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14, 2014

The Most Defining Moment In My Life

 
  It was last summer. At Sunday dawn, after a dispute with my parents, I stormed off my house and rode bicycle to release my anger. On the crossroad at Centum City, I disregarded a right turn signal and galloped on the street. I found that a BMW at a high speed out of the corner. The driver also ignored the signal, and we got collided each other. I was almost amputated my right foot except bones. I got my vein, ligaments and tendons cut off. I shed blood as much as a small size of bucket. On the spot, I was taken to a hospital by ambulance car. Fortunately, even though it was Sunday morning, I could get a surgery within three hours. While doctors operated on, I continuously asked them whether I will be able to would ski, swim and run again. Those were sole and pure joys in my life. I totally dreaded that I would not be capable of them. Doctors answered he has nothing to guarantee.

   I had to be hospitalized almost for a month. In the early days at the hospital, I was seized by fear of being disabled. I often felt being depressed and indulged in self-pity. I asked to myself that why should I suffer from this misfortune? With the passing of time, however, I started changing my attitude. As I look around at the hospital, there were more serious cases. Some people had got serious permanent disability, because they could not get appropriate measures within golden time, or even worse, some other died after accidents. I also could be dead or seriously disabled from my accident. I became think that I’m fortunate and blessed indeed. I had nothing to complain about, it was an epiphany for me. From that day on, I took myself, my life and my reality as bonus. I did want to use my chance preciously rather than just wasting and spoiling it. It led me positive and vigorous mindset. I made my own disciplines to optimize my given opportunity.

   Most of patients in a patient room were elder people in their 70s and 80s. Their daily routine was dead simple. Eating, sleeping and watching television were all they do. I viscerally felt if I get accustomed to this lethargic life, it will waste my life and time. I quit smoking, woke up at 6 am, downed to ground floor and bought a newspaper while pulling a wheelchair by myself. I started my morning by doing it every day. After each and every meal time, I did push-up, crunch and other exercises to keep in shape. To cultivate positive mindset, I tried to draw smiles out of patients, nurses and friends. I made jokes on serious things involving my injury. Sometimes, unpleasant mood barged in on me due to inhospitable nurses and rude patients. But I treated them politely and humorously. This attitude also helped me get along with people in the hospital. With time, finally I felt my life show progress more than ever. After hospitalization, I came back to my house. I kept my discipline and rule. I did remedial exercise on a regular basis.

   Four months later, the doctor said to me that my foot finally recovered. He said it rarely happen that those sensory nerves got back on track after once it torn off. I was lucky indeed. Even thought, it left gruesome scar on my right ankle, I really appreciate everything I had gone through in the hospital. It was a precious lesson that I got enlightened. Through the experience, I can firmly believe in myself. Now I can find myself coming closer to a high level of self-confidence that I can handle anything that comes my way.



How Stephen King Teaches Writing



http://www.theatlantic.com/education/archive/2014/09/how-stephen-king-teaches-writing/379870/?single_page=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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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hey: You write, “One either absorbs the grammatical principles of one’s native language in conversation and in reading or one does not.” If this is true, why teach grammar in school at all? Why bother to name the parts?

'오직 대화나 책 읽기로만 모국어의 원이를 습득할 수 있다' 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왜 학교에서 문법을 가르치고, 품사를 나누고 이름을 붙일까요?

King: When we name the parts, we take away the mystery and turn writing into a problem that can be solved. I used to tell them that if you could put together a model car or assemble a piece of furniture from directions, you could write a sentence. Reading is the key, though. A kid who grows up hearing “It don’t matter to me” can only learn doesn’t if he/she reads it over and over again.

우리가 품사를 만들고 명명하는 순간, 신비로움은 사라지고 글쓰기는 풀어야할 문제저로 전락한다. 나는 그들에게 이런말을 하곤 했다. 만약 당신들이 자동차 장난감이나 가구를 조립 설명서를 보고 만들 수 있다면, 문장은 왜 못만들어 내겠습니까? 하지만 핵심은 바로 독서이다. It don't matter to me라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오직 거듭해서 읽고 또 읽어서만 it doesn't to me를 익힐 수 있다.

Mar 24, 2014

how to meditate

가만히 앉아서 쉼호흡을 한다, 그리고 눈을 감고 두눈의 검은 자위가 양 꼭지점을 이루고 간뇌 가운데 꼭지점을 두는 삼각형을 생각한다. 머리를 관통하는 삼각형을 생각한 다음에는, 간뇌에 수렴하는 꼭지점에 집중한다. 거기가 의식이 존재하는 장소라는 상상을 한다. 그 곳이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곳이라는 생각을하며, 좀 더 구체적인 이미지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장소에 머무른다.


