바람 상쾌하고, 바람불어 빨간 귀도 따듯할 그 케미. 데이트의 시행착오. 밤 늦어 누웠을때 허리부터 퍼지는 충만감. 눈 떠 일어날때의 자신감. 손잡을때의 서로 손금가득 들어찬 땀들. 3분마다 전화기 바라보게 되는 자발적 구속. 홀로 외롭지 않다는 - 나아닌, 친구아닌, 가족아닌 남으로 부터 느끼는 생전 모를 소속감. 충실하고 싶었던, 할법도 했던 감정의 후쿠시마 원전사태.

Sep 30, 2013

면후심흑, 둔필승총

面厚心黑

얼굴은 두껍고, 마음은 검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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鈍筆勝聰

둔감한 붓이 머리를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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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bris would anger the genie

오만은 지니를 화나게 한다

Sep 26, 2013

멋진 사내들



세명중에서 개인적으로는 파바로티지만, 두 사람다 좋다. Nessun Dorma는 특히나 플라시도 도밍고의 감정이 떡고물처럼 떨어지는게 너무 좋았다. 그가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을 땐, 한국인 성악가보다 발음이 더 좋아서 너무 놀랐다. 아 멋진남자들.

Sep 23, 2013

정성일 트위터 중에서

 비밀_ 리스트를 연주할 때 모두들 기교에 대해서 말하죠, 내가 리스트를 위해서 피아노 앞에 앉을 때 항상 생각하는 것은 단 한가지 입니다. 침묵. 리히테르.

시작_ 오늘 들은 말. 살이 찌기 시작했다는 건 삶의 일부가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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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가 아니더라도, 메모하는 습관을 들어야겠다.

살인자의 기억법

짧고 간결하다. 김영하라는 음식이 있다면 정말 필요한 부분 부분만 모아놓은 미니 도시락같다. 생각보단 나쁘진 않았지만, 역시 김영하는 검은꽃이다. 검은 꽃의 에필로그는 너무 좋았다. 역사와 인생. 짖궂은 농담. 계속되는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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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이 왔어, 그 친구 과테말라에서 죽었다는 군'

박정훈이 편지를 전했다. 연수는 처음에는 입을 꾹 다물고 얘기를 들었으나 편지를 읽고 나선 울었다.

'여기 왔었군요'

박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머리르 깎아주고 면도도 해주었소
연수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리고 다시는 울지 않았다. 박정훈은 삼년 후 이발을 하다 심장마비를 일으켜 급사했다. 이연수는 박정훈의 돈으로 고리대금업을 시작 했다. 몇년 만에 그녀는 베라크루즈에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큰 손이 되었다. 그녀는 곧 멕시코 시티로 올라가 극장을 겸한 술집 몇 개를 사들이고 무희들을 고용했다. 그녀는 유흥가의 거물로 성장해 어떤 자선사업도 벌이지 않고, 어떤 종교에도 의탁하지 않고, 오직 갈퀴처럼 돈을 긁어모으는 일에만 전념했다.

경찰과 행정 당국은 그녀에게 매출알선 혐의를 적용하려 여러번 시도했지만 끝내 실패하였다. 그녀는 75세의 나이로 멕시코 시티에서 죽었다. 모든 유산은 그녀의 아들 박섭이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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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14, 2013

태양은 가득히, 알랑 드롱과 이병헌


몇 년이 지나서 다시 본 르네 끌레망의 '태양은 가득히'에서도 결국 기억에 남는건 햇빛에 등짝을 다 그슬린 알랭 드롱의 상체뿐이다. 아니, 원래부터 지중해에서 그리스 조각같은 알랭드롱을 보기위해서 간셈이었다. 천박함과 뻔뻔함, 기만자와 어린아이의 표정을 동시에 품은 그의 얼굴과 몸짓은 스트레이트인 내가 봐도 숨이 턱,하고 막혔다. 알랭 드롱은 배우가 캐릭터를 잡아먹는 배우이다. '태양은 가득히'를 보고나면 리플리라는 캐릭터보단 요트를 몰던 '알랭 드롱'이 기억에 남는다. 다른 영화에서도 그는 원래 그랬다. 장 피에르 멜빌의 '사무라이'를 보고 난 뒤엔 트렌치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매만지던 알랑 드롱이 판화처럼 새겨졌으며, '암흑가의 두 사람'에선 단두대에서의 마지막 그의 얼굴만이 영화의 전부였다. 그의 인생사와 성격이 원래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경찰보단 악당을, 좋은 집안의 아들보단 비루한 출신 성분의 캐릭터를 연기할때 맞춤양복을 입은 듯 했다. 잘생기긴 했지만 귀공자와는 거리가 멀다, 마초적이지 않은 얼굴이지만 상스럽다. 이건 연기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본디 가지고 태어나는 성질같기도 하다.

태양은 가득히를 한국판으로 어레인지 한다면 리플리 역은 이병헌이 맡아야 한다. 라고 친구들과 술먹을때 우긴적이 있었다. 글을 쓰며 찾아보니 박찬욱감독도 이병헌이 한국의 알랑 드롱이라는 말을 한적이 있었던 걸 보면 내가 헛소리를 한건 아닌듯하다. 이병헌의 목소리와 연기력을 떠나서, 잘생긴 얼굴을 감안하면 동년배의 한국배우 중 가장 넓은 연기의 폭을 가졌다. 그는 가진자와 못가진자, 배운 이와 못배운이, 선함과 악함을 모두 소화할 수 있다. 하얀색 옷입고 수리검 날리는 지극히 만화스러운 닌자와, 최지우의 실땅님과 번지점프의 인우를 (비록 세월의 갭이 있지만) 그는 빠지는거 없이 해낸편이다. 그리고 어떤 역을 맡더라도 눈알 저편에 깔린 강렬한 에고는 스크린에 투사된다. 이것이 알랭드롱과 이병헌의 교집합이다. 햇빛에 다 뒤집어진 등짝으로 바다를 쳐다보던 리플리의 눈빛은, 이병헌만이 대체할수 있을 것이다.

이병헌의 출연작 중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가장 이병헌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던건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이었다. 고급양복을 입은채 건물꼭대기 층에서 쉐도우 복싱을 하던 그의 모습에서 보이던 나르시즘과 에고는 연기가 아니라 본인의 실제 모습일거라 생각했다. 캐스팅을 잘하고 캐릭터에 맞게 잘뽑아낸 감독의 역량도 훌륭하지만, 영화에서 비친 선우의 모습은 배우 본인이 자존감과 나르시즘없이는 그 몰락이 그만큼 처절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면 잘난척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