面厚心黑
얼굴은 두껍고, 마음은 검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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鈍筆勝聰
둔감한 붓이 머리를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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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bris would anger the genie
오만은 지니를 화나게 한다
Sep 30, 2013
Sep 26, 2013
멋진 사내들
세명중에서 개인적으로는 파바로티지만, 두 사람다 좋다. Nessun Dorma는 특히나 플라시도 도밍고의 감정이 떡고물처럼 떨어지는게 너무 좋았다. 그가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을 땐, 한국인 성악가보다 발음이 더 좋아서 너무 놀랐다. 아 멋진남자들.
Sep 23, 2013
정성일 트위터 중에서
비밀_ 리스트를 연주할 때 모두들 기교에 대해서 말하죠, 내가 리스트를 위해서 피아노 앞에 앉을 때 항상 생각하는 것은 단 한가지 입니다. 침묵. 리히테르.
시작_ 오늘 들은 말. 살이 찌기 시작했다는 건 삶의 일부가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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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가 아니더라도, 메모하는 습관을 들어야겠다.
살인자의 기억법
짧고 간결하다. 김영하라는 음식이 있다면 정말 필요한 부분 부분만 모아놓은 미니 도시락같다. 생각보단 나쁘진 않았지만, 역시 김영하는 검은꽃이다. 검은 꽃의 에필로그는 너무 좋았다. 역사와 인생. 짖궂은 농담. 계속되는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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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이 왔어, 그 친구 과테말라에서 죽었다는 군'
박정훈이 편지를 전했다. 연수는 처음에는 입을 꾹 다물고 얘기를 들었으나 편지를 읽고 나선 울었다.
'여기 왔었군요'
박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머리르 깎아주고 면도도 해주었소
연수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리고 다시는 울지 않았다. 박정훈은 삼년 후 이발을 하다 심장마비를 일으켜 급사했다. 이연수는 박정훈의 돈으로 고리대금업을 시작 했다. 몇년 만에 그녀는 베라크루즈에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큰 손이 되었다. 그녀는 곧 멕시코 시티로 올라가 극장을 겸한 술집 몇 개를 사들이고 무희들을 고용했다. 그녀는 유흥가의 거물로 성장해 어떤 자선사업도 벌이지 않고, 어떤 종교에도 의탁하지 않고, 오직 갈퀴처럼 돈을 긁어모으는 일에만 전념했다.
경찰과 행정 당국은 그녀에게 매출알선 혐의를 적용하려 여러번 시도했지만 끝내 실패하였다. 그녀는 75세의 나이로 멕시코 시티에서 죽었다. 모든 유산은 그녀의 아들 박섭이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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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이 왔어, 그 친구 과테말라에서 죽었다는 군'
박정훈이 편지를 전했다. 연수는 처음에는 입을 꾹 다물고 얘기를 들었으나 편지를 읽고 나선 울었다.
'여기 왔었군요'
박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머리르 깎아주고 면도도 해주었소
연수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리고 다시는 울지 않았다. 박정훈은 삼년 후 이발을 하다 심장마비를 일으켜 급사했다. 이연수는 박정훈의 돈으로 고리대금업을 시작 했다. 몇년 만에 그녀는 베라크루즈에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큰 손이 되었다. 그녀는 곧 멕시코 시티로 올라가 극장을 겸한 술집 몇 개를 사들이고 무희들을 고용했다. 그녀는 유흥가의 거물로 성장해 어떤 자선사업도 벌이지 않고, 어떤 종교에도 의탁하지 않고, 오직 갈퀴처럼 돈을 긁어모으는 일에만 전념했다.
경찰과 행정 당국은 그녀에게 매출알선 혐의를 적용하려 여러번 시도했지만 끝내 실패하였다. 그녀는 75세의 나이로 멕시코 시티에서 죽었다. 모든 유산은 그녀의 아들 박섭이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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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14, 2013
태양은 가득히, 알랑 드롱과 이병헌
태양은 가득히를 한국판으로 어레인지 한다면 리플리 역은 이병헌이 맡아야 한다. 라고 친구들과 술먹을때 우긴적이 있었다. 글을 쓰며 찾아보니 박찬욱감독도 이병헌이 한국의 알랑 드롱이라는 말을 한적이 있었던 걸 보면 내가 헛소리를 한건 아닌듯하다. 이병헌의 목소리와 연기력을 떠나서, 잘생긴 얼굴을 감안하면 동년배의 한국배우 중 가장 넓은 연기의 폭을 가졌다. 그는 가진자와 못가진자, 배운 이와 못배운이, 선함과 악함을 모두 소화할 수 있다. 하얀색 옷입고 수리검 날리는 지극히 만화스러운 닌자와, 최지우의 실땅님과 번지점프의 인우를 (비록 세월의 갭이 있지만) 그는 빠지는거 없이 해낸편이다. 그리고 어떤 역을 맡더라도 눈알 저편에 깔린 강렬한 에고는 스크린에 투사된다. 이것이 알랭드롱과 이병헌의 교집합이다. 햇빛에 다 뒤집어진 등짝으로 바다를 쳐다보던 리플리의 눈빛은, 이병헌만이 대체할수 있을 것이다.
