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3, 2013

숨바꼭질 - 불편하며, 게으르다



<숨바꼭질>에서 최종적인 악인, 즉 가장 공포스럽고 흉물스러운 존재는 능력도 안 되면서 중산층을 욕망하며 자기도 가지겠다고 ‘생떼거리’를 쓰는(용산구청에 나붙었던 플래카드의 문구) 가난하고 촌스러운 자들이다. 돈도 없으면서 집을 탐하다 하우스푸어가 된 자들, 능력도 없으면서 사교육을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사람들이 가장 무섭고 끔찍하며 사회의 안전을 해치는 족속이라는 것이다. 성수는 주희의 제어할 수 없는 욕망을 간파하고, 이를 이용해 회유한 뒤 불태워 죽인다. <숨바꼭질>은 중산층 상부가 자신들에게 따라붙으려는 중산층 하부와 서민들에게 윤리적·미학적 비난을 퍼부으며, 따돌리고 밀어내어 자멸시키는 계급적 무의식을 반영한 영화이다.

마침내 우아하고 새치름한 중산층 마나님인 성수의 처가 촌스럽고 우악스러운 주희를 내려친다. 뒤늦게 도착한 성수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온한 싱글맘 주희의 숨통을 끊어 처자식을 구해낸다. 객석에선 환호가 터진다. 객석을 중산층 정상가족의 무의식으로 대동단결시킨 영화적 힘에 감탄해야 할지, 반동적 허위의식에 혀를 차야 할지 아련해진다.

http://www.entermedia.co.kr/news/news_view.html?idx=2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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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생업이 아닌, 취미로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 영화를 볼 때 그 영화가 정말 엉망이라면 가장 분노하는 대상은 자기자신입니다.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그럼 필연적으로 함량 미달의 영화가 나오겠지만, 왜 난 내 선택에 의해 내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이런 개같은 영화를 보고있나 생각하다보면 내 선택이 후회스럽고, 그런 선택을 한 내 자신에 대한 화가 솟아납니다. 좋은 영화를 보는건 그렇다치고, 후진 영화를 골라내서 피하는건 꽤 자신있다고 생각했지만, 오랜만에 본 스릴러 한국영화인 숨바꼭질은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화가나는 경험을 하게 해준 영화입니다.

영화의 공포의 근원은 첫번째로 익명을 뒤집어쓴 도시공간에서의 공포로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간과 강도와 살인의 공포와 마주한채 살아가고, 비극은 매일 일어나니까요. 설득력있고 무섭습니다. 전 남자지만 여자관객들이 처음 나오는 엘리베이터 장면을 볼땐 정말로 온몸에 털이 돋는, 하지만 종종 겪을 법한 상황이기에 많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겁니다. 영화는 스리슬쩍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공간에서의 비극대신(위에 링크한 글에선 아파트호러라고 하더군요. 일리있습니다.), 계급적 질서의 대변과 충돌로 바꿔 넘어갑니다. 괜찮습니다 정치적 견해가 좀 구리긴해도, 정치적으로 후지다는게 꼭 영화자체가 후지다는 소린 아니니까. 자기 보금자리를 위협받는 중산층의 공포감과 경계심을 재료를 삼은 수많은 걸작 영화들이 그 증거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 매우 노골적으로 불쾌하면서도, 연출도 매우 게으릅니다. 날로 먹으려듭니다. 한국 드라마에서 쓰일법한 촌스런 음악(죄송, 하지만 이 표현말곤 생각나지 않더군요)으로 관객들한테 공포감을 갖도록 구걸하고, 누가 봐도 상상이거나 꿈이 분명한 장면들을 아무런 고민없이 중간에 턱턱 넣어버립니다. 보여주는 캐릭터의 심리와 묘사는 배우가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결국 허접스런 각본의 한계인지 이물감만 느껴지고,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모르는 극의 완급은 놀래킬려고 애쓰는 장면과 배우들의 하얀 눈알로 메꾸려듭니다. 개연성과 상식에 준한 그의 논리는 애초에 기대안했습니다. 제가 더 짜증나는건, 이 영화가 한국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상징을 골수부터 체험하며, 그 욕망에 충실한 중장년층 관객들에게, 꽤나 그럴싸하게 먹힐거 같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영화보다 더하게 정치적으로 저한테 불편한 영화는 부지기수일꺼고, 더 게으르며 나태한 영화도 수두룩하겠죠. 결국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제 자신에게 화가나서 입니다. 전 왜 하필 오늘 오후 남는시간에 서점을 가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버스 종점을 찍는 짓을 하질 않고 적지않은 돈을 내고 이 영화를 보았을까요. 또 하나의 노동자로써, 이 영화에 종사한 사람들의 노동들이 사탕발림이나 잡소리 없이 그들에게 정량적인 돈으로 돌아가길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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