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27, 2013

13년. 상처와 아물기.

 올 여름 크게 다쳤다. 외상이었다. 오른발목쪽의 정맥이 잘리고 근육과 힘줄과 인대가 모조리 다 끊겼으며 신경도 절단된 상태였다. 사고 후 두시간 반가량이 지나서 수술대에 오를 수 있었다. 사고가 일어난 날이, 일요일 아침이었던걸 감안하면 운이좋은 편이었다. 접합수술은 하반신 마취후 이루어졌다. 마취를 할때, 수술대에 오른 환자는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척추쪽에 주사를 맞고 서서치 하반신의 감각이 사라지는걸 느낀다. 이때가, 가장 두려운 순간이다. 수술을 받을때는 몸을 큰 대자로 벌리고 수술대에 오른다. 수술은 약 세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심신이 지쳐서, 수면 가스로 잠을 청했으나, 예상보다 잠이 일찍깨어 집도하던 의사들이 놀랐었다. 고통과 놀람, 두려움속에서 수술이 끝나갈 때 의사들에게 몇번 씩 던진 질문이 기억이 난다 "다시 수영하고 마라톤을 할 수 있나요? 스키를 탈수 있을까요?"

 입원기간은 약 3주였다. 절단된 부위와 수술의 무지막지함에 비하여, 병원 생활과 치료과정은 상당히 단조로웠다. 내가 있었던 8인실은 대부분 중장년층과 노인들이었고, 6시 30분에 기상해서 10시 30분에 잠드는 라이프 사이클이었다. 수술후 이틀간은 사고와 수술의 아픔과 공포로 몸져누웠지만, 삼일째 아침부터는 생각을 조금 고쳐먹었다. 몸을 굴려먹기로 했다. 담배를 끊기로 하였다. 피로감으로 드는 낮잠은 허용하였다. 하지만 무료함으로 인한 수면은 경계했다. 맛이라곤 찾을 수 없는 저염식 환자식단을 빠지지 않고 먹었다. 아침 점심 저녁, 병원에서 주는 음식말곤 입에 대지 않았다. 사람들이 병문안을 오면서 싸들고온 과자와 음료수는 그대로 다음번 찾아온 다른 사람들에게 건냈다. 병원에서 주는 것 외에 따로 챙겨 먹은 건 오직 식사후 의무적으로 챙겨먹었던 아몬드였다.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 식사 후 무조건 직접 휠체어를 몰고 병원1층 로비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신문을 직접사서 읽었다. 꾸준히 꼬박꼬박 책을 읽었다. 입원해서 읽은 책은 정말 잘 읽힌다는걸 다시한번 깨달을수 있었다. 매일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다. 양치질은 다섯번씩하였다. 부러 가족들의 병간호를 다 물리쳤다. 혼자 있는게 더 평온했다. 이 모든 것들은 신체의 구속에서, 내가 할수 있는 자기 방어이자 재활의 첫번째 스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은 찾아오고, 밤마다 불안에 시달린건 어쩔수 없었다. 낮동안 잠잠하던 고통들이 밤이되면 꾸물럭거리며 발에서 다리로, 다리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전신을 점령했다. 수술 후 일주일동안은 아파서 깊은 잠을 자지 못했고, 그 뒤 일주일은 불쾌한 생각들이 단잠을 방해하였다. 그것들은 자기들끼리 새끼를 쳤다. 불안함 뒤로 외로움이 엄습했고 외로움뒤엔 분노와 두려움이 병렬로 나를 방문했다. 기도를 할까 했지만 기도할 대상이 없었다. 기도대신 자기다짐을 하였다. 아프고 외로운 밤들이었다. 다른 환자들과, 그들의 보호자들이 자면서 뒤척이는 소리와, 신음소리가 적막을 깰 수 있었다. 8인실이 마음에 드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잠이 깨거나 혹은 생각으로 뒤척일 때면 정신을 비우고 잘린후 꿰맨 정맥으로 피가 지나가고, 다시 근육조직이 엉겨붙고 환부의 인대와 힘줄이 빳빳하게 당겨지며 새로이 매듭짓는 상상을 했다. 도움이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그것만이 할수 있는 전부였다.

