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25, 2013


 이 낯설고 아름다운 희곡이 그 시절을, 또 한 번 실패한 가족의 문제를 견딜 수 있게 해주었다.
첫번째는 내 잘못이 아니었지만, 입양된 아이들은 언제나 스스로를 탓하는 법이다. 그리고 두번째 것은 명백히 내 잘못이었다.
나는 섹스와 성정체성으로 인해 혼란스러웠고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할지, 무엇을 먹을지, 그리고 A 성적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실질적인 문제들로 괴로웠다.
도와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는데, 바로 T.S.엘리엇이 나를 도왔다.
그래서 나는 시를 사치품이나 선택의 문제, 혹은 교육받은 중산층의 전유물이라고 하거나, 시는 삶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학교에서 읽게 할 필요가 없다는 등 사람들이 시와 우리 삶에서의 시의 위치에 관해 이상하고도 어리석은 소리를 할 때마다, 그들은 아주 수월한 삶을 살아온게 아닌가 생각한다. 거친 삶에는 거친 언어가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시다. 그것이 바로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삶이란 어떠한가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언어.
 그것은 감추는 장소가 아니라, 바로 발견하는 장소이다.

겨울에는 누구나가 갇혀있지만 봄에는 갇혀있을 수 밖에 없는 사람만이 갇혀있는다




 날씨가 풀린 늦겨울 월요일 저녁은 직장인이 아닌 사람에겐 처치곤란이다. 조금은 심심하고 무언가를 해야할 거 같기도하고, 월요일이라 그렇게 마음속 흥이 나지도 않는다. 마뜩히 연락할 상대도 없고, 친구를 불러내서 술한잔 하자고 말하기도 '좀'그런 월요일저녁. 날씨는 풀려서 푸근하고, 계절바뀌어 봄되어서 호르몬때문인지 마음은 들쭉날쭉해지는 날의 저녁은 엉덩이는 움찔움찔거리지만 발걸음은 안떨어지는 부조화의 날이다. 집에서 혼자 마트에서 사온 와인을 따는 것도 안내키고, 보고싶었던 TV쇼를 다시보는 건 더욱 싫은 늦겨울날에는 달리기, 달리기를 해야한다.  

 짧은 운동용 숏팬츠와 바람막이를 걸치고 나와 뛰다보면 곧 후회가 든다. 저녁날 퇴근하는 사람들과 운동하는 이로 붐비는 조깅로에 허연 다리를 내놓고 뛰는 사람은 나밖에 없고, 추운 바람에 손과 얼굴은 뻣뻣하게 굳고 추위로 굳은 몸때문에 호흡은 점점 개판이 되간다. 이어폰에서 나오는 클래식FM 라디오는 바람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는다. 아직 뛰기에는 추운 시기상조의 밤.

 목표거리를 절반정도만 겨우 채우고 어그적거리며 집으로 뛰어갈동안, 해지고 차분히 깔린 저녁날 시큼한 밤공기에서 '그래도' 계절이 바뀐 걸 안다. 추위에 벌겋게 데인 허벅지와 손은 몇주전처럼 처참하게 시리진 않고, 거친 호흡으로 목구멍안으로 들어가는 밤공기도 완전히 냉수같지 않은 밤. 짧지만 사람을 베베꼬게 만드는 계절이 돌아왔다. 김훈 표현을 빌려서 사쿠라꽃 피고 관능감에 쩔쩔맬 계절. 입춘은 이미 지났고, 학교는 개학하며, 취임식도 끝났다. 변한 것들과 변하지 않은 틈에서 계절은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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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픠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뜨고.
초록제비 무처오는 하늬바람우에
혼령있는 하눌이어,
피가 잘 도라....
아무病도없으면 가시내야.
슬픈일좀 슬픈일좀, 있어야겠다



Feb 15, 2013

수영과 달리기. 생각의 평화




수영은 정말로 사유적이며 정적인 운동이다. 바둑이나 체스같은 두뇌활동은 일어나지 않지만, 헤엄치는게 몸에 익고 물결을 탄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점부터 수영은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신체활동을 벗어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의 공간을 여는 운동이 된다. 풀장 벽을 발로 민후 잠영에서 부상, 크롤, 다시 턴. 매번 수영장을 갈때마다, 첫 잠영이후 올라와 물길을 잡아끌어내려 손을 어깨앞으로 펼치는 순간을 사랑한다. 수영은 부조화의 운동이다. 수면 위의, 풀장의 소음과 물 아래의 고요의 간극. 헤엄을 치는순간 심장은 바쁘게 뛰면서 피를 계속 펌프질하고, 온몸의 근육은 쥐어짜냈다가 다시 펼쳐지며 정신없이 움직인다. 호흡을 하고 다시 얼굴을 물에 집어넣는 순간, 내장은 움찔거리며 뱃속에서 출렁거린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 하물며 헤엄치면서 말을 할 수도 없다. 육체는 헐떡거리지만 머릿속 영점이 잡힙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이 열린다. 하룻동안의 일들, 며칠사이의 일들, 가족과 싸웟던 일, 친구들과 지인들한테 잘못한 행동, 앞으로의 계획, 기억, 상상까지. 죽여준다, 정말로 죽이는 운동이다.

 공익근무시절, 저녁에 출근하여 밤샘야간조를 마치고 아침에 햇빛비치는 수영장을 찾아갈때의 락스냄새, 수영장의 소리들, 유리창에서 쏟아져 물에 반사된 햇살들은 최고였다. 밤새 추위에 떨며 오그라져 있던 몸은 물속에서 풀어헤쳐지고, 한시간 정도의 운동이후 기분좋은 아늑함은 말하기 남새스럽지만 더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수영을 처음 익히는 주변 사람들한테 25m 보단 50m 레인에서 배우는걸 추천했었다. 50m 레인에 익숙하다가 25m 레인에서 수영을 하니, 첫번째는 운동의 재미가 좀 떨어지고, 생각의 호흡도 짧아지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어렵다. 달리면 달릴수록 리듬과 박자감이 중요한 운동. 어떤 운동이든 몰입의 순간이 있겠지만, 계속 달리다보면 다른 생각이 들질 않는다. 자아 성찰이고 나발이고 힘들어 죽을 거 같다. 몸에 쌓여서 출렁거리는 살덩이들이 원망스럽고, 무릎은 체중을 견디며 비명을 질러대며, 허벅지와 등, 팔뚝은 긴장해서 땀을 개워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문득, 내가 얼마나 달렸고, 시간이 얼마이고를 떠나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않는 하얀 공백같은 때가 등장한다. 신체는 비명을 지르며 기계적으로 움직이지만, 생각이 없는 시점. 그런 순간이 길진 않다, 짧습니다. 몇십초에서 길어봤자 수어분인 그런 포인트가 시간을 내서 달리다보면 언뜻언뜻 스쳐간다. 취미로, 자기가 좋아서 달리는 것은 컴퓨터 게임에 한참 빠져있을때와 같다. 생각의 공백으로부터 오는 평화.

 한참을 달리고 나서 다리와 팔에 붙어 반짝거리는 소금기를 보면, 사람 몸이 참 신기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한다. 핥아보면 당연하겠지만 정말 짭조름하다. 달리기도 근육통이 있다. 처음으로 10km 완주한 다음날 느꼇던 근육들의 욱씬거림과 탈력감, 밤늦어 잘려고 누웠을때의 무릎이 간질거리는 느낌. 이것 또한 죽인다. 아, 김연수와 하루키가 그토록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를 지레짐작이지만 조금씩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