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5, 2013

그랑블루, 가장 아름다운 염세주의 영화


"고아가 된 주인공의 목표는 지상을 떠나 더 깊이, 더 오래 잠수하는 것입니다. 그는 친구와의 우정을 회복하고,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고, 이제 그녀가 아이를 낳고 가정을 가질 수 있게됩니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해피엔딩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주인공은 이 모든 것이 돌고래와의 우정만도 못한것이라 생각하고, 바다로 뛰어들고 한없이 빠져듭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염세적 비관주의입니다" - 정성일, 1993년 정은임의 영화음악

사람이 결핍에 대처하는 데에는 크게 두가지 반응이 있다고 봅니다. 하난 그 결핍의 근원을 컴플렉스로 만들던 지상목표로 만들던 내연기관처럼 끊임없이 폭발시켜 일생에 걸쳐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결핍으로 상실된 부분을 다른 무언가로 집어넣어 메꾸려는 겁니다. 사람들은 때에 따라서 다른 반응들을 보이는데 그랑블루의 주인공 자크는 어머니가 떠나고, 아버지가 바다에서 죽었던 유년의 상처를 끊임없이 다시 바다로써 메꾸려합니다. 그건 집착이나 편집증이란 단어론 설명되지 않는, 기갈이란 단어와 비슷합니다. 자크에게 바다는 기갈입니다.

 엔조는 타고난 잠수부입니다. 그의 실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하고, 심지어 다이빙을 위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엔조에게 다이빙은 격렬한 투쟁의 장소입니다. 꼬맹이시절 동네에서 패거리들을 이끌고 항구바닥에서 동전을 건져올리던 아이가 정말 그대로 큰 모습입니다. 엔조는 잠수를 위해 태어난 인간입니다. 하지만 자크는 조금 다릅니다. 그는 거의 바다에서 잉태된 존재입니다. 어머니가 그를 버리고, 잠수부인 아버지가 바다에서 사고로 죽은건 어떻게 보면 관객에게 붙이는 구구절절한 부가설명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환경이 어떠하였던간에, 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에 꽂히듯 결국 자크는 바다로 파고들었을것이다라고 전 생각합니다. 그는 그냥 바다 그 자체에요.

 엔조가 잠수를 하는 이유는 결국 바다위에 있습니다. 그는 동생과 어머니와 수많은 애인들을 부양해야하고, 좋은 양복을 입어야 합니다. 그에겐 바다를 통한 투쟁과 승리가 있습니다. 바다속으로 내려가도,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야합니다. 지상으로 올라와야만이 그가 잠수하는 이유를 만족시키거든요. 엔조는 얼마나 깊이의 숫자에 집착하였나요. 결국 그는 지상에 발을 붙인 존재입니다. 지상에 발을 붙인 엔조가 보기에 자크는 본질적으로 불가해한 존재입니다. 자크는 바다 깊이 들어갔을때, 다시 올라가야할 이유를 못찾기에 힘들어하는 생물입니다. 그에겐 지상에 남겨둔건 결국 지극히 사소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와, 자기 아이마저도. 엔조가 자크를 어릴때부터 의식하며 챙겼던건, 어쩌면 친구에게서 느낀 미지감과 동경때문이었을 겁니다. 엔조가 바다에서 죽을 때, 자크가 그의 곁에서 그를 해저로 밀어내는 장면은 친구를 떠나보내기 보단, 오히려 인어가 마지막까지 바다와 사투한 사내에게 보여주는 환영처럼 보입니다.  

 자크는 자기 아이가 태어나던, 애인이 도망치던, 친구가 죽던 살던간에 결국 바다밑으로 떠났을 겁니다. 그는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입니다. 세상엔 이런 사람들도 가끔 보이죠. 그에겐 유년시절의 상처론 설명되지 않는 태생적인 결여가 있습니다. 차라리 그는 그냥 돌고래로 태어났어야 했습니다. 그럼 여러사람 덜 피곤했을겁니다. 결국 지상위에 온갖 하찮은 것들을 뒤로 하고 그는 자기가 원래 있어야 할 '거대한 청색'으로 쏠려갑니다. 저같은 보통의 인간들은 조안나처럼 저게 뭐하는 짓거리인가... 하고 바라볼수 밖에 없어요. 그리스 돌섬과 안데스산맥과 뉴욕을 거쳐 다시 바다로 쏠려내려가는 여정에 썩 공감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헌데 살다보면 가끔 이해못할 아득함과, 존재론적 단독감(고독은 정서적인 말이 들어갔다고 김훈이 그러더군요, 그래서 단독이라 씁니다)이 들때가 있죠. 뱃속에서 무언가 웅컹거리면서, 난 우리엄마 자궁에서 나왔는걸 분명알지만 난 왜 여기서 이렇게 태어나 살고 있는가하는 무력감, 세상 앞에 초라해지며 바짝오그라드는 오금, 거기에 뒤따라오는 무력한만큼 무장해제되며, 속수무책으로 헤집어지는 마음들. 살면서 자주 느낄 수는 없더군요. 썩 좋은건 아니지만, 이 알듯모를듯한 그 울렁거림을 다시 느끼기위해 전 스킨스쿠버와 마라톤을 합니다. 그 불가해한 아득함. 미당 서정주가 이 영화를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존재론적 고독과 원시적 자연미에 대해 서정주의 시만큼이나 뤽 베송의 영화는 잘 뽑아냈습니다.

