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14, 2013

중경삼림



결막염 때문에 눈을 감을 때마다 눈에서 모래알이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감기까지 얹혔다. 한 시간정도 달리기를 하고 더운 땀을 빼니 갑자기 미식거리며 식은 땀이 비질비질 세어나왔다. 택시를 타고 영화의 전당에 도착했다. 처음 앉아본 야외 극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다. 가족들과 연인들끼리 온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괜찮은 자리를 발견한건 행운이었는데, 음식을 들고온 관객들이 많았다. 감기몸살로 솎아낸 빈속을 족발과 치킨과 햄버거와 김밥냄새가 뒤집기 시작했다. 같이 달려온 무우냄새가 결정타였다. 속이 울렁거렸다. 들고온 커피가 아니였다면 화장실로 달려가서 토해버렸을 것이다. '아.. 괜히 왔구나', 영화가 시작했다.

금성무가 헐레거리며 뛰어다니고, 임청하와 어깨를 부딪히고, 다시 things in life가 나오는 술집에서 트렌치코트를 입고 가발을 쓰고 선글라스까지 낀 임청하가 담배를 핀다. 뒤집힌 속과 통닭냄새가 신경쓰이지 않았다. 페이와 양조위가 식당에서 마주치는 순간, 이 영화를 보러오지 않았다면 다시 몇 년을 후회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California Dreamin이 나올 때, 갑자기 울컥거리면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양가위한테 무장해제되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이 사람은 영화를 이렇게 간드러지게 만들까.

97년 반환을 앞둔 홍콩의 세기말적 정서가, 곧 왕가위 영화의 근본이었다. 정서적 과잉과 눈이 뽀개질 정도의 아름다움, 현실에서 한 걸음 살짝 비켜선 인물들의 대사는 전부 종말을 선고받은 이의 공허의 감성에서 출발한다. '화양연화'와 '중경상림'이 그랬고 '아비정전'과 '동사서독'이 그랬듯이, 왕가위는 운명론적 허무주의에서 발버둥치는 사랑과 인간의 군상들의 동어반복을 이야기했다. 그게 왕가위의 한계이고, 동시에 가장 보는 이의 흉부를 먹먹하게 만드는 점이었다. 홍콩은 반환된지 십수년이 넘었고, 58년 개띠인 왕가위는 초로의 입구에 서있다. 그래도 아직 그의 영화는 여기저기서 틀어지고 있고, 장면들마다 피어나는 거리와 연인의 풍경에서 솟아나는 울림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건 세월에 관계없이 결국 세상에 쓸려간 사람들의 생애는 비슷한 단면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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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경삼림은 다시 볼 수록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만일 당신이 새로운 21세기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당신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중경삼림은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영화입니다. 혹은 질문하는 영화입니다. 제 생각에 중경삼림은 1990년대에 만들어진 최고의 연애영화입니다.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 혹은 곧 사랑하게 될 사람들, 또는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과 막 헤어진 사람들이 마치 치료하듯이 보아야할 영화라고까지 말하고 싶습니다. 혹은 우리 시대의 사랑하는 방식에 관해서 말하는 영화, 그러니까 중경삼림은 훗날 20세기의 마지막 10년동안 이 20세기의 마지막 연애방식에 관해서 말하는 영화라고 기억될 것입니다. 중경삼림은 한 마디로 사랑에 관한 영화입니다. 이제 막 시작될 사랑, 막 떠나간 사랑, 하여튼 그 사이에 있는 시간에 관한 영화입니다. 감사합니다. - 중경상림 DVD 정성일 코멘터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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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많은 장면들이 좋지만, 저에게 중경상림에서 가장 압권은 양조위가 가게에서 지나간 애인의 편지를 읽지않고 블랙커피를 마시는 장면입니다. 카운터에 기댄체 아무말도 하지 않는 페이, 커피를 마시는 양조위, 지나가는 사람들, 이 짧은 순간의 침묵에서 흘러나온 사랑의 풍경.



