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26, 2010

김훈이 아들에게 쓰는 글 1


김훈의 에세이집 중 하나인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를 펼치면 책의 첫번째 글이 '돈과 밥으로 삶은 정당해야 한다' 이고 두번째 글이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이다. 김훈이 원래 책을 펴낼때 달고 싶었던 제목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가 아니라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였다고 한다.

첫번째로 실린 '돈과 밥으로 삶은 정당해야 한다'는 그의 다른 모든 글들을 관통하는, 김훈이 원했던 것처럼 자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액즙같은, 그의 삶의 철학을 말해주는 글이다. 두번째의 글인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또한 아들에게 쓰는 글인데, '돈과 밥으로...' 보다는 훨씬 개인적이고 재밌다. 작가와 작가의 아내에게 평발을 구실로 군복무를 면제받으려 응석을 부리는 아들이 밤늦게 술을 푸고 있을때 작가가 분노와 슬픔으로 적은 글인데. 난 아직 김훈보단 그의 아들과 나이가 더 가까운데다가, 아들을 낳고 길러본 적이 없기에, 김훈이 느끼었을 분노와 슬픔에 젖어 글을 썻을 때보다, 평발을 내밀고 밤늦게 친구들과 잔을 꺾었을 아들의 밤이 더 공감이 가고 안타깝다. 김훈은 국방의 의무를 어떠한 이해나 타산보다, 당위로써 말하고 있다. 책이 출판된 시점을 따지면 아들도 이제 서른줄에 들어섰을 건데, 이젠 자기 아버지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대충은 알 수 있을이다.

'평발....'이 재밌긴 하지만, 이 책을 책장에서 자주꺼내서 보게끔 만드는 글은 맨 처음 실린 '돈과 밥으로 삶은 정당해야 한다'이다. 김훈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을 하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사내라면 노동으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너와 너의 식구들의 입에 밥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읽는 이에 따라서 꼰대냄새나고 고루한 글이지만, 난 잘 읽었고, 친구나 지인에게 자주 소개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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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사내의 삶은 쉽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 사내의 삶이란, 어처구니없게도 간단한 것이다. 어려운 말 하지 않겠다. 쉬운 말을 비틀어서 어렵게 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그걸로 밥을 다 먹는 자들도 있는데, 그 또한 밥에 관한 일인지라 하는 수 없다. 다만 연민스러울 뿐이다.

사내의 한 생애가 무엇인고 하니, 일언이폐지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알겠느냐? 이 말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는 돈보다 더 거룩하고 본질적인 국면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얘야, 돈이 없다면 돈보다 큰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돈 없이 입만을 나불거려서 인의예지이며 수신제가를 이룰 수 있겠느냐? 부(否)라! 돈은 인의예지의 기초다. 물적 토대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 놓은 모든 것들이 대부분 무너진다. 그것은 인간의 삶의 적이다. 그런 허망한 아름다움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없다. 이것은 유물론이 아니고, 경험칙이다. 이 경험칙은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공히 유효하다. 돈 없이도 혼자서 고상하게 잘난 척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말아라. 추악하고 안쓰럽고 남세스럽다.

우리는 마땅히 돈의 소중함을 알고 돈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돈을 사랑하고 돈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들만이 마침내 삶의 아름다움을 알고 삶을 긍정할 수가 있다. 주머니 속에 돈을 지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대답은 자명한 바 있다. 돈을 벌어야 한다. 우리는 기어코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의 고난으로 돈을 버는 사내들은 돈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돈은 지엄한 것이다. 아, '생의 외경', 이 외경스러운 도덕은 밥벌이를 통해서 실현할 수 있다.

돈이 있어야 밥을 먹을 수 있다. 우리는 구석기의 사내들처럼 자연으로부터 직접 먹거리를 포획할 수가 없다. 우리의 먹거리는 반드시 돈을 경유하게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노동은 소외된 노동이다. 밥은 끼니 때마다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함께 먹는 것이다. 밥이란 쌀을 삶은 것인데, 그 의미 내용은 심오하다. 그것은 공맹노장보다 심오하다. 밥에 비할진대, 유물론이나 유심론은 코흘리개의 장난만도 못한 짓거리다. 다 큰 사내들은 이걸 혼돈해서는 안 된다. 밥은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윤기 흐르는 낟알들이 입 속에서 개별적으로 씹히면서도 전체로서의 조화를 이룬다. 이게 목구멍을 넘어갈 때 느껴지는 그 비릿하고도 매끄러운 촉감, 이것이 바로 삶인 것이다. 이것이 인륜의 기초이며 사유의 토대인 것이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모든 먹이 속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우리는 먹이를 무는 순간에 낚싯바늘을 동시에 물게 된다. 낚시를 발려내고 먹이만을 집어먹을 수는 없다. 세상은 그렇게 어수룩한 곳이 아니다. 낚싯바늘을 물면 어떻게 되는가. 입천장이 꿰여져서 끌려가게 된다. 이 끌려감의 비극성을 또한 알고, 그 비극과 더불어 명랑해야 하는 것이 사내의 길이다.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 그것을 알면 사내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는 것이고, 이걸 모르면 영원한 미성년자이다. 돈과 밥 위에서, 돈과 밥으로 더불어 삶은 정당해야 한다. 알겠느냐? 그러니 돈을 벌어라. 벌어서 아버지한테 달라는 말이 아니다. 네가 다 써라. 난 나대로 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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