그랑블루는 뻥튀겨 만든 나르시즘 염세주의영화입니다. 하지만 너무 아름다운 나르시즘 염세주의영화죠.




Jul 11, 2013

사일런트 마이노리티 - 시오노 나나미,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남자는 멋이없다. 공공성의 긍지.



시오노 나나미가 45살에 엮어 낸 역사 에세이집 '사일런트 마이너리티'에는 환갑을 넘어서 계속될 그녀가 바라는 사내의 격과 조건이 이미 형성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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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후, 이번에는 민주주의의 파도가 밀어닥쳤다. 그러나 전체주의의 파도에도 휩싸인 경험이 없는 나에게는 이 사상 또한 조금도 절대적인 것이 아닌, 그저 인류가 지금까지 생각해낸 여러 사상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파시스트였다가 뒤에 공산주의자가 된 이탈리아의 어느 작가가 쓴 자전적인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것을 읽은 나의 감상은 절대주의 사고를 주입받은 자는 그러한 사고에서 자유로워져도 자유를 누릴 수가 없어, 결국 다른 절대적인 것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마르크스가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마르크스가 살았다"고 새각했던 사람뿐이다. 나처럼 마르크스가 선량한 사람들의 꿈에서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죽었다'는 말 뒤에  '살았다'고 말할 때와도 같은 감상적인 것이 느껴져, 이 사람들은 어차피 변하지 않았구나 하고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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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가 공개적으로 할복자살했을 때, 나는 어느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할복자살이 아니라 단순한 공개 자살일 뿐입니다. 할복자살은 자기 집 깊숙한 방에서 다다미라도 뒤집어놓고 천황 폐하에게 러브 레터라도 쓴 다음. 조용히 자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 나를 맹렬히 비난한 사람들은 그런식으로 자살을 시도한 작가와 같은 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이거나, 나보다 훨씬 아래 세대 사람들이었다. 미시마 유키오는 내가 볼 때 공적(公的)인 사람이다. 공적인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 느낀 거부감을 정직하게 말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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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는 1937년에 태어났다. 그 해 중일 전쟁이 일어났으며, 태평양 전쟁이 끝난 해에는 여덟 살 이었다. 그녀가 청년의 나이일때 일본의 대학가는 전공투의 계절이었다. 패전 후에도 딸에게 피아노레슨을 시켰던 집안에서 자란 그녀가 본 장면들은 이념의 후진 잔영이었다. 그녀는 이데올로기의 함몰된 남자는 멋대가리가 없다고 말한다. 개인의 삶은 개인의 철학으로 이루어지는 것, 단독자가 내뿜을 수 있는 멋을 그녀는 잡아꺼내 보여준다.

그녀가 보기에 그의 최후는 그의 화제성과 드라마틱한 인생에 비하면 오히려 품격이 떨어졌다. 공개 할복으로 이목을 끌고 계속해서 역사에 회자되겠지만, 결국 그는 그가 주구장창 말했던 가치관과 누렸던 위치와는 주파수가 좀 다른 방법을 택했다. 동의한다.

그녀는 역사를 바라볼땐 일본인 같지만, 개인을 바라볼 땐 유럽인같이 바라본다. 그래서 에세이와 소설로썬 멋있고, 역사로 바라볼땐 맹랑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봐줄만하다. 그녀가 적은 이야기중 눈길을 끄는 것중 하나는 바로 공공성에 대한 높은 가치이다.