Sep 3, 2013

숨바꼭질 - 불편하며, 게으르다



<숨바꼭질>에서 최종적인 악인, 즉 가장 공포스럽고 흉물스러운 존재는 능력도 안 되면서 중산층을 욕망하며 자기도 가지겠다고 ‘생떼거리’를 쓰는(용산구청에 나붙었던 플래카드의 문구) 가난하고 촌스러운 자들이다. 돈도 없으면서 집을 탐하다 하우스푸어가 된 자들, 능력도 없으면서 사교육을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사람들이 가장 무섭고 끔찍하며 사회의 안전을 해치는 족속이라는 것이다. 성수는 주희의 제어할 수 없는 욕망을 간파하고, 이를 이용해 회유한 뒤 불태워 죽인다. <숨바꼭질>은 중산층 상부가 자신들에게 따라붙으려는 중산층 하부와 서민들에게 윤리적·미학적 비난을 퍼부으며, 따돌리고 밀어내어 자멸시키는 계급적 무의식을 반영한 영화이다.

마침내 우아하고 새치름한 중산층 마나님인 성수의 처가 촌스럽고 우악스러운 주희를 내려친다. 뒤늦게 도착한 성수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온한 싱글맘 주희의 숨통을 끊어 처자식을 구해낸다. 객석에선 환호가 터진다. 객석을 중산층 정상가족의 무의식으로 대동단결시킨 영화적 힘에 감탄해야 할지, 반동적 허위의식에 혀를 차야 할지 아련해진다.

http://www.entermedia.co.kr/news/news_view.html?idx=2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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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생업이 아닌, 취미로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 영화를 볼 때 그 영화가 정말 엉망이라면 가장 분노하는 대상은 자기자신입니다.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그럼 필연적으로 함량 미달의 영화가 나오겠지만, 왜 난 내 선택에 의해 내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이런 개같은 영화를 보고있나 생각하다보면 내 선택이 후회스럽고, 그런 선택을 한 내 자신에 대한 화가 솟아납니다. 좋은 영화를 보는건 그렇다치고, 후진 영화를 골라내서 피하는건 꽤 자신있다고 생각했지만, 오랜만에 본 스릴러 한국영화인 숨바꼭질은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화가나는 경험을 하게 해준 영화입니다.

영화의 공포의 근원은 첫번째로 익명을 뒤집어쓴 도시공간에서의 공포로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간과 강도와 살인의 공포와 마주한채 살아가고, 비극은 매일 일어나니까요. 설득력있고 무섭습니다. 전 남자지만 여자관객들이 처음 나오는 엘리베이터 장면을 볼땐 정말로 온몸에 털이 돋는, 하지만 종종 겪을 법한 상황이기에 많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겁니다. 영화는 스리슬쩍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공간에서의 비극대신(위에 링크한 글에선 아파트호러라고 하더군요. 일리있습니다.), 계급적 질서의 대변과 충돌로 바꿔 넘어갑니다. 괜찮습니다 정치적 견해가 좀 구리긴해도, 정치적으로 후지다는게 꼭 영화자체가 후지다는 소린 아니니까. 자기 보금자리를 위협받는 중산층의 공포감과 경계심을 재료를 삼은 수많은 걸작 영화들이 그 증거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 매우 노골적으로 불쾌하면서도, 연출도 매우 게으릅니다. 날로 먹으려듭니다. 한국 드라마에서 쓰일법한 촌스런 음악(죄송, 하지만 이 표현말곤 생각나지 않더군요)으로 관객들한테 공포감을 갖도록 구걸하고, 누가 봐도 상상이거나 꿈이 분명한 장면들을 아무런 고민없이 중간에 턱턱 넣어버립니다. 보여주는 캐릭터의 심리와 묘사는 배우가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결국 허접스런 각본의 한계인지 이물감만 느껴지고,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모르는 극의 완급은 놀래킬려고 애쓰는 장면과 배우들의 하얀 눈알로 메꾸려듭니다. 개연성과 상식에 준한 그의 논리는 애초에 기대안했습니다. 제가 더 짜증나는건, 이 영화가 한국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상징을 골수부터 체험하며, 그 욕망에 충실한 중장년층 관객들에게, 꽤나 그럴싸하게 먹힐거 같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영화보다 더하게 정치적으로 저한테 불편한 영화는 부지기수일꺼고, 더 게으르며 나태한 영화도 수두룩하겠죠. 결국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제 자신에게 화가나서 입니다. 전 왜 하필 오늘 오후 남는시간에 서점을 가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버스 종점을 찍는 짓을 하질 않고 적지않은 돈을 내고 이 영화를 보았을까요. 또 하나의 노동자로써, 이 영화에 종사한 사람들의 노동들이 사탕발림이나 잡소리 없이 그들에게 정량적인 돈으로 돌아가길 바랄뿐입니다.