이병헌의 출연작 중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가장 이병헌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던건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이었다. 고급양복을 입은채 건물꼭대기 층에서 쉐도우 복싱을 하던 그의 모습에서 보이던 나르시즘과 에고는 연기가 아니라 본인의 실제 모습일거라 생각했다. 캐스팅을 잘하고 캐릭터에 맞게 잘뽑아낸 감독의 역량도 훌륭하지만, 영화에서 비친 선우의 모습은 배우 본인이 자존감과 나르시즘없이는 그 몰락이 그만큼 처절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면 잘난척해도 된다.
중경삼림
결막염 때문에 눈을 감을 때마다 눈에서 모래알이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감기까지 얹혔다. 한 시간정도 달리기를 하고 더운 땀을 빼니 갑자기 미식거리며 식은 땀이 비질비질 세어나왔다. 택시를 타고 영화의 전당에 도착했다. 처음 앉아본 야외 극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다. 가족들과 연인들끼리 온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괜찮은 자리를 발견한건 행운이었는데, 음식을 들고온 관객들이 많았다. 감기몸살로 솎아낸 빈속을 족발과 치킨과 햄버거와 김밥냄새가 뒤집기 시작했다. 같이 달려온 무우냄새가 결정타였다. 속이 울렁거렸다. 들고온 커피가 아니였다면 화장실로 달려가서 토해버렸을 것이다. '아.. 괜히 왔구나', 영화가 시작했다.
금성무가 헐레거리며 뛰어다니고, 임청하와 어깨를 부딪히고, 다시 things in life가 나오는 술집에서 트렌치코트를 입고 가발을 쓰고 선글라스까지 낀 임청하가 담배를 핀다. 뒤집힌 속과 통닭냄새가 신경쓰이지 않았다. 페이와 양조위가 식당에서 마주치는 순간, 이 영화를 보러오지 않았다면 다시 몇 년을 후회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California Dreamin이 나올 때, 갑자기 울컥거리면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양가위한테 무장해제되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이 사람은 영화를 이렇게 간드러지게 만들까.
97년 반환을 앞둔 홍콩의 세기말적 정서가, 곧 왕가위 영화의 근본이었다. 정서적 과잉과 눈이 뽀개질 정도의 아름다움, 현실에서 한 걸음 살짝 비켜선 인물들의 대사는 전부 종말을 선고받은 이의 공허의 감성에서 출발한다. '화양연화'와 '중경상림'이 그랬고 '아비정전'과 '동사서독'이 그랬듯이, 왕가위는 운명론적 허무주의에서 발버둥치는 사랑과 인간의 군상들의 동어반복을 이야기했다. 그게 왕가위의 한계이고, 동시에 가장 보는 이의 흉부를 먹먹하게 만드는 점이었다. 홍콩은 반환된지 십수년이 넘었고, 58년 개띠인 왕가위는 초로의 입구에 서있다. 그래도 아직 그의 영화는 여기저기서 틀어지고 있고, 장면들마다 피어나는 거리와 연인의 풍경에서 솟아나는 울림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건 세월에 관계없이 결국 세상에 쓸려간 사람들의 생애는 비슷한 단면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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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경삼림은 다시 볼 수록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만일 당신이 새로운 21세기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당신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중경삼림은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영화입니다. 혹은 질문하는 영화입니다. 제 생각에 중경삼림은 1990년대에 만들어진 최고의 연애영화입니다.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 혹은 곧 사랑하게 될 사람들, 또는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과 막 헤어진 사람들이 마치 치료하듯이 보아야할 영화라고까지 말하고 싶습니다. 혹은 우리 시대의 사랑하는 방식에 관해서 말하는 영화, 그러니까 중경삼림은 훗날 20세기의 마지막 10년동안 이 20세기의 마지막 연애방식에 관해서 말하는 영화라고 기억될 것입니다. 중경삼림은 한 마디로 사랑에 관한 영화입니다. 이제 막 시작될 사랑, 막 떠나간 사랑, 하여튼 그 사이에 있는 시간에 관한 영화입니다. 감사합니다. - 중경상림 DVD 정성일 코멘터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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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많은 장면들이 좋지만, 저에게 중경상림에서 가장 압권은 양조위가 가게에서 지나간 애인의 편지를 읽지않고 블랙커피를 마시는 장면입니다. 카운터에 기댄체 아무말도 하지 않는 페이, 커피를 마시는 양조위, 지나가는 사람들, 이 짧은 순간의 침묵에서 흘러나온 사랑의 풍경.
