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5, 2013

달리기와 수련, 하루키





"...달리고 있으면 그저 즐거웠다. 달리는 것은, 내가 이제까지의 인생을 사는 가운데 후천적으로 익혔던 몇가지 습관 중에서 가장 유익하고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된다."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유익한 운동인 동시에 유효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나는 매일매일 달리면서 또는 마라톤 경기를 거듭하면서 목표달성의 기준치를 조금씩 높여가며 그것을 달성하는 데에 따라 나 자신의 향상을 도모해 나갔다. 적어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두고,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 매일매일 노력해왔다. 나는 물론 대단한 마라톤 주자는 아니다.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하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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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거리달리기에 취미를 붙인지는 반년이 채 안되었고, 이제 겨우 10킬로미터 완주를 하고 하프코스에 도전하는 중이지만 하루키의 책을 읽다보면 공감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오늘은 정말 달리기 싫은 날인데 그냥 이쯤에서 접을까"라는 생각이나, "한시간, 두시간을 넘어 달릴 때 과연 대체 남들은 무엇을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은 꽤 했었거든요. 에세이집 앞부분에 있었던 저 구절을 보곤 척추아래쪽이 쩌릿쩌릿했습니다. 의식하진 않았지만, 운동을 싫어하는 내가 다른 스포츠보다 더욱 달리기에 애정을 둘수 있었던건 바로 자기 자신을 적(敵)으로 둔 달리기의 "향상"성 때문이었거든요. 5분을 채 못뛰고 지방덩어리를 벽돌처럼 온몸에 메달고 헐떡거리는 나를 이기고, 10분을 뛰고 땀이 범벅된 나를 이기고, 30분에서 포기하는 나를 이기고, 한 시간을 뛰고 무릎은 나무막대처럼 후들거리는 나까지 이기는, 이토록 명료한 수직성.

 달리면 달릴수록 땅위에서 겸손해질수 밖에 없습니다. 이건 제가 인성이 고매하거나,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라, 땅을 밀고 박차 아주 잠깐이지만 공중에서 체류했다가 다시 지상으로 끌려오고만 마는 행위의 연속에서 저절로 머리를 조아리게 되는 겁니다. 처음 시작은 당당합니다. 육식동물처럼, 허리는 펴고 가슴은 쫙 펼치며, 시선은 또릿한 눈으로 전방에서 약간 더 위를 응시합니다, 잘빠진 자동차 내연기관처럼 장기는 움직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점을 돌파하면 척추는 수그라들고 시선은 점점 아래를 향합니다. 위엄있던 두 팔의 흔들림은 티렉스의 두팔처럼 겨우 상체에 붙어서 흐느적거리면서 터덜터덜걷습니다. 순례자입니다. 과거의 나보다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온몸을 쥐어짜내며, 머리를 조아리면서 도로에 자기를 투지해야합니다. 그래야지 과거의 나를 이기고, 좀 더 많은 땅을 밟을 수 있으니까요. 자신감과 근육의 율동에 맞춰 부풀어올랐던 응큼한 상상(달리면서 야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저만은 아닐겁니다)과 온갖 잡생각은 사그라들고, 그 공백을 생각의 부재가 메꿉니다. 헐떡거리면서 드리는 과거의 나에게 바치는 위로와, 현재의 나에게 가하는 격려이자 채찍.

달리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결국 대게는 보통 장거리 레이스는 정말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자기 자신과의 대결입니다. 건방졌던, 그런데도 열등감에 휩싸였던, 성격 더러웠던 나를, 살찌고 인상이 좋지 않았던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자기 자신을 긍휼히 여기게 할 수 있는 습관. 달리고, 헤엄치고, 밟고, 올라가면서 땀으로 체득하는 경험칙의 자기 반성입니다. 머리를 조아리고 땀으로 허옇게 번들거리는 몸통을 다시 땅위에서 떼어내는 수련. 사람이 철이 들고 나아진다는건, 허벅지 근육과도 조금은 연관이 있을거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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