 몸이 재생되고, 살이차오르고, 다시 뛰고 걷게되는 상태까지 근육과 인대가 가다듬어지는 상상을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매일하기로 했다. 근육의 결과 골격의 구조는 모르지만 도움이 되길 바랄뿐이었다. 일주일이 되어갈 무렵부터 운동을 하였다. 다리는 쓰지않고, 윗몸일으키기와 푸쉬업과 이두근과 삼두근 운동을 하였다. 운동기구가 없어 병문안온 사람들이 가져온 병음료수 통을 썼다. 어깨운동을 하기위해 적당한 무게감의 아령의 대용품을 찾을 때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열대'와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전기가 눈에 들어왔다. 꽤 괜찮은 대용품이 되었다. 운동은 아침을 먹고 오전시간에 한 타임, 점심을 먹고 오후 시간에 한타임씩 하였다. 하루에 두번씩 붕대를 감은 다리를 이끌고 샤워를 할 수는 없으니 오후 시간에 본격적인 운동을 하였다. 입원 후 일주일이 지나니 나트륨과 쓸데없는 탄수화물섭취를 줄이니, 몸의 붓기가 빠지는걸 느낄수 있었다. 병문안을 오면 항상 웃었다. 재밌고 쾌활한 이야기만을 하였다. 나의 성격이 원래 그러했지만, 의도하였다. 친구들을 웃기고 간호사들을 웃기려하였다. 부상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나에게 가장 큰 동료는 "젊음"이었고 다음이 "긍정"이었다. 웃기위해 노력했다.  

 삼주간의 입원기간동안 즐겨마셨던 맥주보다, 10여년을 넘게 태운 담배보다, 기름진 음식보다 생각나는건 진한 커피였다. 커피믹스말고, 커피샵에서 파는 커피. 아침에 일어나 생각나고, 운동을 하고나서 생각났고, 휠체어에 앉아 병원 옥상에서 해지는 저녁놀에 또 생각났다. 병원밑에 커피샵이 없어 은근히 구하기 어려운 음식이 된 커피를, 친구들이나 지인들한테 올때마다 항상 부탁했다. 아메리카노로, 진하게, 큰 사이즈로. 내가 카페인에 절여져 살았다는걸 입원을 하고서야 알게되었다.

 난 내 몸의 살들이 아물고 근육이 붙는 속도와 신비에 경악했다. 뼈만남은채 덜렁거렸던 부위는 공업용 미싱에 재봉당한 듯이 꼼꼼하게 꿰매지고, 다시 힘이 들어가고 감각이 돌아오는데에 보름이란 시간이 걸렸다. 절반은 젊어서고, 나머지 반은 평소의 운동과 몸상태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신체에 감탄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보름이 지나서야, 잠을 푹잘수 있었다. 밤늦어 병원침대 위에 누워서 엄지발가락을 까닥거릴때의 그 안도감, 감사함. 그리고 퇴원이었다. 퇴원 후, 깁스를 풀기전까지도 꾸준히 운동을 하였다. 저염분의 식사도 최대한 지키려 하였다. 강한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상상으로 다리가죽 밑에 있는 온갖것들이 치유되고, 정상으로 돌아오는 상상은 멈추지 않았다. 자기전 침대에 누워서 계속해서 상상했다. 

 수술은 잘 된 편이었다. 아니, 상당히 잘 된 편이라고 해야할것이다. 그래야 수술을 집도한 의사들에 대한 나의 감사함이 조금이라도 표현될것이다. 수술후 한달 뒤, 엄지에서부터 발목부근까지 사라질거라는 발등위의 감각은 다시 돌아왔다. 수술후 두달 뒤, 매일 3km씩 걸어도 다리가 멀쩡했다. 수술 후 세달 뒤, 다시 6km정도를 쉬지않고 내달렸을때,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몇달 만에 뛰어 놀란 심장과 근육과 내 호흡사이에, 그 사이에 잘린 내다리가 온전히 붙어있음이 너무도 고마웠다. 초가을날 저녁, 수영강변 저녁놀, 나의 오른발 - , 내것들아-

재활은 끝났다. 성공이었다.  










Dec 21, 2013

12.21

 인간이란 천국에 들어서기엔 너무 민망하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 억울한 존재들이다. 실은 누구라도, 갈 곳이 없다는 얘기다. 연명의 불을 끄고 나면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 박민규

Dec 13, 2013

초대

The Invitation
                            by Oriah

It doesn’t interest me what you do for a living. I want to know what you ache for and if you dare to dream of meeting your heart’s longing.

It doesn’t interest me how old you are. I want to know  if you will risk looking like a fool for love, for your dream, for the adventure of being alive.