토요일날 외국어학원에서 원장선생님한테 배운 명상법인데. 정말 효과가 있어서 놀랐다. 가만히 앉아서 집중하는 행동을 한번도 성공한적이 없었고, 스스로 그게 가능하다고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명상은 항상 몸이 움직이는 도중에 일어났다, 수영이나 달리기라던가..), 가만히 앉아있는 가운데 전혀 다른 공감각과 인식의 거리두기는 새로우면서도 훌륭한 경험이었다. 외국어학원이라는 상황의 문맥이 있어서 가능했던듯 하기도하고, 좋은 인스트럭터 덕분인것 같기도 하다. 인솔자와 상황의 위력을 느꼈다.

Feb 3, 2014

겨울왕국

생각보다 어린아이들이 없었다. 주말 낮이었지만 극장안은 어른관객들이 훨씬 많았다. 캐릭터들은 정감가고, 노래는 좋았다. 스토리의 개연성은 라푼젤보단 떨어졌지만, 훨씬 나았다. let it go는 정말 오랜만에 찾아듣게 된 디즈니의 스코어였다.

디즈니의 표현기술만큼이나 메시지의 성숙도도 나아지는 듯. 예전처럼 메스꺼운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엄청나게 세련되어졌다. 라푼젤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디즈니 애니매이션의 르네상스가 온듯.




위대한 개츠비




중학교 때 처음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내게 큰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였다. 첫사랑에 비이성적으로 몰빵하여 개죽음을 맞은 젊은 벼락부자 이야기는 너무 진부하고 통속적이라고 생각했다. 세계대전후 미증유의 물질적 풍요속 있었던 그늘이나 공허감도 중학생에겐 와닿지 않았다. 매일 파티에, 술에, 불륜이야기를 다룬 소설주제에 섹스묘사 하나 없다니, 이런 개같은. 그 뒤 개츠비를 다시 읽은건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아패로가 나온 영화를 보고난 고등학생 때였다. 소설로 흝어낸 개츠비의 몰락엔 로버트 레드포드의 우수젖은 눈빛과, 입생로랑의 화려함이 전해지지 않았다.

그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개츠비를 다시 읽었다. 여전히 그는 처량했다. 버라이어티하게 찌질했고 사랑이라고 믿은 감정 앞에 철저하게 무너졌다. 데이지는 여전히 썅년이었다. 다만 그가 관통한 세월의 허무와 그가 쏟아부은 에너지가 너무 애처로웠다. 수염나고, 하관이 더 야물어질 세월동안, 책을 세번을 읽고나서야 총맞아 죽은 개츠비가 가여웠다. 그의 장례식장에 가고싶었다. 가서 조용히 닉과 함께 관 앞에서 의자를 놔둬놓고 그 인생을 위로하고 싶었다. -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 박인환의 말을 읉어내고 싶었다.

해가 바뀌고 나서 영어공부를 위해 영문판으로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었다. 여태까지 읽었던 개츠비들과 달랐다. 그 때 읽은 책의 번역이 후졌거나, 그 시절의 독자가 후졌거나, 아마 둘다일것이다. 떠벅떠벅 소리내서 읽은 소설은 후진 발음에 비하면 너무나 몰입해서 읽을수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는 처음봤다면서 눈물짓는 데이지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을 생각하면 쓴웃음이 나왔다. 가버린 세월, 저만치 벗어난 인생. 톰 뷰캐넌의 추궁에 옥스포드에 몇개월간 있었다고 궁색하게 변명하는 장면에선 가슴이 먹먹해졌다. 결핍감과 열등감속에 배긴 슬픔들. 사람들이 가득찬 카페에서 읽지 않았다면 울컥했을것이다. 개츠비, 아 개츠비. 위대한 남자. 불쌍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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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즈 루어만이 만든 영화를 보고 화가났다. 저런 훌륭한 배우들을 가지고 티네이저 무비따위로 만든 감각을 보고 심사가 뒤틀렸다. 토비 맥과이어가 너무 선하고 어리게 나온게 아쉬웠지만 괜찮았고, 조던 베이커와 톰 뷰캐넌을 연기한 배우들은, 딱 내가 생각한 그들의 이미지었다. 하지만 바즈 루어만 자식이 멍청한 감각으로 이미 한번 소설을 뽑아먹었기에, 다시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기위해선 다시 적게는 십여년, 길게는 몇십년이 걸릴테다. 망할새끼.