카를로 젠이라는 사내가 있다. 그는 25년전 베네치아 해군의 사령관으로써 제노바와의 전투에서 승리했고, 신나게 이겼다. 후에 총사령관 직책과 참모장까지 역임하였고 영국과 프랑스의 대사까지 맡았다. 베네치아 권력의 원 탑인 원수자리 만을 남겨놓은 그는 일전에 점령지의 영주로부터 400두카토 (저택 한채를 살 수 있는 돈이다)를 받았다는 죄로 체포된다. 그의 변호인은 구국의 영웅이자 조국 실력자이며, 여태껏 군대통솔자와 외교담당자로서 조국에 공헌한 그의 업적과 함께, 이 같은 인재를 단순한 스캔들로 매장시켜 버릴 경우에 따라서 올 공화국의 미래의 손실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판결을 담당했던 한 위원의 답이 걸작이다. "위원 여러분, 젠 정도의 인물이라면 그를 재판하는 것이 망설여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재란 이제 태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두려워하는 나라에서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요, 반대로 그와 같은 걱정을 잊고 단호히 판결을 내리는 나라라면 언제고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카를로 젠은 2년 실형에 영구적으로 공직을 박탈당하였다. 그는 출옥후 그럭저럭 잘 살았으며, 10년 뒤 공국은 그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뤄주었다. 죽고 난뒤 시체 위에 덮이는 관뚜껑 재질과 비단색깔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는 명예로운 시민으로써 죽었고, 공동체는 그걸 알아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베네치아 공화국은 그 뒤로도 국가공동체의 황금기를 백여년 누리게 된다. 공화국은 결국 젠을 누락시킴으로써 지불해야 하는 비용보단, 공동체의 정신을 바로세움으로써 얻는 국가적 편익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았고 판단에 따라서 실행했다. 나는 미국이 유례없는 번영을 구가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공공성의 정신과 그것을 믿는 구성원들의 신념이 만들어낸 사회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결국 지금 당장의 비용을 걱정하여, 공공성에 심각한 누를 끼치는건, 대한민국 공화정에 가져올 편익을 앗아간다는 사실. 그리고 비용을 지불하지 않음으로써 이득을 얻게 되는 사람은 극소수겠지만, 시스템에 돌아갈 편익이 없어짐으로써 손해입을 사람들은 지금 우리와, 미래의 공동체의 구성원들이라는 것


Jul 2, 2013

윤동주 - 울적(鬱寂)

처음 피워본 담바맛은
아츰까지 목않에서 간질간질 타.

어제밤에 하도 鬱寂(울적)하기에
가만히 한대픠워 보았더니

一九三七, 六

흡연을 이렇게 한국어로 알싸하게 표현한 구절은 많지 않을 것이다. 1937년 윤동주는 20살 나이로 광명중학교 졸업반이었고, 아버지와 진로때문에 다투었으며, 식민지의 청년이었다. 아침까지 목안에서 타오르는 간질함. 



Jun 25, 2013

몸을 씻지 않는 사람부터 죽었다 - 생존자 中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한 그 순간, 나는 마치 미몽에서 깨어난 것만 같았다. 나는 내 밑바닥으로붙 나오는 '살아야 한다'는 명령을 들었다. 설사 내가 만일 아우슈비츠에서 죽는다고 해도 나는 '인간'으로서 죽을 것이며 끝까지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킬것이다. 나는 결코 놈들이 원하는 대로 비천하고 더러운 짐승으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난 후로는 무서운 투쟁이 밤낮으로 계속되었다. _ 레빈스카Lewin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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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내재적으로 지닌 가장 강력한 생존도구 중 하나는 바로 자존감인것이다. 스스로를 존엄하게 여기는 태도, 이건 교양이나 학식과는 또 다른 것이다. 극적인 상황에서 얼마나 스스로를 가치있게 판단하고 존엄하게 자기를 유지해낼 수 있는 가가, 곧 생존의 조건이고 사람의 역량이란 말 

Jun 24, 2013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 김동조

사람은 인센티브에 대해서 아주 정교하고 미묘한 반응을 보이며, 대개 그 반응은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조금만 잘못된 인센티브 구조가 만들어져도 사회적 효율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애초의 의도까지 왜곡된다.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인센티브 구조도 잘못 디자인되면 없는 것만 못하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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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는 스스로 인터넷 음원 판매를 하게 되면 그것이 저희의 음반 산업을 카니발라이즈(cannibalize)할 것을 우려했다. 엘지도 저희가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들면, 자칫 기존의 휴대전화 모델을 카니발라이즈할지 모른다고 걱정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와 삼성은 스스로 카니발라이즈 하지 않으면, 다른 누가 대신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엘지와 소니는 틀렸고, 애플과 삼성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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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판타지를 즐기는 기쁨은 잠깐이고, 사람은 다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승민에게는 젊고 아름다우며 뉴욕에서 좀 더 넓은 아파트를 구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족을 둔 약혼녀가 있다. 비록 15년 만에 확인한 사랑이 아름답고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약혼녀를 버리고 이혼녀가 되어 나타난 15년 전 첫사랑에게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승민은 이미 15년전에도 자신을 찾아온 서연을 외면한 바 있고, 남편을 잃고 혼자 아들을 키운 엄마를 놔두고 뉴욕으로 떠나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 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존재이고, 대개의 인간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들을 살펴보면 비교적 일관된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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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간 간 읽은 책 중 가장 좋았다. 취향에도 맞았고, 내용도 좋았지만, 몇권 씩 사서 친구들과 좋은 분들한테 선물하여 주고 싶은 책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Apr 28, 2013

다음 뉴스 댓글

http://media.daum.net/netizen/mycomment/?cPageIndex=3&rMode=otherMy&allComment=T&userId=FrxunhuhUag0&daumName=%EC%B5%9C%EC%B4%88%EC%9D%98%EB%8B%A8%EB%B0%B1%EC%A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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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사용자 댓글. 읽자말자 왈칵 울었다. 이렇게 운건 오랜만이다. 정말 많이 울었다.