It doesn’t interest me what planets are squaring your moon...I want to know if you have touched the centre of your own sorrow. if you have been opened by life’s betrayals or have become shrivelled and closed from fear of further pain.

I want to know if you can sit with pain mine or your own without moving to hide it or fade it or fix it. 

I want to know if you can be with joy mine or your own if you can dance with wildness
and let the ecstasy fill you to the tips of your fingers and toes without cautioning us to be careful,to be realistic, to remember the limitations of being human.

It doesn’t interest me if the story you are telling me is true.
I want to know if you can disappoint another to be true to yourself.
If you can bear the accusation of betrayal and not betray your own soul.
If you can be faithless and therefore trustworthy.

I want to know if you can see Beauty even when it is not pretty every day. And if you can source your own life from its presence.

I want to know if you can live with failure yours and mine and still stand at the edge of the lake and shout to the silver of the full moon, “Yes.”

It doesn’t interest me to know where you live or how much money you have. I want to know if you can get up after the night of grief and despair weary and bruised to the bone
and do what needs to be done to feed the children.

It doesn’t interest me who you know or how you came to be here. I want to know if you will stand in the centre of the fire with me and not shrink back.

It doesn’t interest me where or what or with whom you have studied. I want to know what sustains you from the inside when all else falls away.

I want to know if you can be alone with yourself and if you truly like the company you keep in the empty moments.

Dec 4, 2013

어느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 그대가 오면 - 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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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의 비열한 거리와 말죽거리 잔혹사도 괜찮았지만, 나에게 그는 이 시의 시인이다. 언제나 좋아하는 시. 싱가폴 국립대학에서의 간담회중 너무 심심해서 적었었다. 이 농땡이의 풍경. 인천으로 오는 아시아나 항공편에서 30분정도 잠깐 선잠에 들었었는데. 꿈에서 난 사막에서 밀을 거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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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 그대가 오리라
바람도 찾지 못하는 그 곳으로
안개비처럼 그대가 오리라
어느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 그대가 오면
모래알들은 밀알로 변하리라
그러면 그 밀알로, 나 그대를 위해 빵을 구우리
그대 손길 닿는 곳엔
등불처럼 꽃이 피어나고
메마른 날개의 새는 선인장의 푸른 피를 몰고 와
그대 앞에 달콤한 비그늘을 드리우리
가난한 우리는 지평선과 하늘이 한몸인 땅에서
다만, 별빛에 배부르리

어느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
빗방울처럼 그대가 오리라
그러면 전갈들은 꿀을 모으고
낙타의 등은 풀잎가득한 언덕이 되고
햇빛 아래 모래알들은 빵으로 부풀고
독수리의 부리는 썩은 고기대신 꽃가루를 탐하리
가난한 내가 보여줄수 있는 세상이란 오직 이것뿐
어느날 나의 사막으로 그대가 오면

지평선과 하늘이 입맞춤하는 곳에서
나 그대를 맞으리라


싱가폴에 대한 단상들 2

싱가폴은 철저하게 레벨별로 학생들을 나눈다. 학생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성적으로 나눠지며 (이건 여느나라와 같지만) 그 경쟁과 그에 따른 결과가 중학교때부터 나타난다. 더불어 싱가폴 학생들의 성적은 하나의 히스토리化 되어 계속 주인을 따라다니게 되는데, 징병제인 싱가폴에서, 군에 입대하였을때의 병과배치또한 중고교 성적이 많이 좌우한다.

싱가폴 대학생들은 전쟁같은 입시를 통과하여, 다시 지옥같은 졸업까지의 경쟁레이스를 거쳐나간다. 이들은 공부를 매우 열심히하며, 싱가폴 국립대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면 기본적으로 영어나 중국어 둘 중에 하나는 완벽하게 구사하고, 나머지 한 언어도 능숙하게 다를 수 있을것이다. (대학생들과 몇번 대화를 해보았지만 다들 영어실력이 뛰어났다)

다만, 이러한 철저히 뜰채로 걸러내는 엘리트중심주의 교육에서 과연 전환적인 발상을 할 뛰어난 리더가 나올 수 있겠냐는 문제다. 아직까지 싱가폴은 매우 성공적으로 발전해왔고, 당분간 계속 그 지위를 누릴 수 있겠지만, 우회로가 차단된 이 사회가 주는 느낌은 매우 갑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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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폴은 리콴유가 30년째 넘게 독재를 해왔고, 퇴진 뒤 리콴유의 심복인 고촉통이 10년을 넘게 수상직을 수행하다가, 다시 리콴유의 아들인 리셴륭이 3대 수상짓을 하고 있으며, 싱가폴 최대 국영회사의 CEO는 리셴륭의 아내이자 리콴유의 며느리인 호칭이 맡고 있다.