Sep 3, 2013
숨바꼭질 - 불편하며, 게으르다
<숨바꼭질>에서 최종적인 악인, 즉 가장 공포스럽고 흉물스러운 존재는 능력도 안 되면서 중산층을 욕망하며 자기도 가지겠다고 ‘생떼거리’를 쓰는(용산구청에 나붙었던 플래카드의 문구) 가난하고 촌스러운 자들이다. 돈도 없으면서 집을 탐하다 하우스푸어가 된 자들, 능력도 없으면서 사교육을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사람들이 가장 무섭고 끔찍하며 사회의 안전을 해치는 족속이라는 것이다. 성수는 주희의 제어할 수 없는 욕망을 간파하고, 이를 이용해 회유한 뒤 불태워 죽인다. <숨바꼭질>은 중산층 상부가 자신들에게 따라붙으려는 중산층 하부와 서민들에게 윤리적·미학적 비난을 퍼부으며, 따돌리고 밀어내어 자멸시키는 계급적 무의식을 반영한 영화이다.
마침내 우아하고 새치름한 중산층 마나님인 성수의 처가 촌스럽고 우악스러운 주희를 내려친다. 뒤늦게 도착한 성수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온한 싱글맘 주희의 숨통을 끊어 처자식을 구해낸다. 객석에선 환호가 터진다. 객석을 중산층 정상가족의 무의식으로 대동단결시킨 영화적 힘에 감탄해야 할지, 반동적 허위의식에 혀를 차야 할지 아련해진다.
http://www.entermedia.co.kr/news/news_view.html?idx=2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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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생업이 아닌, 취미로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 영화를 볼 때 그 영화가 정말 엉망이라면 가장 분노하는 대상은 자기자신입니다.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그럼 필연적으로 함량 미달의 영화가 나오겠지만, 왜 난 내 선택에 의해 내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이런 개같은 영화를 보고있나 생각하다보면 내 선택이 후회스럽고, 그런 선택을 한 내 자신에 대한 화가 솟아납니다. 좋은 영화를 보는건 그렇다치고, 후진 영화를 골라내서 피하는건 꽤 자신있다고 생각했지만, 오랜만에 본 스릴러 한국영화인 숨바꼭질은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화가나는 경험을 하게 해준 영화입니다.
영화의 공포의 근원은 첫번째로 익명을 뒤집어쓴 도시공간에서의 공포로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간과 강도와 살인의 공포와 마주한채 살아가고, 비극은 매일 일어나니까요. 설득력있고 무섭습니다. 전 남자지만 여자관객들이 처음 나오는 엘리베이터 장면을 볼땐 정말로 온몸에 털이 돋는, 하지만 종종 겪을 법한 상황이기에 많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겁니다. 영화는 스리슬쩍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공간에서의 비극대신(위에 링크한 글에선 아파트호러라고 하더군요. 일리있습니다.), 계급적 질서의 대변과 충돌로 바꿔 넘어갑니다. 괜찮습니다 정치적 견해가 좀 구리긴해도, 정치적으로 후지다는게 꼭 영화자체가 후지다는 소린 아니니까. 자기 보금자리를 위협받는 중산층의 공포감과 경계심을 재료를 삼은 수많은 걸작 영화들이 그 증거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 매우 노골적으로 불쾌하면서도, 연출도 매우 게으릅니다. 날로 먹으려듭니다. 한국 드라마에서 쓰일법한 촌스런 음악(죄송, 하지만 이 표현말곤 생각나지 않더군요)으로 관객들한테 공포감을 갖도록 구걸하고, 누가 봐도 상상이거나 꿈이 분명한 장면들을 아무런 고민없이 중간에 턱턱 넣어버립니다. 보여주는 캐릭터의 심리와 묘사는 배우가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결국 허접스런 각본의 한계인지 이물감만 느껴지고,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모르는 극의 완급은 놀래킬려고 애쓰는 장면과 배우들의 하얀 눈알로 메꾸려듭니다. 개연성과 상식에 준한 그의 논리는 애초에 기대안했습니다. 제가 더 짜증나는건, 이 영화가 한국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상징을 골수부터 체험하며, 그 욕망에 충실한 중장년층 관객들에게, 꽤나 그럴싸하게 먹힐거 같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영화보다 더하게 정치적으로 저한테 불편한 영화는 부지기수일꺼고, 더 게으르며 나태한 영화도 수두룩하겠죠. 결국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제 자신에게 화가나서 입니다. 전 왜 하필 오늘 오후 남는시간에 서점을 가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버스 종점을 찍는 짓을 하질 않고 적지않은 돈을 내고 이 영화를 보았을까요. 또 하나의 노동자로써, 이 영화에 종사한 사람들의 노동들이 사탕발림이나 잡소리 없이 그들에게 정량적인 돈으로 돌아가길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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