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3, 2014
위대한 개츠비
중학교 때 처음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내게 큰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였다. 첫사랑에 비이성적으로 몰빵하여 개죽음을 맞은 젊은 벼락부자 이야기는 너무 진부하고 통속적이라고 생각했다. 세계대전후 미증유의 물질적 풍요속 있었던 그늘이나 공허감도 중학생에겐 와닿지 않았다. 매일 파티에, 술에, 불륜이야기를 다룬 소설주제에 섹스묘사 하나 없다니, 이런 개같은. 그 뒤 개츠비를 다시 읽은건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아패로가 나온 영화를 보고난 고등학생 때였다. 소설로 흝어낸 개츠비의 몰락엔 로버트 레드포드의 우수젖은 눈빛과, 입생로랑의 화려함이 전해지지 않았다.
그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개츠비를 다시 읽었다. 여전히 그는 처량했다. 버라이어티하게 찌질했고 사랑이라고 믿은 감정 앞에 철저하게 무너졌다. 데이지는 여전히 썅년이었다. 다만 그가 관통한 세월의 허무와 그가 쏟아부은 에너지가 너무 애처로웠다. 수염나고, 하관이 더 야물어질 세월동안, 책을 세번을 읽고나서야 총맞아 죽은 개츠비가 가여웠다. 그의 장례식장에 가고싶었다. 가서 조용히 닉과 함께 관 앞에서 의자를 놔둬놓고 그 인생을 위로하고 싶었다. -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 박인환의 말을 읉어내고 싶었다.
해가 바뀌고 나서 영어공부를 위해 영문판으로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었다. 여태까지 읽었던 개츠비들과 달랐다. 그 때 읽은 책의 번역이 후졌거나, 그 시절의 독자가 후졌거나, 아마 둘다일것이다. 떠벅떠벅 소리내서 읽은 소설은 후진 발음에 비하면 너무나 몰입해서 읽을수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는 처음봤다면서 눈물짓는 데이지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을 생각하면 쓴웃음이 나왔다. 가버린 세월, 저만치 벗어난 인생. 톰 뷰캐넌의 추궁에 옥스포드에 몇개월간 있었다고 궁색하게 변명하는 장면에선 가슴이 먹먹해졌다. 결핍감과 열등감속에 배긴 슬픔들. 사람들이 가득찬 카페에서 읽지 않았다면 울컥했을것이다. 개츠비, 아 개츠비. 위대한 남자. 불쌍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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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즈 루어만이 만든 영화를 보고 화가났다. 저런 훌륭한 배우들을 가지고 티네이저 무비따위로 만든 감각을 보고 심사가 뒤틀렸다. 토비 맥과이어가 너무 선하고 어리게 나온게 아쉬웠지만 괜찮았고, 조던 베이커와 톰 뷰캐넌을 연기한 배우들은, 딱 내가 생각한 그들의 이미지었다. 하지만 바즈 루어만 자식이 멍청한 감각으로 이미 한번 소설을 뽑아먹었기에, 다시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기위해선 다시 적게는 십여년, 길게는 몇십년이 걸릴테다. 망할새끼.
내게 데이지에 가장 가까운 외모와 이미지는 기네스 펠트로였다. 이제 그녀는 이미 너무 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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