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은 정말로 사유적이며 정적인 운동이다. 바둑이나 체스같은 두뇌활동은 일어나지 않지만, 헤엄치는게 몸에 익고 물결을 탄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점부터 수영은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신체활동을 벗어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의 공간을 여는 운동이 된다. 풀장 벽을 발로 민후 잠영에서 부상, 크롤, 다시 턴. 매번 수영장을 갈때마다, 첫 잠영이후 올라와 물길을 잡아끌어내려 손을 어깨앞으로 펼치는 순간을 사랑한다. 수영은 부조화의 운동이다. 수면 위의, 풀장의 소음과 물 아래의 고요의 간극. 헤엄을 치는순간 심장은 바쁘게 뛰면서 피를 계속 펌프질하고, 온몸의 근육은 쥐어짜냈다가 다시 펼쳐지며 정신없이 움직인다. 호흡을 하고 다시 얼굴을 물에 집어넣는 순간, 내장은 움찔거리며 뱃속에서 출렁거린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 하물며 헤엄치면서 말을 할 수도 없다. 육체는 헐떡거리지만 머릿속 영점이 잡힙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이 열린다. 하룻동안의 일들, 며칠사이의 일들, 가족과 싸웟던 일, 친구들과 지인들한테 잘못한 행동, 앞으로의 계획, 기억, 상상까지. 죽여준다, 정말로 죽이는 운동이다.
공익근무시절, 저녁에 출근하여 밤샘야간조를 마치고 아침에 햇빛비치는 수영장을 찾아갈때의 락스냄새, 수영장의 소리들, 유리창에서 쏟아져 물에 반사된 햇살들은 최고였다. 밤새 추위에 떨며 오그라져 있던 몸은 물속에서 풀어헤쳐지고, 한시간 정도의 운동이후 기분좋은 아늑함은 말하기 남새스럽지만 더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수영을 처음 익히는 주변 사람들한테 25m 보단 50m 레인에서 배우는걸 추천했었다. 50m 레인에 익숙하다가 25m 레인에서 수영을 하니, 첫번째는 운동의 재미가 좀 떨어지고, 생각의 호흡도 짧아지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어렵다. 달리면 달릴수록 리듬과 박자감이 중요한 운동. 어떤 운동이든 몰입의 순간이 있겠지만, 계속 달리다보면 다른 생각이 들질 않는다. 자아 성찰이고 나발이고 힘들어 죽을 거 같다. 몸에 쌓여서 출렁거리는 살덩이들이 원망스럽고, 무릎은 체중을 견디며 비명을 질러대며, 허벅지와 등, 팔뚝은 긴장해서 땀을 개워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문득, 내가 얼마나 달렸고, 시간이 얼마이고를 떠나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않는 하얀 공백같은 때가 등장한다. 신체는 비명을 지르며 기계적으로 움직이지만, 생각이 없는 시점. 그런 순간이 길진 않다, 짧습니다. 몇십초에서 길어봤자 수어분인 그런 포인트가 시간을 내서 달리다보면 언뜻언뜻 스쳐간다. 취미로, 자기가 좋아서 달리는 것은 컴퓨터 게임에 한참 빠져있을때와 같다. 생각의 공백으로부터 오는 평화.
한참을 달리고 나서 다리와 팔에 붙어 반짝거리는 소금기를 보면, 사람 몸이 참 신기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한다. 핥아보면 당연하겠지만 정말 짭조름하다. 달리기도 근육통이 있다. 처음으로 10km 완주한 다음날 느꼇던 근육들의 욱씬거림과 탈력감, 밤늦어 잘려고 누웠을때의 무릎이 간질거리는 느낌. 이것 또한 죽인다. 아, 김연수와 하루키가 그토록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를 지레짐작이지만 조금씩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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