Aug 5, 2013

그랑블루, 가장 아름다운 염세주의 영화


"고아가 된 주인공의 목표는 지상을 떠나 더 깊이, 더 오래 잠수하는 것입니다. 그는 친구와의 우정을 회복하고,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고, 이제 그녀가 아이를 낳고 가정을 가질 수 있게됩니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해피엔딩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주인공은 이 모든 것이 돌고래와의 우정만도 못한것이라 생각하고, 바다로 뛰어들고 한없이 빠져듭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염세적 비관주의입니다" - 정성일, 1993년 정은임의 영화음악

사람이 결핍에 대처하는 데에는 크게 두가지 반응이 있다고 봅니다. 하난 그 결핍의 근원을 컴플렉스로 만들던 지상목표로 만들던 내연기관처럼 끊임없이 폭발시켜 일생에 걸쳐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결핍으로 상실된 부분을 다른 무언가로 집어넣어 메꾸려는 겁니다. 사람들은 때에 따라서 다른 반응들을 보이는데 그랑블루의 주인공 자크는 어머니가 떠나고, 아버지가 바다에서 죽었던 유년의 상처를 끊임없이 다시 바다로써 메꾸려합니다. 그건 집착이나 편집증이란 단어론 설명되지 않는, 기갈이란 단어와 비슷합니다. 자크에게 바다는 기갈입니다.

 엔조는 타고난 잠수부입니다. 그의 실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하고, 심지어 다이빙을 위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엔조에게 다이빙은 격렬한 투쟁의 장소입니다. 꼬맹이시절 동네에서 패거리들을 이끌고 항구바닥에서 동전을 건져올리던 아이가 정말 그대로 큰 모습입니다. 엔조는 잠수를 위해 태어난 인간입니다. 하지만 자크는 조금 다릅니다. 그는 거의 바다에서 잉태된 존재입니다. 어머니가 그를 버리고, 잠수부인 아버지가 바다에서 사고로 죽은건 어떻게 보면 관객에게 붙이는 구구절절한 부가설명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환경이 어떠하였던간에, 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에 꽂히듯 결국 자크는 바다로 파고들었을것이다라고 전 생각합니다. 그는 그냥 바다 그 자체에요.