Apr 22, 2013

이동진의 영화산책 '선라이즈'




정은임의 영화음악에서 정성일이 쫓기듯이 무르나우의 선라이즈가 왜 그토록 위대한 영화인가를 말하는걸 들은이후로, 선라이즈는 한번 쯤 보고 싶지만 좀처럼 봐지질 않는 영화였다. 1920년대에 나온 무성 흑백영화를 컴퓨터로 보는건 힘든 일 아닌가. 헌데 그 선라이즈를, '이동진'이 영화를 다보고나서 한시간넘게 해설까지 해준다니, 이건 노가 난거다. 정말 계탄일이다. 저어 옛날 영화를 커다란 스크린으로 볼수 있다는건 부산시민으로 태어나 롯데자이언츠와 희노애락을 같이하는 것 만큼이나 축복.

큐브릭이나 타르코프스키같은, 영화의 공기한줌까지 제어해야만 발뻗고 잘 것같은 므루나우가 절대적으로 제어한 1920년대 버라이어티 무성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 3D나 IMAX를 잊고, 뾰족한 테크널러지를 잊고, 움직이는 사진으로의 영화, 순수한 몽타쥬. 이건 마치 조미료와 양념으로 범벅된 음식만 먹어오다가, 정말로 괜찮은 식당에서, 친절한 요리평론가와 같이 산나물 정식을 먹은 기분이다. 아티스트같은 짭퉁 흉내내기 영화를 보는거랑은 차원이 다르다. 현대식으로 정비된 영화관에서 영화가 곧 신화였던, 소유되지 않았던 시절의 탄성과 경이, 순수한 놀라움과 엑스터시를 상상하며 공유하는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정돈 해볼만한 경험이다. 정말 좋았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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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하나는 그러니까 일출이라는 뜻이 될 것이구요, 또 한 편은 뱀파이어의 이야기 노스페라투입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라는 감독은 두 편 모두 그 장편 영화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에 본다면 60분 쪼끔 넘어가는 영화인데, 그러나 무르나우는 이 영화 속에서 영화의 가장 순수한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줍니다. 무성 영화 시절의 최고의 꿈이라는 것은 영화 속에서 자막을 전혀 쓰지 않고 카메라의 움직임과 인물들의 움직임, 화면 배치만으로 보여주는 영화를 찍어내는 것이 모든 영화감독의 꿈이었습니다. 이 꿈은 에이젠슈타인도 이루지 못했고 채플린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무르나우가 해낸 것입니다. 이 무르나우의 무성 영화는 영화의 모든 요소를 동원해서 소리 없는 이미지의 세계, 카메라의 흔들림과 그 섬세한 몽따쥬 공간만으로 말 그대로, 이것은 정말 과장이 아닙니다, 하나의 우주, 하나의 질서 그러니까 영화가 아니라면 그 어떤 다른 것도 될 수 없는 '절대 영화'의 세계를 마련해 냈습니다. 그래서 그 무르나우는 일출에서, 노스페라투에서 카메라가 영혼을 담을 수 있으며, 저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최근의 영화들은 테크놀로지가 정말 많이 발달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테크놀로지로도 담을 수 없는, 그러니까 영화 중에는 정신으로 만드는 영화가 있다는 것을 무르나우는 보여줍니다. 무르나우는 카메라에 영혼을 부여한 시네아티스트로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성일 in 정은임의 영화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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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한 날에 부산에 봄비가 내렸다. 작년, 시간에 쫓겨 무리하게 일찍 개장한 탓에 물이새던 건물을 누수점검하다 직원한명이 떨어져 추락사 했다. 그 뉴스를 본 뒤로 비가올때 기네스에 등재되어 있다고 자랑스럽게 간판까지 걸어놓은 영화의전당 외팔보 지붕밑에 흐르는 비를 보면 마음이 이상해진다. 원래부터 개장과 동시에 물이 샌다고 엄청나게 욕을 먹은 건물이다. 하지만 이제 떨어지는 빗물을 보면 꼭 사람의 진액이 같이 섞여들어가 있는 거 같지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