처음보는 이방인에게 자국의 정치인들 욕을 자랑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누가보아도 불합리한 자국의 정치제제에 대하여 말을 높이는 이는 없었다. 심지어 싱가폴 대학생들 조차도 의견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난양기술대학 네트워킹 자리에서 만난 외국인들이 이 현실에 대해 성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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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폴은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 창이국제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호텔로 들어오면서 보인 거대한 빌딩숲들은 자신있게 말하고 있었다. 리콴유의 유교적 가부장적 리더십과 청교도적 국가통치관념도 유효했다고 지표와 통계는 말하고 있다. 성공적인 정책과 천혜의 지리 덕택에, 싱가폴은 반백년동안 엄청난 경제적인 성장을 해왔고, 인류사에 베네치아 다음가는 도시국가를 건설할수 있었다.

한국이 음식으로 치자면 끝모를 경쟁과 공포마케팅이라는 재료로 끓여내는 지옥 가마솥탕이라면, 싱가폴은 국가사회주의와 청교도주의로 서서히 중불로 익혀내는 음식이다. 둘다 그럭저럭 잘팔리고 있지만 치뤄야 할 값은 비싸며, 뒷맛이 조금 씁쓸하다.

싱가폴에 대한 단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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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폴의 면적은 710 제곱키로미터이고 인구는 510만명이다. 부산시보다 약간 작은 면적에 510만명의 사람이 살고있다. 기후는 일년내내 열대성 온난다습기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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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지가 정말 잘 조성되어있다. 도시 구획마다 첨예할 정도로 나무를 심고 식물을 가꿔놓은게 느껴진다. 도심지를 벗어나 외곽도로를 타고 본 도시의 아웃스커트나, 자연보호구역 또한 관리가 안된 곳이 없을 정도이다. 이것은 싱가폴이 내세우는 첨단화된 현대도시와 공존하는 '자연친화적 관광도시'와 부합하는 조건일듯.

놀랐던것은 다른 동남아국가들과 다르게 싱가폴에서 겪은 4박5일 동안 단 한마리의 벌레를 마주치지 못했다는것, 더불어 개나 고양이같은 동물또한 볼 수 없었다.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시장거리나 주택가에서 마주친 고양이는 단 한마리뿐) 벌레가 없었다는 건 국가단위의 방제사업이 잘되었다는 이야기일테고,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이 안보였다는건 규제가 상대적으로 심하다는 뜻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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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었던 호텔에 한국여직원과 새벽에 수영후 잠깐 잠깐 대화를 할수있었다. 부산에 있는 동아대학교를 졸업하고, 호텔에 취직하였다고 한다. 내가 묵었던 호텔은 리츠칼튼이나 하야트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꽤 괜찮은 호텔이었다. 호텔에 면접을 볼 때 다른 영어점수는 보지않고 오직 영어 인터뷰로만 진행이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중국어를 할줄 몰랐다.

좀 있으면 한국으로 휴가를 떠날 예정이라는데, 휴가는 날짜와 시즌에 상관없이 무조건 3주라고 한다. 싱가폴은 관리직이 아닌 호텔여직원도 3주의 유급휴가를 눈치없이 사용 할 수 있다. 싱가폴과 한국의 공통점은 유교적 가부장주의와 청교도논리가 사회를 억누른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일자리와 그 처우에서 나타난다. 더불어, 사회전반에  걸쳐 여자들의 승진과 처우가 좋다는 느낌. 그녀는 일한지 1년이 채 안되어서 프로모션을 유의미하게 기다린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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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화려하거나 타국민에게 보여줄 법한 거리가 없는 역사적 순간을, 싱가폴은 스토리텔링으로 메꾸어갈려고 한다. 부산보다 약간 작은 면적에서 가는 관광지의 기념품샵마다 머라이온이라는 사자의 대가리와 인어(라지만 생선처럼 생겼다)를 합친 캐릭터 상품이 넘쳐난다. 차이나타운과 길거리의 시장에서도 마찬가지. 그리고 생각보다, 꽤 잘 먹혀 들어가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