 엔조가 잠수를 하는 이유는 결국 바다위에 있습니다. 그는 동생과 어머니와 수많은 애인들을 부양해야하고, 좋은 양복을 입어야 합니다. 그에겐 바다를 통한 투쟁과 승리가 있습니다. 바다속으로 내려가도,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야합니다. 지상으로 올라와야만이 그가 잠수하는 이유를 만족시키거든요. 엔조는 얼마나 깊이의 숫자에 집착하였나요. 결국 그는 지상에 발을 붙인 존재입니다. 지상에 발을 붙인 엔조가 보기에 자크는 본질적으로 불가해한 존재입니다. 자크는 바다 깊이 들어갔을때, 다시 올라가야할 이유를 못찾기에 힘들어하는 생물입니다. 그에겐 지상에 남겨둔건 결국 지극히 사소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와, 자기 아이마저도. 엔조가 자크를 어릴때부터 의식하며 챙겼던건, 어쩌면 친구에게서 느낀 미지감과 동경때문이었을 겁니다. 엔조가 바다에서 죽을 때, 자크가 그의 곁에서 그를 해저로 밀어내는 장면은 친구를 떠나보내기 보단, 오히려 인어가 마지막까지 바다와 사투한 사내에게 보여주는 환영처럼 보입니다.  

 자크는 자기 아이가 태어나던, 애인이 도망치던, 친구가 죽던 살던간에 결국 바다밑으로 떠났을 겁니다. 그는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입니다. 세상엔 이런 사람들도 가끔 보이죠. 그에겐 유년시절의 상처론 설명되지 않는 태생적인 결여가 있습니다. 차라리 그는 그냥 돌고래로 태어났어야 했습니다. 그럼 여러사람 덜 피곤했을겁니다. 결국 지상위에 온갖 하찮은 것들을 뒤로 하고 그는 자기가 원래 있어야 할 '거대한 청색'으로 쏠려갑니다. 저같은 보통의 인간들은 조안나처럼 저게 뭐하는 짓거리인가... 하고 바라볼수 밖에 없어요. 그리스 돌섬과 안데스산맥과 뉴욕을 거쳐 다시 바다로 쏠려내려가는 여정에 썩 공감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헌데 살다보면 가끔 이해못할 아득함과, 존재론적 단독감(고독은 정서적인 말이 들어갔다고 김훈이 그러더군요, 그래서 단독이라 씁니다)이 들때가 있죠. 뱃속에서 무언가 웅컹거리면서, 난 우리엄마 자궁에서 나왔는걸 분명알지만 난 왜 여기서 이렇게 태어나 살고 있는가하는 무력감, 세상 앞에 초라해지며 바짝오그라드는 오금, 거기에 뒤따라오는 무력한만큼 무장해제되며, 속수무책으로 헤집어지는 마음들. 살면서 자주 느낄 수는 없더군요. 썩 좋은건 아니지만, 이 알듯모를듯한 그 울렁거림을 다시 느끼기위해 전 스킨스쿠버와 마라톤을 합니다. 그 불가해한 아득함. 미당 서정주가 이 영화를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존재론적 고독과 원시적 자연미에 대해 서정주의 시만큼이나 뤽 베송의 영화는 잘 뽑아냈습니다.

그랑블루는 뻥튀겨 만든 나르시즘 염세주의영화입니다. 하지만 너무 아름다운 나르시즘 염세주의영화죠.




Jul 11, 2013

사일런트 마이노리티 - 시오노 나나미,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남자는 멋이없다. 공공성의 긍지.