내게 데이지에 가장 가까운 외모와 이미지는 기네스 펠트로였다. 이제 그녀는 이미 너무 늙었다.

Jan 12, 2014

변호인



 주인공인 변호사 송우석은 송강호의 연기로 캐릭터 자체만으로 큰 동력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내내 노무현의 잔영은 느껴지지 않았다. 실화를 바탕으로한 각본은 법정영화로 설득력을 가지고 노무현과 분리하여 보아도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를 만들어냈다. 송강호뿐만 아니라 오달수의 연기도 좋았다. 김영애의 연기는 티비드라마스러웠지만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곽도원의 연기도 좋았으나 제일 거슬리는건 조민기의 드라마스러운 연기였다. 이건 조민기의 배우로서의 역량의 문제이기 보단 각본의 드라마스러움이 더 컸으리라 생각한다. 덕분에 법정장면에서의 몰입이 더욱 힘들었다. 임시완은 곱상한 외모에, 연기까지 곱상하였다. 모나지는 않았으나 좋은건 아니었다. 송강호를 제외하고 가장 좋았던 연기는 정원중이었다. 생각엔 환갑이 다 되어가는 나이라 생각했는데 60년생. 오래활동하셔서 좋은연기 많은 곳에서 볼수 있길.

 문제는 음악이었다. 감정의 몰입도, 서사의 흐름도, 모두다 후지고, 흔해빠진 음악이 다 잘라먹었다. 웃긴 장면을 만들기 위해 코믹한 음악을 쓰고, 감동적인 장면을 뽑기위해 무거운 음악을 쓰고, 공포스런 장면을 만들기 위해 오싹한 음악을 쓰는건, 감독이 게을러터지고 무능하며 안일해서다. 치사하게 그러지 말아야한다. 내가 본 한국영화의 절반가량의 정도는 그런 오버하는 음악질만 빼면 훨씬 더 즐거운 관람이 될 수 있는 영화였다. 변호인도 그랬다. 덕분에 송강호가 피토하며 했던 읍소도, 수없이 깊은 용기와 희생을 필요로 했던 나라의 과거도, 한 개인으로서 감내해야했던 무지막지한 공포와 아픔도, 전부다 울컥, 하는 순간에 멈출수 있었다. 나름 감정선을 제어하기위한 고도의 술책인 것인가.

 (송우석이라는 캐릭터의 사실성과는 별개로) 송강호가 훨씬 키가 크고 잘생겼지만 노무현과 말하는 모습이 너무 같아서 놀랐다. 둘다 김해출신이고, 부러 송강호가 의도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송우석이 말하는 장면에서, 노무현의 모습을 찾기 힘들었지만 부분부분 그의 모습이 보였던 적이있었다. 딱 한장면을 꼽을 수는 없지만 송강호의 틱틱거리는 듯한 경상도 말투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연설을 하던 노무현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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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10초부터)


"제 장인께서는 좌익활동을 하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해방되는 해에 실명이 되셔서 무슨일을 얼마나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결혼하기전에 돌아가셨는데, 저는 이 사실을 알고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잘키우고 지금까지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됬습니까, 이런 아내를 지금 제가 버려야 합니까? 그렇게 하면 대통령 자격이있고, 이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까. 여러분 이자리에서 여러분들께서 심판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그런 아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통령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신다면, 저 대통령 후보 그만두겠습니다"

그의 화법은 당선 후에 정치적 리더쉽엔 훨씬 더 많은 마이너스를 낳았지만, 이런 말하기의 자세가 없었다면 대통령 노무현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정면돌파다. 이것이 아내를 위로하고 그간의 세월을 같이 보낸 파트너쉽에게 정치인이 보여줄수 있는 가장 사내다우면서도 로맨틱한 태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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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게 만든건 노무현의 잔영이 크다. 다만 그 잔영을 더욱 짙게 만드는건, 지극히 욕망을 내비치는데 부끄럼이 없는, 품격과 명예가 없는 과거를 다시 생각해내게 만드는 오늘의 정권덕분이기도 하지 않을까.



Jan 7, 2014

2014.01.08

진보를위해서는 항상 위급한 상황이 필요했다.

램프를 만들어낸 것은 어둠이었고,
남친반을 만들어낸 것은 안개였고, 
탐험을 하게 만든 것은 배고픔이었다.
그리고 일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의기소침한 나날들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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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해피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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