시오노 나나미가 45살에 엮어 낸 역사 에세이집 '사일런트 마이너리티'에는 환갑을 넘어서 계속될 그녀가 바라는 사내의 격과 조건이 이미 형성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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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후, 이번에는 민주주의의 파도가 밀어닥쳤다. 그러나 전체주의의 파도에도 휩싸인 경험이 없는 나에게는 이 사상 또한 조금도 절대적인 것이 아닌, 그저 인류가 지금까지 생각해낸 여러 사상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파시스트였다가 뒤에 공산주의자가 된 이탈리아의 어느 작가가 쓴 자전적인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것을 읽은 나의 감상은 절대주의 사고를 주입받은 자는 그러한 사고에서 자유로워져도 자유를 누릴 수가 없어, 결국 다른 절대적인 것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마르크스가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마르크스가 살았다"고 새각했던 사람뿐이다. 나처럼 마르크스가 선량한 사람들의 꿈에서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죽었다'는 말 뒤에  '살았다'고 말할 때와도 같은 감상적인 것이 느껴져, 이 사람들은 어차피 변하지 않았구나 하고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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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가 공개적으로 할복자살했을 때, 나는 어느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할복자살이 아니라 단순한 공개 자살일 뿐입니다. 할복자살은 자기 집 깊숙한 방에서 다다미라도 뒤집어놓고 천황 폐하에게 러브 레터라도 쓴 다음. 조용히 자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 나를 맹렬히 비난한 사람들은 그런식으로 자살을 시도한 작가와 같은 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이거나, 나보다 훨씬 아래 세대 사람들이었다. 미시마 유키오는 내가 볼 때 공적(公的)인 사람이다. 공적인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 느낀 거부감을 정직하게 말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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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는 1937년에 태어났다. 그 해 중일 전쟁이 일어났으며, 태평양 전쟁이 끝난 해에는 여덟 살 이었다. 그녀가 청년의 나이일때 일본의 대학가는 전공투의 계절이었다. 패전 후에도 딸에게 피아노레슨을 시켰던 집안에서 자란 그녀가 본 장면들은 이념의 후진 잔영이었다. 그녀는 이데올로기의 함몰된 남자는 멋대가리가 없다고 말한다. 개인의 삶은 개인의 철학으로 이루어지는 것, 단독자가 내뿜을 수 있는 멋을 그녀는 잡아꺼내 보여준다.

그녀가 보기에 그의 최후는 그의 화제성과 드라마틱한 인생에 비하면 오히려 품격이 떨어졌다. 공개 할복으로 이목을 끌고 계속해서 역사에 회자되겠지만, 결국 그는 그가 주구장창 말했던 가치관과 누렸던 위치와는 주파수가 좀 다른 방법을 택했다. 동의한다.

그녀는 역사를 바라볼땐 일본인 같지만, 개인을 바라볼 땐 유럽인같이 바라본다. 그래서 에세이와 소설로썬 멋있고, 역사로 바라볼땐 맹랑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봐줄만하다. 그녀가 적은 이야기중 눈길을 끄는 것중 하나는 바로 공공성에 대한 높은 가치이다.

카를로 젠이라는 사내가 있다. 그는 25년전 베네치아 해군의 사령관으로써 제노바와의 전투에서 승리했고, 신나게 이겼다. 후에 총사령관 직책과 참모장까지 역임하였고 영국과 프랑스의 대사까지 맡았다. 베네치아 권력의 원 탑인 원수자리 만을 남겨놓은 그는 일전에 점령지의 영주로부터 400두카토 (저택 한채를 살 수 있는 돈이다)를 받았다는 죄로 체포된다. 그의 변호인은 구국의 영웅이자 조국 실력자이며, 여태껏 군대통솔자와 외교담당자로서 조국에 공헌한 그의 업적과 함께, 이 같은 인재를 단순한 스캔들로 매장시켜 버릴 경우에 따라서 올 공화국의 미래의 손실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판결을 담당했던 한 위원의 답이 걸작이다. "위원 여러분, 젠 정도의 인물이라면 그를 재판하는 것이 망설여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재란 이제 태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두려워하는 나라에서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요, 반대로 그와 같은 걱정을 잊고 단호히 판결을 내리는 나라라면 언제고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카를로 젠은 2년 실형에 영구적으로 공직을 박탈당하였다. 그는 출옥후 그럭저럭 잘 살았으며, 10년 뒤 공국은 그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뤄주었다. 죽고 난뒤 시체 위에 덮이는 관뚜껑 재질과 비단색깔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는 명예로운 시민으로써 죽었고, 공동체는 그걸 알아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베네치아 공화국은 그 뒤로도 국가공동체의 황금기를 백여년 누리게 된다. 공화국은 결국 젠을 누락시킴으로써 지불해야 하는 비용보단, 공동체의 정신을 바로세움으로써 얻는 국가적 편익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았고 판단에 따라서 실행했다. 나는 미국이 유례없는 번영을 구가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공공성의 정신과 그것을 믿는 구성원들의 신념이 만들어낸 사회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결국 지금 당장의 비용을 걱정하여, 공공성에 심각한 누를 끼치는건, 대한민국 공화정에 가져올 편익을 앗아간다는 사실. 그리고 비용을 지불하지 않음으로써 이득을 얻게 되는 사람은 극소수겠지만, 시스템에 돌아갈 편익이 없어짐으로써 손해입을 사람들은 지금 우리와, 미래의 공동체의 구성원들이라는 것


Jul 2, 2013

윤동주 - 울적(鬱寂)

처음 피워본 담바맛은
아츰까지 목않에서 간질간질 타.

어제밤에 하도 鬱寂(울적)하기에
가만히 한대픠워 보았더니

一九三七, 六

흡연을 이렇게 한국어로 알싸하게 표현한 구절은 많지 않을 것이다. 1937년 윤동주는 20살 나이로 광명중학교 졸업반이었고, 아버지와 진로때문에 다투었으며, 식민지의 청년이었다. 아침까지 목안에서 타오르는 간질함. 



Jun 25, 2013

몸을 씻지 않는 사람부터 죽었다 - 생존자 中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한 그 순간, 나는 마치 미몽에서 깨어난 것만 같았다. 나는 내 밑바닥으로붙 나오는 '살아야 한다'는 명령을 들었다. 설사 내가 만일 아우슈비츠에서 죽는다고 해도 나는 '인간'으로서 죽을 것이며 끝까지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킬것이다. 나는 결코 놈들이 원하는 대로 비천하고 더러운 짐승으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난 후로는 무서운 투쟁이 밤낮으로 계속되었다. _ 레빈스카Lewin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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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내재적으로 지닌 가장 강력한 생존도구 중 하나는 바로 자존감인것이다. 스스로를 존엄하게 여기는 태도, 이건 교양이나 학식과는 또 다른 것이다. 극적인 상황에서 얼마나 스스로를 가치있게 판단하고 존엄하게 자기를 유지해낼 수 있는 가가, 곧 생존의 조건이고 사람의 역량이란 말 

Jun 24, 2013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 김동조

사람은 인센티브에 대해서 아주 정교하고 미묘한 반응을 보이며, 대개 그 반응은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조금만 잘못된 인센티브 구조가 만들어져도 사회적 효율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애초의 의도까지 왜곡된다.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인센티브 구조도 잘못 디자인되면 없는 것만 못하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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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는 스스로 인터넷 음원 판매를 하게 되면 그것이 저희의 음반 산업을 카니발라이즈(cannibalize)할 것을 우려했다. 엘지도 저희가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들면, 자칫 기존의 휴대전화 모델을 카니발라이즈할지 모른다고 걱정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와 삼성은 스스로 카니발라이즈 하지 않으면, 다른 누가 대신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엘지와 소니는 틀렸고, 애플과 삼성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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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판타지를 즐기는 기쁨은 잠깐이고, 사람은 다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승민에게는 젊고 아름다우며 뉴욕에서 좀 더 넓은 아파트를 구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족을 둔 약혼녀가 있다. 비록 15년 만에 확인한 사랑이 아름답고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약혼녀를 버리고 이혼녀가 되어 나타난 15년 전 첫사랑에게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승민은 이미 15년전에도 자신을 찾아온 서연을 외면한 바 있고, 남편을 잃고 혼자 아들을 키운 엄마를 놔두고 뉴욕으로 떠나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 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존재이고, 대개의 인간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들을 살펴보면 비교적 일관된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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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간 간 읽은 책 중 가장 좋았다. 취향에도 맞았고, 내용도 좋았지만, 몇권 씩 사서 친구들과 좋은 분들한테 선물하여 주고 싶은 책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